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 기고
노동조합·시민단체·기관 행사에서 직책 있고 명망 있는 중년 남성 무리를 보면 마음이 답답해질 때가 종종 있다. 연단에 있는 사람들이 거의 다 남성이거나, 발표나 토론을 하는 사람들이 줄이어 남성이거나, 마이크를 들고 발언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남성이면, 속으로 ‘아…’ 하는 탄식이 조용히 나온다. 그 마음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네가 유학을 가고 싶은 학교가 있다고 가정해 봐. 너는 다른 학교가 아니라 그 학교에 꼭 가고 싶어. 입학 공지에 ‘한국인이면 입학할 수 없다’ 이런 규정이 있지는 않아. 그런데 그 학교에 입학한 한국인은 이제껏 없어. 있다고 하더라도 자국민보다 정말 엄청나게 능력이 출중한 몇 명밖에 입학을 못 했어. 저 학교에 입학하고 싶은 나의 미래가 막막하게 느껴지고 마음이 답답하지 않겠어? 그게 남성 무리를 볼 때 드는 내 심정이야.”
민주노총 여성위원회에서 조사한 여성대표성 현황에 대한 자료집을 살펴봤다. 민주노총 가맹조직을 대상으로 조합 내 여성대표성을 조사했고, 252개 사업장 노조에서 응답했다. 결과는, ‘대표자 중 여성 비율은 남성의 반의반도 안 되겠지’라는 막연한 나의 추측을 가볍게 무시했다. 251개 사업장 중 여성이 노조 대표자인 경우는 30개에 불과했다. 사업장 10곳 중 9곳(88%)은 남성이 대표자다. 과거에 한 번이라도 여성이 대표인 적이 없는 곳도 84%였다. 두 곳 중 한 곳은 임원 중에 여성이 한 명도 없고(48%), 세 곳 중 한 곳은 대의원 중 여성이 한 명도 없다(33%). 교섭위원 중 여성이 한 명도 없는 곳은 38%였다. 노조 내 여성조합원 비율 등을 감안하고 생각해 봐도 놀라운 수치다.
한국노총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한국노총 여성 대표성 및 성평등 실태조사”에 따르면 설문조사에 응답한 한국노총 소속 187개 단위노조 중 오직 18개 사업장만 대표자가 여성이다. 노조 대표자 10명 중 9명(90%)은 남성인 것이다. 임원·집행간부·대의원·교섭위원의 성별 비율 역시 여성이 현저히 낮다. 각각 여성의 비율은 16%, 24%, 30%, 18%였다.
이 수치들의 의미는 단순히 ‘대표 중에 여성이 적다’는 것만 의미하지 않는다. 이 수치는 노조의 교섭 안에 성차별적인 제도와 관행을 시정할 규정이 제시될 가능성이 작아진다는 것을 뜻하고, 여성노동자의 고충이 원활히 반영되지 않음을 뜻할 것이다. 여성노동 의제가 노조의 주요한 사업이 될 경우가 적을 것이며, 여성노동자의 산업재해 관련 데이터가 충분히 조사되지 않음을 뜻하기도 할 것이다. 노동조합의 활동 역시 여성 배제적일 확률이 높다.
최근 미국 나스닥 증권거래소에서는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이사진 내 여성 할당을 의무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사진에 최소한 여성 한 명과 흑인, 라틴계, 성소수자 등 소수계층을 대변하는 구성원 한 명을 포함해야 한다. 여성 할당제를 이야기하면 흔히들 ‘능력 없는 여성이 뽑힐 것’이라고 반대한다. 그러나 이는 편견에 불과하다. 스웨덴 선거에서 성별 할당제 도입에 따른 효과를 분석한 논문에 따르면 할당제는 여성 후보의 질을 하락시키지 않는다. 반면 역량이 뛰어나지 않은 남성들을 탈락시키고 더 유능한 후보들이 당선되게 해, 할당제 도입 이후 의원들의 역량은 도리어 향상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노동조합은 어떠한가. 현재보다 더 적극적인 여성 할당제가 필요하다. ‘여성 인재가 없다’는 말로, ‘여성들이 나서지 않는다’는 게으른 말로 회피해도 현실이 달라지진 않는다. 여성간부 양성을 나의 일처럼 힘을 쏟는 간부가 필요하다. 여성과 소수계층에 대한 적극적인 할당을 의무화하고, 간부 양성 프로그램을 강하게 추진하는 노조가 필요하다. 그런 노조일수록 여성조합원이 노조에 가입해 활동하기에 더 수월할 것이다. 앞으로의 노조 선거에서는, 앞으로의 노조활동에서는 더 많은 여성들이 활약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여성이 빠진 노동운동이 모두를 위한 노동조합일 수 없다. 여성을 대표하지 않는 노동조합이 모두를 위한 노동조합일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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