여행에세이
불쑥 호텔과 항공편만 예약하고 호찌민행 비행기에 올랐다. 여행작가학교 수료식이 끝난 바로 다음 날이었다. “혼밥 싫어하는 네 아빠가 그동안 고생했잖니.” 딸에게는 매주 화요일마다 혼자 저녁을 먹으며 묵묵히 지켜봐 준 남편에 대한 보답이라고 말했다. 전쟁과 관련된 장소를 좋아하는 남편이 베트남전쟁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으로 가자고 해서 호찌민으로 정했다. 하지만 마음속에 숨어있던 생각은, 여행작가학교를 수료한 이후 나의 여행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고 싶어서였다. ‘수업에서 배운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법과 기록하는 방법을 잊어버리기 전에 가봐야지.’ 그런 마음이었다.
호찌민에 도착하자마자 호텔에 짐을 풀고 곧장 시내로 나갔다. 호찌민의 첫인상을 헤아리느라 간판과 건물들을 살피듯 보면서 느리게 느리게 거닐었다. 그러다 입구에 꽃밭을 꾸미고 초록 식물과 파라솔 사이로 책들이 가득 전시된 흥미로운 골목을 발견했다. 호찌민시티 북 스트리트. 시에서 정책적으로 조성한 거리로 베트남의 흔한 교통수단인 오토바이도 금지하고 오롯이 걸어서만 다닐 수 있는 거리였다. 가끔 열리는 도서전이 아니고 아무 때나 책을 보러 올 수 있는 전용 거리가 있다는 게 부러웠다. 행사 중인지 바닥에 대형 피아노 건반이 설치돼 있어서 밟으면 음악 소리가 들렸다. 방문자를 반기는 음악인가? 아이처럼 신이 나서 건반을 밟으며 북스트리트로 들어섰다.
자그마한 독립서점과 버스 안에 책을 전시한 서점 등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이어졌다. 푸른색 튤립을 차양처럼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소품 가게도 있고, 일본 애니메이션 이벤트도 열리는 중이었다. 길지 않은 골목길에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와 간판에 ‘Knowledge is power’라고 쓴 들어가 보고 싶은 북카페도 보였다. 보고만 있어도 행복한 책들이 가득한 골목은 아담하고 정겨웠다. 열 살쯤 되었을까? 한 여자아이가 테이블에 앉아 입을 꼭 다물고 석고로 된 곰 모형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물감을 칠하고 있었다. 무언가에 집중하는 모습은 언제든, 누구든 보기 좋다. 골목에서 느껴지는 여유가 싱그러웠다. 특정 관광지보다 사람이 먼저 보이기 시작한 게 여행의 첫 변화였다.
북스트리트를 나와 큰길로 걷다 보니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그곳은 달리는 오토바이와 자동차 사이로 사람이 눈치껏 건너 다녀야 했다. 차가 먼저 서는 경우가 드물어서 가끔 신호등이 있는 건널목을 만나면 반갑기까지 했다. 신호에 따라 차가 멈춰서는 익숙하고 당연했던 환경과 질서가 새삼 소중하고 고마운 순간이었다. 걸을 때마다 긴치마가 땀이 찬 종아리에 자꾸만 휘감겨서 걸음을 방해했다. 친구 진이 여행 선물로 사준 옷이 아니었다면 북 찢어서 짧게 입고 싶을 만큼 무더웠다. 멈춰 서서 사진을 찍는 것도 힘들어져서 곧바로 호텔로 들어와 수영장에 풍덩 몸을 던졌다. 뭘 많이 보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힘들면 그냥 쉬는 것도 여행 방법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 어머, 저 남자 좀 봐. 다리에 서서 소변을 보네." 다음 날 아침 호텔방에서 보이는 첨탑을 찾아 나서던 길이었다. 한 국가의 수도에서 대낮에, 큰길에서 노상방뇨라니, 좀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걸어가며 길가의 사람들을 찬찬히 보았다. 호찌민 사람들은 길가에 모여 앉아 밥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심지어 오토바이 안장에 누워 낮잠을 자는 모습도 보였다. 오토바이와 한 몸처럼 지낸다고 느껴졌다. 길을 걸으며 어쩌다 어느 집 창문을 올려다보면 창가에 식물이 자라고 꽃이 피어있었다. 그런 마음, 하루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갔을 때 반겨줄 무엇이나 누군가 있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으로 길 위에서 하루를 버텼으리라.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광경들이 신기하게 눈에 들어왔다.
