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천의 비둘기들

by 일인칭 관찰자시점

우리 동네에는 산책로까지 합치면 폭이 족히 50미터는 되는, 불광천이라는 하천이 흐른다. 산책로를 따라 한적한 한낮을 걷다 보면 비둘기 무리를 종종 마주친다. 비둘기라는 말에 조금 전 길거리에서 마주친 ‘닭둘기’들을 생각하며 벌써 미간을 찌푸리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여기에 닭둘기는 없다.


20170822_082150.jpg 어느 여름날의 불광천.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세상이 변하면서 기피의 대상이 됐다. 먹이가 풍부하고 천적이 없는 도시라는 공간이 발달하면서 개체 수가 적정 범위를 넘어선 게 원인이었다. 그들의 더러움과 아무거나 주워 먹는 탐욕스러움, 비만한 체형, 날지 않는 행태 그리고 사람을 만나도 피하지 않는 뻔뻔한 태도가 점차 두드러졌다. 그러면서 비둘기는 인간에게 혐오감을 유발하는 대표적인 조류가 되었다. 이를테면 조류계의 돼지다. 어쩌면 비둘기는 더 심하다. 돼지는 삼겹살을 주지만, 비둘기는 쓸모가 없다.


그러나 그건 세상의 시선일 뿐이다. 두 날개를 뒤로 꺾어 빠른 속도로 수면 위를 활강해 내려가는 늘씬한 몸매의 비둘기들. 도시의 여느 비둘기들과는 다르다. 어떤 때는 사이좋게 서로 한 뼘씩 떨어져 전깃줄 위에 줄지어 앉았다가, 이내 모두가 한 몸인 듯 함께 원을 그리면서 하늘을 수차례 돈다. 비둘기가 환경부 지정 유해 야생동물임을 알리는, 물가에 높이 솟은 표지판은 그들을 전혀 주눅 들게 하지 못하는 듯하다. 그들은 자유롭다.


고층 빌딩이 하나둘 들어서고, 날개를 쓰는 법을 잊게 하는 도시에서 혐오 어린 시선을 받으며 자라난 젊은 비둘기들은, 시대를 잘못 만났다 한탄하며 평화의 상징이었던 조상님들을 부러워할까? 그러면, 우리 땐 먹이를 구하러 온종일을 날아다녔어, 지금은 번화가 뒷골목마다 매일 밤 진수성찬이 차려지지 않느냐며 선조 비둘기들은 항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새의 본성은 나는 데 있다. 풍요로워졌다 한들 날지 못하는 새가 어디 새인가. 그들은 무엇보다도 날고 싶은 것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본령은 자아실현이다. 과거보다 훨씬 풍족한 환경에 살고 있다지만, 패기가 없다며 눈총받는 우리 청년들이 설 자리는 정작 좁기만 하다. 당장 필요한 것이 적절한 고용 창출 정책임은 자명하다. 그러나 이와 별도로 우리는 오직 나만이 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시대는 언제나 누군가에겐 불리했다. 세상이 변해도 날갯짓을 할 때가 가장 자연스러운 비둘기처럼, 시대와 불화를 빚는 자신을 조건 없이 믿어야 자유로울 수 있다. 나의 불광천은 어디에 있을까. 아무리 멀더라도 꼭 그곳을 찾아가서, 힘 있게 날갯짓을 해 보고야 말겠다고, 오늘도 하천변을 걸으며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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