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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현 Feb 20. 2023

이제는 입을 일 없는 옷 판매합니다, 육아용품도 같이

매일노동뉴스 기고


당근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당근마켓 앱을 통해 안 쓰는 물건을 중고거래하는 것을 ‘당근한다’고 표현한다. 당근마켓은 ‘당신 근처의 마켓’이라는 뜻으로, 중고나라나 번개장터와 같은 기존의 중고거래와는 달리 같은 동네 지역주민이 올린 판매물품만 볼 수 있다.



당근하는 사람들은 당근의 장점으로 신뢰감과 편리함을 주로 꼽는다. 동네 주민들과 거래를 하니, 모르는 사람이어도 왠지 모르게 신뢰감이 생긴다. 직거래니 ‘중고물품을 샀는데 택배로 벽돌을 받았다’ 류의 사기를 당할 염려도 없다. 우리 동네에서 거래하니 시간 내기도 편하고, 택배비나 교통비도 아낄 수 있다. 이러한 장점 덕분에 당근마켓 앱 다운로드수는 2천200만을 넘겼고, 월 방문자는 1천200만명에 달한다.



최근에는 원피스부터 코트까지 10벌의 단정한 옷을 당근 했다. 평상시엔 면바지에 후드티를 주로 입지만, 가끔 차려입을 상황이 있어서 흔히 오피스룩으로 분류되는 옷들이 필요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 패딩과 털장갑 차림으로 참석했던 버니 샌더스처럼 입을 자신은 없어서, 다들 차려입는 자리에서는 나도 차려입는 편이다. 정가로 사기엔 부담이 있고, 또 환경을 위해선 친환경 옷을 사는 게 아니라 안 사는 것이 좋다는 말을 듣고 중고로 구매하게 됐다.



중고로 판매되는 오피스룩을 쭉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다. 옷을 설명하는 란에는 “이제는 입을 일이 없네요”라는 말이 쓰여 있다. 옷을 올린 판매자의 다른 판매목록에는 유아 장난감이나 아동 옷과 같은 육아용품이 올려져 있다. 그렇게 구매한 옷들에는 취업해 큰맘 먹고 백화점에서 샀을 설렘이 느껴졌다. 내가 받은 옷들은 대부분 드라이까지 된 옷들이었는데, 비용을 생각해 보면 판매금이나 드라이 비용이나 비슷하다. 돈을 벌겠다는 마음보다는 쓰이지 못하고 옷장에 잠들어 있는 옷들이 의미 있게 쓰였으면 좋겠다는 마음들이 느껴졌다.



오피스룩을 입을 일이 없어 내놓은 이들은 아마 고용단절 여성일 것이다. 고용단절 여성은 15~54세의 기혼여성 중 현재 비취업인 여성으로서, 임신이나 출산·가족돌봄 같은 사유로 직장을 그만둔 여성을 의미한다. 150만명으로 추정된다(통계청, 2020). 주로 여성에게 육아와 가족돌봄의 압박이 주어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여성들은 고용·승진·연금 등에서 차별을 겪고 있다.



물론 여성노동자의 삶에 대해서 어떤 삶은 잘못됐고, 이렇게 해야 한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육아에 집중하는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에게 ‘당신의 삶은 잘못’이라고 말하는 건 무례하고 오만한 행동이다. 여성은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며, 누군가에겐 직장을 다니는 대신 육아에 전념하는 것이 여러 고민을 통한 현실적인 선택이거나 적성에 맞는 일일 수 있다. 여성 개개인의 선택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가사와 육아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사회고, 결혼·출산·육아로 원치 않게 고용이 단절되는 사회구조다.



그리고 그러한 구조는 개인인 나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자녀가 있는 가정을 잘 꾸려 보고 싶다는 미래를 그리는 요새 보기 드문 젊은이로서, 내 앞에 놓일 선택지를 생각해 보면 암담하다. “직장에 40대 이상의 여성 상사가 한 명도 없어. 다들 출산하고 나서는 무얼 하고 있을까? 나는 여기서 얼마나 일할 수 있을까?”라는 친구의 말을 들을 때면 육아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사르르 사라진다.



궁금하다. 몇 년 뒤 내 판매목록엔 어떤 물품들이 올려질까.



뱀발이지만, ‘경력단절 여성’ 보다는 ‘고용단절 여성’이라는 단어가 보다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고용상태가 아니더라도 직무 경력은 이어질 수 있으며, 배우고 성장한다는 점에서는 육아도 경력일 수 있다. 또한 현재의 여성고용 단절 문제는 여성노동자 경력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의 노동정책과 노동시장 문제이기에 ‘고용단절 여성’이라는 용어가 적합하지 않을까.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1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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