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하지 말라. 미래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세상은 너무도 위험하다. 언제 어떤 어려움이 밀어닥쳐 우리를 괴롭게 할지 모른다. 이따금씩은 너무도 해결하기 어려워 보이는 문제에 직면하기도 한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해도 쉽게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결국 우울해하며 체념적인 태도를 보이곤 한다. 발버둥 칠수록 깊숙이 들어가는 수렁에 빠진 것처럼, 무슨 일을 해도 나빠질 일밖엔 없다고 느껴진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자살하지 않아도 곧 있으면 심장마비로 죽겠구나 싶다. 더구나 어려운 고민은 누구에게 쉽게 털어놓기도 힘들다. 그러니까 혼자 고민하게 되고, 해결해야 할 사람이 나 혼자라는 생각에 더욱더 고독해진다. 그러나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살아 있는 한, 기회는 있는 법이다.
왜냐하면 역시 미래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래는 현재 존재하는 모든 변수들의 복잡한 상호작용으로 펼쳐진다. 스스로 현재의 고민을 '해결되지 않을 문제'라고 단정 짓는 것은 매우 어리석다. 스스로 그렇게 단호히 결정하는 동안에도 세상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만약 고민하는 문제에 관련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마음조차도 지금 달라지고 있다. 상황은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다.
과학도 아직 미래를 예측하는 기술을 발명해내지 못했다. 오히려 현대 과학의 양자 역학조차도 '모든 것은 불확실하다'는 비결정론적 성격을 띠고 있다. 세상은 많은 우연과 우연의 결합으로 변화한다. 아직도 논리를 맹신하는가? 논리가 일부 영역에서는 문제 해결에 최선의 방법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부분도 굉장히 많다. 특히 인간관계에 관련된 문제는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 부분이 터무니없이 많다.
사실 세상 고독한 고민을 지속하는 사람 중에는 논리를 맹신하는 부류가 꽤나 많다. 그들은 언어의 형식과 의미에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모든 일에는 한 가지 원인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여러 경험을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변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오랫동안 지속될 시 문제를 협소하게 보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 관하여 예리하게 설명하고 있는 강신주의 『철학 VS 철학』에 등장하는 다음 글을 읽어보기로 하자.
만약 누군가 "나는 너를 사랑하지만 사랑할 수도 없어"라고 말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러셀이나 베이트슨이 이러한 표현을 들었다면 여전히 역설이라고 혹은 이중 구속이라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어떤 문장을 역설로 만드는 것은 그 문장의 내용이 아니라 논리를 맹신하는 사람들의 집착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자신의 『국가』 안에서 시인들을 추방하려고 했던 플라톤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플라톤은 시인이 역설적인 표현이나 모순적인 묘사 없이는 자신의 미묘한 감정을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데아의 자기 동일성만을 추구했던 플라톤은 이 점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마치 사랑의 고뇌에 빠진 애인에게 "나를 사랑하거나 혹은 사랑하지 않거나 둘 중에 하나일 수밖에 없다"라고 따져 묻는 사람과도 비슷했던 것이다.
고대의 플라톤으로부터 현대의 러셀에 이르기까지, 논리 중심주의 혹은 이성주의를 따르는 사람에게는 매우 불행한 일일지 모르지만, 사실 논리의 한계는 매우 명확한 것이다. 누구에게든 적용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논리에는 타자란 것이 전혀 고려되지 않기 때문이다. 논리를 맹신하는 사람들이 대화 상대방, 즉 타자의 속내를 읽으려 하지 않고 말꼬리만을 잡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도 바로 이런 측면 때문이다. 이 점에서 논리는 보편적인 것 같지만, 그 내면에 지독한 유아론을 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경향은 논리를 맹신하는 사람이 '모든' 혹은 '~하지만 동시에 ~하지 않는'과 같은 언어 표현에 과도하게 집착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이와 달리 '수사학'은 항상 타자를 염두에 두고 진행된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수사학은 언어의 표면적 내용에 집착하지 않고 타자의 속내를 읽으려는 인문학적 감수성을 갖추고 있는 사람에게만 적용된다고 할 수 있겠다. - 강신주, 『철학 VS 철학』, 그린비, 2010.
논리가 항상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줄 수는 없다. 시선을 외부로 돌려보면, 답은 오히려 그곳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내일 밤 뉴스는 내일의 일들로 채워진다. 당장 내일 저녁 아홉 시 뉴스에 무엇이 나올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하루 동안에 일어나는 일들이 취재를 거쳐 방송되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지금 나의 기분이 어떤지, 그리고 나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지이다. 절망하지 마라. 기분이 나아질 만한 행동을 먼저 시작하라. 지금 기분이 나아지면 순간을 버티는 데 도움이 된다. 재차 강조하지만, 미래가 나 혼자만의 결단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수많은 변수들의 상호작용으로 정해진다는 것을 안다면 걱정을 훨씬 덜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