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는 에스프레소를 마신다

그녀는 마치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속 한 장면처럼 서 있었다.

by 소이

BGM: Lisa Ono – Garota De Ipanema (2006)


프라다 선글라스와 에르메스 스카프.

벤츠에서 내린 그녀가 단단한 구두굽 소리를 울리며 들어서는 순간, 사람들은 저절로 길을 비켜섰다.

후배들이 붙인 별명은 ‘모세’.


그녀가 들어서면 공기마저 팽팽해졌다.

눈빛 하나로 모여 있던 사람들의 바다를 가르고, 사소한 제스처에도 불호령 같은 긴장감이 번졌다.


그 모습은 마치 타마라 드 렘피카의 그림 속 초상 같았다.

타마라 드 렘피카 〈그린 부가티 속 자화상〉(1929)

강렬한 선과 색채로 둘러싸인, 모두의 시선을 단호하게 압도하면서도 묘한 고독이 깃든 얼굴.


그녀의 손에는 늘 작은 도자기 잔이 있었다.


막 추출된 에스프레소의 황금빛 크레마 위로 은은한 향이 피어올랐다. 볶은 견과류의 고소함, 카카오의 씁쓸함이 코끝을 스쳤고, 짧은 한 모금은 혀끝을 번쩍이게 했다. 쓴맛 뒤엔 부드러운 단맛이 밀려왔고, 그 여운은 오래 남았다.


그녀가 매번 비워내던 작은 잔 속에는 쓸쓸하면서도 묵직한 위안이 숨어 있었다. 짧고 뜨겁지만 끝내 오래 남는 여운. 그건 꼭 그녀 같았다.


크리스마스 무렵, 내가 다니던 봉사처에서 산타 복장을 한 한 어른을 보았다. 아이들 틈에서 환히 웃는 모습은 낯설면서도 어디선가 본 듯했다.


그러다 산타 복장 사이로 에르메스 스카프를 보고야 말았다.


그 순간 모든 게 이어졌다.

강렬한 에스프레소, 사람들의 바다를 가르던 눈빛, 아이들 앞에서만 번지던 미소.

그녀가… 산타 할아버지였다니.


에스프레소의 쓴맛 뒤 숨어 있던 단맛처럼,

그녀를 존경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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