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란의 초란의 초란

그리고 나의 초란들

by 조초란
초란 初卵 :

어미 닭이 처음으로 낳은 계란. (그 이후에 낳은 대여섯 개의 계란을 포함하기도 한다)

나는 2녀 1남의 장녀이다.

나의 엄마는 1녀 2남의 장녀이다.

나의 엄마의 엄마는 3녀의 장녀이다.

그렇게 나는 초란의 초란의 초란이 되었다.




엄마는 가끔 우리를 닭에 비유해서 말하곤 했다.

어리고 귀여운 시절엔 보송보송한 병아리로

사춘기, 외모 폭망 시절은 중닭으로

이십대 꽃다운 나이에 접어들면서는 아름다운 깃털의 성체 닭으로..

(왜 하필 닭이었을까..? ㅎㅎ)


그래서 외모에 한창 괸심을 가질법도 했던

중고등학교 시절엔 엄마의 “중닭”표현이

썩 맘에 들었던지 외모타령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나의 학생들을 가르치던 시기에도

저 “중닭”이란 단어는 꽤나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에도

그럴싸한 이미지였는지 제법 괜찮은 수식어로 쓰였다

외모에 집착하지 않게 만든 것은 의도치 않은 수확이 되기도 했다.


지금의 나는 중닭을 거쳐 완전한 성체가 되었고

가정을 이뤄 2남1녀를 두고 있는 어미닭이 되었다.

(물론, 지금도 그다지 외모에 관심을 쏟지는 않지만)


초란이라는 표현은 저 닭에서 가져온 부산물같은 거였다.


지금이야 마트에서 ‘초란’이란 이름으로 제법 값을 매겨 팔리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초란은 준비가 채 되지 않은, 경험도 지식도 부족한 어미가 겨우겨우 세상에 내어놓은 첫 결실이자 아쉬움의 그 무엇인가 처럼 느껴졌다.


마치 내가 첫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긴 했어도 내 아이를 키우는 일은 매 순간이 시험이었고 성적표는 형편없다고 느껴져서 늘 부족한 엄마인 것 같은 느낌이랄까.


마찬가지로 나의 엄마도 어린나이에 결혼하고 첫 아이로 나를 낳아 기르면서 나름의 최선은 다했으나 동생들에 비해 “몰라서 못해 준” 것에 대한 아쉬움을 늘 토로했었다.


또한 나의 엄마의 엄마도 해방 후 전쟁시기를 막 지난 그 엄혹한 시기에 첫 아이인 나의 엄마를 낳아 기르면서 당신의 꿈과 끼를 한번 펼쳐보지 못하고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몰라서 외면한 육아의 길“을 그저 걸어오셨다.


하지만 그 밑의 두 자녀들은 모두 첫아이에 비해 수월했고 그래서 그들에게 조금 더 애정과 관심을 쏟을 수 있었노라고 했었다. 첫아이는 A를 받지 못하면 엄마인 나의 실패로 받아들인 그들이 둘째와 셋째는 0점을 받아와도 웃으며 안아줄 수 있는 육아달인이 된 것이다.




나는 그 느낌이 싫었다. 나에게는 엄격했던 잣대가 동생들에겐 무뎌지는 것을 보면서, 나는 엄마가 되면 그러지 말아야지, 참 오래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엄마가 되고 나의 첫 아이를 낳고 몇년간의 터울로 둘째와 셋째를 낳고 키우다 보니 그게 참 마음같이 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나의 엄마, 나의 엄마의 엄마처럼

나도 나의 초란을 어설피 대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다 문득, 나의 초란에게 그러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어설픔을, 나의 부족함을 아이에게 전가할수는 없었다. 그건 아이의 책임이 아니니까. 몰랐다는 핑계로 아이를 외롭게 하거나 애어른이 되게 만들수는 없었다.


그래서 지금도 매일 공부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들여다보고 내 나름의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중이다. 아직도 부족한 14년차 엄마지만 내 병아리들은 미운오리새끼라는 생각을 하지 않도록 잘 품어야겠다는 다짐을 매일 하면서.


나는 2남 1녀의 엄마닭이다.

내 초란들은 오늘도 이리딩굴 저리딩굴거리며 삐약삐약 빼약빼약 중닭이 되어가고 있다.

사랑한다 못난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