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 건너 - 바다의 숨결

개정본

by 소이

심연의 바다 앞에 멈추어

아래를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그곳은 빛조차 닿지 못하는,

스스로를 삼켜버린 어둠의 왕국.

숨소리조차 삼켜진 듯,

고요하지만 압도적인 정적이 사방을 감쌌다.


그 심연은 두려움이기도 했고,

또 다른 생명을 품은 자궁 같기도 했다.

끝없이 가라앉는 깊이,

그 안에서 무엇인가 깨어날 듯 느껴졌다.


불현듯 인어의 형상이 아른거렸다.

푸른 머리칼은 해류에 흩날리고,

물결에 스며든 노래는

파도처럼 마음을 흔들었다.


그 순간, 바다 저편에서

푸른빛이 일렁였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작은 빛무리.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


“소이야, 두려워하지 마.

검은 바다에 감도는 푸른빛은 플랑크톤이야.

그 빛은 범고래 무리가 지나가고 있다는 신호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인어는 물결에 휩쓸려 사라졌다.

곧 거대한 숨소리와 함께

바닷물이 솟구쳤다.


검은 등과 흰 무늬,

범고래가 수면 위로 뛰어올라

물기둥을 내뿜었다.

그 울음은 깊고 낮게 퍼져

심해 전체를 울리는 듯했다.


고래는 잠시 멈추어

애잔한 눈빛을 남기고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놀라 눈을 떴다.

Marc Chagall, «The Birthday», 1915


벽에는 샤갈의 〈생일〉.

사랑이 공중에 흩날리는 그림.

그 속의 남녀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 위에서

서로를 감싸고 있었다.


물끄러미 그림을 바라보다

알아차리지 못한 채,

그 위를 손끝으로 스쳤다.


나의 시간만 흐르고 있었다.

그림 속의 시간은 여전히 멈춘 채였다.


언젠가 나의 시간이

그림의 시간을 추월할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조금 더 성숙한 사랑이

다시 시작되리라.


첫 웃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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