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없는 세상

by 일인칭 관찰자시점

'4차 산업혁명'이 열어갈 새로운 사회 풍경이 요즘 커다란 관심거리다. 혁신적인 기술이 펼쳐줄 안락한 삶의 모습은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의 관심은 '인간이 기계에 얼마나 많은 일자리를 내주게 될 것인가'에 있는 듯하다. 지난 산업혁명의 결과 기계는 인간의 근육을 대체했다. 세월이 흐르며 더욱 똑똑해진 기계는 곧 두뇌를 대체할 것 같다. 오늘날 사람들은 건강을 위해 헬스장에 가서 자발적으로 신체를 단련한다. 미래에는 정신노동 또한 취미가 될지 모른다. 과연 앞으로 인간은 무엇을 하면서 '먹고 살아야' 할 것인가?


노동은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다. 인류의 역사는 노동의 역사다. 그러나 부유한 자는 노동을 하지 않는다. 생계유지를 위해 어떤 노력도 기울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노동은 수단이다. 한편 성경에서 노동은 인간에게 내려진 형벌이다. "너는 죽도록 고생해야 먹고 살리라." 현대의 노동 역시 형벌과 다름이 없어 보인다. 자본주의 초기 사람들은 원하는 것은 노력하면 무엇이든 가질 수 있는 세상을 믿었다. 그러나 부의 불평등이 심화하는 등 여러 부작용이 나타났고, 세계는 원하는 것을 얻기는커녕 생존을 위해 서로 싸워야 하는 전쟁터로 변해 버렸다. 사람들은 "할 수 있다"라는 구호 아래 자신을 스스로 착취하며 목표를 향해 내달린다. 그러나 그들은 갈수록 소진되고 삶의 의미를 상실하고 만다. 철학자 한병철이 규정한 '피로사회'의 모습이다.


산업혁명이 일어났을 당시에도 노동자들은 지금처럼 일자리 상실을 걱정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양질의 일자리가 오히려 늘어났고, 나아가 사람들의 삶의 질과 권리도 한층 향상됐다. 이번에는 인류에 그때를 능가하는 수준의 진보가 일어날 수 있을지 모른다. 노동의 종말이 가능성 중 하나이다. 바람직한 인간의 목적은 주체성을 가지고 자기를 완성하고 또한 실현하는 것이다. 노동이 사라지면 인류는 비로소 놀이하는 인간(Homo Ludens)이 될 준비를 마친다. 오직 기쁨만을 추구하는 놀이는 인간에게 그 자체로 목적이다.


어떤 이는 인간의 욕구가 무한하다는 점을 들어 노동이 사라질 가능성을 희박하게 본다. 그러나 무한히 치닫는 욕구는 생계 목적이 충족될 때 비로소 발현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이미 노동이 아니다. 지금의 세상에는 노동이 존재하는데도 무한한 욕구를 충족시킬 상황에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지 않은가? 인류는 앞으로 그저 즐기면서 '먹고 살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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