오토바이가 세워진 보도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걸어가 첨탑이 있는 Phap Hoa Pagoda 불교 사원을 찾아냈다. 안에서 경을 읽는지 마이크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사원 앞 큰 나무에 남자 두 명이 올라가서 가지마다 꽃등을 매달고 있었다. 걸어오며 보았던 그들의 일상은 소박했지만, 사원은 무척이나 화려하게 꾸며놓았다. 주황색 지붕에 층층이 붉은색 옻칠을 한 난간에 만개한 분홍색 연꽃을 걸어 혼례를 앞둔 새색시처럼 화사했다. 사원에서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을 오래 바라보았다. 가족, 친구, 어디서든 서로의 안녕을 빌어주느라 오가는 길에 흔하게 사원이 있는 거겠지. 현지인의 일상에 숨어있는 마음을 엿보려 애쓰던 산책이었다.
시내에 있는 벤탄시장을 찾아가다가 코코넛 주스를 파는 남자를 만났다. 한쪽에는 노란 스티로폼 상자를, 한쪽에는 코코넛 열매를 수북이 쌓은 빨강 바구니를 매단 지게를 어깨에 메고 있었다. 도심에서 지게를 맨 사람을 보다니, 낯설면서도 반가운 풍경이었다. 사진을 찍고 싶어 휴대폰을 들이대니 엄지를 척 올리며 미소까지 지어주었다. 사진만 찍고 얼른 지나려는데 갑자기 그가 코코넛 주스를 건넸다. ‘이건 또 무슨 친절이지?’ 잠깐 어리둥절했다.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는데도 그는 칼로 코코넛의 꼭지를 도려내고 다정하게 빨대까지 꽂아 권했다. 나는 할 수 없이 지갑을 열었다. 사기도 아니고 애교스러운 강매를 당한 것이다. 당하는 기분이 나쁘진 않아 빙그레 웃으며 코코넛 주스를 들고 돌아섰다.
5월 말의 호찌민은 깊은 밤이 와도 낮의 열기가 식지 않았다. 밤에 산책하러 나갔을 때 스치던 현지인들은 여행자에게 크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무심한 얼굴이었지만 아는 이를 만나면 어느새 수다스러워졌다. 갑자기 얼굴이 환해지며 목소리와 손짓에 활기가 넘쳤다. 혼자 있을 때면 무심하고 쓸쓸해 보이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났을 때 살아나는 세포들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전에는 이런 표정들을 알아채지 못했던 것 같다. 현지인의 삶을 좀 더 세심하게 들여다보려는 게 이전과는 다른 내 여행의 자세였다. 여행지에서의 나는 그저 스치는 손님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곳에 한발 더 깊숙이 발을 들여놓는 느낌이 들었다.
오래된 것들은 시간을 견디고 자리를 지키며 지난 이야기를 건네기도 한다. 남편이 가고 싶어 하던 베트남 전쟁박물관은 생각보다 작았지만 잔혹한 고문 기계와 군수품까지, 전쟁의 참상과 피해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 상처가 남아있는 자리에 소풍을 온 학생들이 재잘거리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들의 평온한 일상을 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전쟁박물관을 나와 노트르담 성당으로 걸음을 옮겼지만, 성당은 공사 중이었다. 아쉬워하며 걷다가 갑자기 쏟아지는 스콜을 피해 들어간 곳이 마침 중앙우체국이었다. 파리의 오르세미술관을 떠올리게 하는 아치형 지붕과 격자무늬의 타일이 프랑스 식민시대의 흔적을 보여주었다. 도쿄, 베이징, 서울의 현재 시각을 알리는 시계 아래 빨간색 전화부스가 호찌민의 시간을 머금고 있었다.
