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은사댁에 들렀다.
손에 꼭 쥔 작은 원두 봉지를 내밀자,
은사는 빙그레 웃으며 오래된 잔을 꺼내고
나는 원두를 갈았다.
막 갈아낸 원두 향이 방 안 가득 퍼지고,
그 향 속에서 은사는 바둑판을 꺼내오셨다.
흑과 백의 돌이 하나씩 내려앉을 때마다 방 안은 고요해졌고, 나는 돌이 만들어내는 길을 따라 숨을 골랐다.
오래된 듯한 바둑판의 무늬가 눈에 들어왔다
“바둑판의 무늬가 참 깊네요”
은사는 미소 지으며 말씀하셨다.
“어차피 나무를 깎아 만든 것, 좋은 나무든 어떤 나무든 결국엔 부러지고 마는 거야.
그리고 검은 돌이든 흰 돌이든 결국엔 모두 판 위에서 사라지지.
…
그래도 남는 건 있지.
수를 두던 시간
그리고 마음에 새겨지는 길.”
은사의 말은
바둑돌이 ‘탕’ 하고 내려앉는 소리와 함께
내 마음에 한순간 깊이 내려앉았다.
커피 향이 가시지 않은 저녁,
나는 오래도록 그 한 수를 떠올렸다.
바둑돌이 사라진 후에도 그 한 수가 남긴 길은 아름답게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