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에서, 향으로 남은 너
Jacob Collier – “It Don’t Matter” (feat. JoJo)
비가 막 그친 오후, 성수동의 공장형 카페에 들어섰다. 젖은 콘크리트 냄새와 막 볶은 원두 향이, 낮게 깔린 기계음처럼 실내를 감쌌다.
천장이 높고, 철제 프레임 사이로 흰 빛이 쏟아졌다.
모든 게 투명하면서도 차가운 공간, 그 안에서 게이샤 브루잉의 향은 실크의 결이 살결을 스치는 듯 부드럽고, 은밀하게 관능적으로 피어올랐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늘 약속보다 10분쯤 일찍 오던 후배가 오늘은 조금 늦게 도착했다.
“어제 늦게까지 멘사 모임 있었어요.”
“오, 멘사 회원이었어?”
그는 웃었다. 조선시대 선비처럼 생겼는데, 헤어숍 가기 귀찮다며 가끔은 장발로 다녔다. 때로는 만화 속 이누야샤처럼 손톱을 길게 기르기도 했다. 긴 다리에 세미 정장을 입고 앉은 그의 모습은 묘하게 시크하고 세련됐다.
“멘사 요즘은 공부하면 다 붙어요.
도와드릴게요, 해볼래요?”
그 말투엔 농담과 약간의 자신감이 섞여 있었다.
“별의별 사람 다 있어요.
직업도 학력도 다양해요.
교수님부터 중졸이신 분도 있고, 모임이 꽤 재미있어요.”
그의 말투엔 장난이 섞여 있었지만, 웃음 뒤로 낯선 진심이 묻어났다. 팬을 꺼내더니 갑자기 냅킨에 무언가 적기 시작했다.
“풀어볼래요?”
나는 웃으며 문제를 보려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긴 머리카락이 앞으로 흘러내렸다.
그때, 그는 조용히 손을 들어 곱고 긴 손가락으로 내 머리카락을 커튼을 걷듯, 천천히 내 귀 뒤로 넘겨주었다. 게이샤 브루잉의 향보다 먼저, 그의 숨결이 스쳤다. 차갑던 공간이 부드럽게 흔들렸다.
모든 소리가 멎었다. 에스프레소 머신의 스팀 소리도, 사람들의 대화도, 잔에 부딪히는 얼음소리조차. 공기 속에는 커피 향과 은은히 느껴지는 체온만 남았다.
“여자친구분은 잘 지내?”
나도 모르게 그 말이 나왔다. 내 목소리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낮게 깔렸다.
그는 잠시 커피잔을 바라보다 작게 웃었다.
“헤어진 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어요.
요즘 자꾸 자기 소개팅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나는 게이샤 브루잉을 천천히 한 모금 마셨다. 향이 먼저 입 안으로 스며들었다. 자스민과 복숭아, 살구의 향이 부드럽게 피어올라 순간, 그가 웃을 때의 온도와 겹쳐졌다. 쓴맛은 없었다. 대신 깊고 고요한 산미가 남아 있었다.
그의 말처럼, 명확하지 않은 관계에는 언제나 이런 향이 있었다. 달지도, 쓰지도 않은, 그 사이 어딘가의 여운.
창밖에서는 비에 젖은 골목이 조용히 마르고 있었다. 나는 커피잔을 천천히 돌리며 생각했다.
‘이 향이, 오늘의 기억을 오래 붙잡겠구나.’
마침 주문한 브런치가 나왔다. 포크를 들어 올리며 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게, 이 순간이 커피의 여운처럼 미묘하게 남을 수 있다는 게.
그날 이후,
게이샤 커피 향만 맡아도 그의 손끝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는 그 향을 잊지 못했다.
비가 그친 성수동의 오후,
게이샤 커피 향은 오래 남았다.
그의 웃음도, 그 손끝도,
그날처럼.
향은 기억보다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