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 숲에서

시 쓰는 여행가

by 지유




자작나무 숲에 서면 황태덕장이 떠올랐다

실핏줄이 뜯기듯 시린 바람이 얼리고
눈부신 햇살에 녹기를 여러 번
단단해진 속살을 하얀 껍질로
겹겹이 두르던 겨울날

무릎이 꺾이던 고단함도
드물게 찾아오는 위안도
나를 단련시키는 시간들이었다

오롯이 서 있어도 어느새
숲이 되는 나무들처럼
거미줄 같은 인연의 끈을 우리라
불렀으니

오호츠크 해역에서 미시령 너머 용대리까지
어긋난 길목에서 새운 밤들이
서릿발처럼 하얗게 자라
저리 매달린 채 몸을 말리고 있다

서로를 온전히 알게 되는 순간은
끝내 닿지 않는 우듬지와
눈 덮인 흙 사이 얽힌 뿌리와 같아서
매달린 백색 기둥은 홀로 까마득했다

파도가 키워낸 단단한 살점도
바람의 매를 맞아 단맛이 돌듯
수없이 휘청이면서도 넘어지지 않고
끝내 둥근 나이테를 지녔다

오늘도 자작나무의 키가 자란다


※ 황태덕장 사진 모두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