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 기고
대화 1.
어느 토요일 점심.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동생과 간만에 같이 점심을 먹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점심을 먹었는데, 밥을 먹고 난 후 동생이 쪼르르 부엌으로 갔다. ‘물 떠오려고 그러나?’ 싶었지만, 동생이 가져온 건 약 한 뭉텅이였다. 스트레스 탓으로 귀에 염증과 이명이 생겨 처방받은 약 개수만 16개였다.
순간 ‘동생이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반대한다고 하면, 나는 동생을 설득시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이 한국 사회에 살며 경험했던 많은 알바와 단기근무는 안정적인 직장에 대한 갈망을 더욱 깊어지게 만들었을 것이다. 특히나 여성이기에, 나중에 결혼과 출산·육아를 생각한다면, 동생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는 공무원 시험뿐이다.
정규직화나 직접고용 주장이 요구하는 대의와 그것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나도 누구보다도 동의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대다수의 시민은 노동을 통해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사회와 만난다. 인권 측면에서도 모든 노동자에겐 안정적으로 살 권리가 있고 국가는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 공공부문의 일자리들은 상시업무고 중요한 업무들인 만큼 당연히 직접고용하고 정규직화 해야 한다. 시민 안전 측면에서도 더 나은 서비스 질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취업을 준비하던 사람 입장에서는 (물론 정부와 노조, 많은 관계자가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과정은 알지만, 외부에서 보기엔) 어느 날 갑자기 하루의 선언으로 시험의 방식이 바뀐 것이다.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은 채용 규모가 줄어들지 모른다는 당황스러움을, 합격한 사람은 허탈감을 느낄 수 있다.
설득해야 하는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면, 설득도 불가능하다. 비난의 언어로는 설득할 수 없다. 동생의 모습을 보며 ‘전체적인 일자리가 좋아져야 앞으로 일할 당신에게도 좋은 거다’라고 밖에서 이야기하는 내 모습이 지금 당장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동생에겐 ‘자기 일이 아니니까 할 수 있는 소리’로 여겨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 2.
올 초엔, 동생이 카톡을 하나 보냈다. ‘언니, 고용노동부 직업상담 이쪽도 잘 알아?’ 무슨 일인지 물어 보니, 국민취업지원제도와 고용보험제도 확대 시행으로 노동부 직업상담직 공무원(9급 국가직) 채용 인원을 기존 연평균(2018~2020년) 46명에서 2021년 180명으로 확대한다는 발표를 보고, 합격 가능성이 조금 더 높지 않을까 해 지원을 고민했던 것이다. ‘상담 업무 어렵고 힘들다. 하고 싶은 일이야? 적성에 맞는 일이야?’ 물었고, 동생은 나를 나무랐다. ‘일단 되는 게 중요하지. 그걸 내가 따질 수 있어?’라고.
어떤 사람들에겐 1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쏟아 어디에 지원할지를 선택하는 중요한 고려 요소가 적성 같은 다른 요소보다 ‘몇십 명 더 채용할 거란 발표’다. 그러니 신규채용 확대를 이야기하지 않는 지금의 논의는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너무 멀리 있는 말이다. ‘직군이 다르다’ ‘신규채용이 줄어들지 않을 거다’는 소극적인 해명으로는,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으로서는 본인이 지원할 수 있는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것으로 느낄 수 있다.
‘취준생을 빌미로 정규직화를 반대하지 마라’고만 이야기하는 건, 노동시장 자체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을 배제하는 말이다. “너희만 고생이냐, 취업 준비도 특권이다, 비정규직으로 오래 일한 것도 고생이고 보상받아야 한다, 박탈감을 이해해 주면 안 된다, 취업준비자들을 볼모로 정규직화 반대하지 마라”는 말 대신, 정규직화와 직접고용에 이들도 찬성할 수 있게끔 설득하는 언어가 더 많이 나왔으면 한다.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고려해야 정규직화도 지지를 받아서 추진할 수 있다. 신규채용 확대를 노조가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더욱이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취업이 더 어려워졌다. ‘나쁜 놈’ 취급보다는 내 편을 확대할 수 있는 ‘설득’의 언어를, 여러 입장을 고려한 언어를, 특히 노동시장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함께 생각하는 언어를 썼으면 한다.
또한 동생이 공무원시험에 ‘몰빵’한 이유는, 그 전에 여러 일을 해 본 경험을 통해 직접고용된 정규직 외엔 너무 힘들다는 것을 겪었기 때문이다. 정규직 밖의 사람들, 공공부문 밖의 일자리 질도 중요하다. 모두를 다 정규직으로 만들고, 정규직의 임금과 노동조건은 계속 향상시키는 것. 좋다. 그렇지만 그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지금 ‘당장’의 현실에 대한 논의도 더 많아져야 한다.
대화 3.
다행히 올해 동생의 가채점 결과를 보니, 무난히 합격할 것 같다고 한다. 그런데 합격할 것 같다는 동생의 표정은 하나도 기뻐 보이지 않았다. 의아해서 물어봤다. 업무가 맞든 안 맞든 앞으로 그곳에서 계속 일을 해야 할 상황에 벌써 일을 할 걱정을 하고 있었다.
동생이 막상 일해 보니 업무가 적성에 안 맞는다고 해도, 쉽게 퇴사할 수 있을까? 퇴사한다는 것은, 그 어려웠던 취업준비 과정을 다시 반복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여러 곳에서 일해 봤으니, 다른 곳도 비슷하거나 더할 거라는 것을 안다. 실업급여 요건도 엄격하다는 것을 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자신이 동생에게 있을까’ ‘물러날 곳이 없다고 생각하면 어쩌지’하는 걱정이 들었다. 들어가는 과정이 어려울수록, 퇴사할 결심을 갖기도 어렵다.
직장에서 버티다 못해, 생을 끝낸 청년들의 기사들이 내 주변의 이야기가 될까 봐 무섭다. 두려울 때마다, 동생에게 “일하다 힘들면 언제든 퇴사해도 된다. 언니가 너 1~2년 생활비 챙겨줄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이렇게 가정에서 개인들이 대응하는 것이 최선인가 의문이 들었다. 노동운동에서도 신규채용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퇴사를 ‘잘’할 수 있게 하는 여러 조건에 대한 논의가 많아졌으면 한다.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3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