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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Im Jun 14. 2021

여긴 동물의 왕국인가

남해엔 시고르자브종 똥강아지보다 더 많은 귀요미들이 있다



시골에 내려와 있으니 매일매일 신기한 장면을 본다.


도심에서는 기껏해야 산책하는 댕댕이나 주차된 차 밑으로 도망 다니는 길냥이들을 보는 게 다인데 여긴 그야말로 동물의 왕국이다.




일을 하다 몸이 찌뿌둥할 때면 쓰레빠를 끌고 슬슬 동네를 한 바퀴 걷는데, 그때마다 만나는 (세상에서 제일 귀엽다는 바로 그!) 시고르자브종 똥강아지가 있다. 어느 집 자식인지 100미터 밖에서부터 밭고랑을 뛰어넘어 달려와서는, 꼬리에 모터를 단것처럼 붕붕거리며 사람 무서운 줄도 모르고 발라당 배를 까뒤집고 흙 위에서 나뒹군다. 


쪼그리고 앉아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있으려니 지나가던 동네 어르신이 '아 그 녀석은 까망이야~ 걔가 어미고 그 옆에는 새끼여~'라고 아는 체를 하시고는 내 인사를 받기도 전에 쿨하게 가던 길을 마저 가신다.


까망이는 골목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다 쫓아가서는 킁킁거리며 오지랖을 떤다. 하루는 새끼를 달고 같이 신나서 뛰어다니고, 다른 날은 저 혼자서 큰길을 총총거리며 건너 맞은편 마을에 마실도 다녀온다. 그럴 때마다 작은 시골마을에 교통법규 따위 없다는 양 미친 듯이 달리는 관광객들의 차에 혹여라도 큰 사고가 날까 싶어 바라보는 내 마음이 더 쫄깃하다. 




산골마을도 아니고 해안가를 끼고 있는 마을이라 소나 말은 볼일이 없겠지... 했는데 웬걸 이 마을은 정말 내 상상 이상이었다. 


햇볕이 쨍쨍하고 바람이 엄청 부는 날 빨래 바구니를 들고 뜰로 나가는데, 길 건너 동네 아저씨가 오토바이에 큰 개를 묶고 같이 달려 나가는 게 아닌가? 


'앗 저거 학대 아냐?' 미간을 찌푸리고 다시 노려보니 줄에 묶여 뛰어가는 건 개가 아니었다. 흑염소였다. 그것도 크기를 보아하니 무려 새끼 흑염소. 


순간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뇌가 바쁘게 프로세싱을 하는 동안, 상황 파악이 덜된 나는 멍하니 빨래를 들고 움직이는 오토바이를 좇아 시선을 옮겼다. 그런데 아저씨의 오토바이가 천천히 좌회전을 하는 순간 흑염소 다리가 줄에 걸렸는지 스텝이 꼬인 게 아닌가? 잘 따라오던 염소가 갑자기 팔자 스텝을 밟으며 겅중거리는데 그 모습이 불쌍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너무 웃겨서 빨래통을 내려놓았다. 급히 집안에서 핸드폰을 가지고 나왔는데 동영상은 미처 못 찍고 줌을 엄~청나게 땡겨서 오토바이 반만 나온 사진 한 장, 흑염소만 찍힌 한 장, 그렇게 웃픈(?) 사진 두장을 남겼다. 




하루는 동네 산책이 지겨워 조금 일찍 일을 마무리하고 해지기 전 산책을 하러 근처 항구로 나갔다. 이 마을엔 고맙게도 바닷가 앞에 장정 네댓이 누워도 충분할 만큼 커다란 철제 평상에 서너 개 있다. 그 위에 돗자리를 펴고 누워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서 니나노~ 신선놀음을 했다. 


그렇게 가만히 물 멍을 때리고(?) 있는데, 갑자기 퐁당! 하는 소리와 함께 물고기들이 수면 위로 솟구쳤다. 뭐.. 물고기 튀어 오르는 건 여러 번 봤으니 그러려니 하고 다시 멍을 때리는데... 물고기가 그냥 한 번만 뿅! 하고 올라오는 게 아니었다. 


무슨 물수제비 할 때 던진 돌멩이처럼 뿅! 뿅! 뿅! 뿅! 엄청 높은 점프를 연속적으로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닌가. 잘못 봤나 싶어 가만히 바다를 응시하니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가 같이 첨벙첨벙 요란하게 물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니... 물고기는 원래 물안에서 얌전히 헤엄치는 애들 아니야?
날치도 아니면서 대체 왜 점프를 하고 날아다니는 거야??

 



남해에서 본 귀요미들을 생각해보니, 그 종류도 참 다양하다. 매일매일 어느 동네를 가도 만나는 꽃밭에 누워 자고 있는 길냥이들, 아직 날지 못하는 새끼 한 마리의 걸음에 보조를 맞추어 길을 건너던 엄마 까투리, 커다랗고 무서운 청설모가 아닌 동글동글 볼살이 귀여운 우리네 다람쥐, 텃밭에서 상추를 따다 만난 새빨간 무당벌레, 흐르는 계곡물 밑에서 쏜살같이 도망가기 바쁘던 송사리 떼,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다시 쳐다본 모래사장 위 수백 개의 구멍들을 들락날락하던 내 손톱보다도 작은 게들까지. 


도심에서 서로 피해를 줄까 봐 조심하며 리드 줄에 끌려가던 강아지들과 쓰레기통 근처를 배회하며 눈치 보는 길냥이들, 그리고 동물원과 수족관 안에 갇혀서 상품처럼 전시되고 있던 아이들만 보다가 말 그대로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생명체들을 보니 새삼스럽게 경이로웠다.




지난 6월 5일은 세계 환경의 날이었는데, SNS 속 온갖 환경보호 캠페인의 불쌍한 동물들 사진을 볼 때면 죄책감과 함께 외면하고만 싶었다. 인간이 무분별하게 날린 드론들을 침입자로 오해하고 수천 개의 알들을 직접 깨버렸다는 새들과 절벽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엄마곰과 아기곰의 피드도 그저 세상의 이런 일이? 정도의 뉴스로만 소비해버렸다. 그런데 직접 자연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이들을 보니 그런 나를 반성하게 된다.




남해의 아름다운 자연 속 동물의 왕국이 오래도록 지켜져서 시고르자브종 똥강아지들 뿐만 아니라 수많은 크고작은 귀요미들이 편하게 자리를 잡고 눈치 보지않고 살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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