더우면 수영장의 물속으로 첨벙 들어가 여유롭게 하늘을 보며 배영을 하고, 힘이 들면 물 밖으로 나와 차가워진 몸에 커다란 수건을 두르는 일. 선베드에 누워 모히토를 마시며 시집을 읽는 일. 루프 탑 수영장의 가장자리에서 호찌민 도시의 외곽까지 내려다보는 일. 맑은 하늘 아래 서서 멀리 검은 구름이 몰려있는 곳에 스콜이 쏟아지고 있으리라 짐작하는 일. 그런 소소한 일들이 행복하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여행작가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체험해보고 싶다는 욕심을 잊은 채, 그냥 편하게 쉬는 순간도 좋았다. 어느새 나만의 감성으로 여행을 즐기는 법을 깨닫고 있었다.
호찌민을 떠나는 공항에서 보안 검색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베트남 가족의 이별을 보게 되었다. 배웅하는 엄마는 눈가가 빨개진 채 키가 작은 아들에게 연신 무언가를 당부하는 중이었다. 아빠는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대기 줄에 서 있는 아들을 보고 있었다. 젊은이는 외국으로 취업을 가는지 무슨 ‘OO 인력개발 유한공사’라 적힌 서류를 소중하게 들고 서 있었다. 나는 그 집 귀한 아들이 맞닥뜨릴 낯선 환경이 걱정되어 덩달아 눈시울이 붉어졌다. 먼 길로 아들을 보내는 마음이 되어 어느새 그 집 엄마처럼 훌쩍이고 있었다. 언어와 문화가 달라도 사람에게 전해지는 정서는 어쩌면 그렇게 닮았을까. 호찌민을 떠나며 본 애틋한 광경이 머릿속에 또렷이 남았다.
집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김신지 작가가 쓴 제철행복이라는 에세이집을 읽었다. 24 절기에 일어나는 자연과 생활, 농사와 풍류를 이야기한 책이다. 여행의 시작과 끝에서 시집 한 권과 에세이 한 권을 읽을 수 있게 다섯 시간이 넘는 비행시간이 여유로워서 좋았다. 전에는 지루했던 비행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목적지나 특별한 계획을 정하지 않고 그날그날 떠오르는 대로 가고 싶은 곳을 걸어본 여행도 괜찮았다. 익숙한 쌀국수뿐 아니라 새로운 음식에도 도전해서 더 풍성한 여행이 되었다. 주머니에 이것저것 가득 담고 불편한 걸음으로 걷는 대신, 빈손을 호주머니에 찔러 넣고 느긋하게 걷는 게 더 좋아진 여행이었다.
콩알 같은 땀이 등을 타고 또르르 흐르는 느낌을 겪으며 호찌민 거리를 걸었었고, 아직 늦봄이 남아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곧 날이 더워져도 이쯤 더위야 할 만큼 무더위를 경험했으므로, 이후에는 한여름도 새삼 겸허하게 지내게 될 것이다. 나의 시선과 감성이 어떻게 변했을지 확인하고 싶어 떠난 여행이었지만, 여행의 감흥 세포가 예민해진 것이 가장 큰 변화였다. 나무 위에 앉아있다 날아가는 이름 모를 새나 차창 밖으로 스치며 보게 되는 어떤 풍경처럼, 기대 없이 현지에서 맞닥뜨린 상황이 나의 길을 이끌었다. 잔잔한 이야기들이 조각보처럼 모여 나만의 호찌민 여행을 완성해 주었다.
구름 속에서 난기류를 만난 비행기가 갑자기 심하게 흔들렸다. 공포감이 밀려왔지만 그럼에도 집으로 무사히 돌아갈 거라 믿었다. 구름이 해를 가려 어두워진 하늘도 구름을 벗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밝아졌으니까.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힘을 빼고 앉아있었다. 차분하게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샌가 진동이 잦아들었다. 여행작가학교를 수료했다고 꽃길이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겠지만, 좋아하는 여행과 글을 쓰는 일을 더 많이 하리라고 결심했다. 불안감 속에서도 안정을 찾고 좋아하는 일을 기대하는 마음이 엮이는 하루. 그런 하루하루가 모여 결국 나의 생은 맑은 날로 기억될 것이다. 그 기억이 나의 곁에 남으리라는 희망을 한 번도 버린 적이 없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