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Chet Beker - My Funny Valetine
오후 늦게 잠시 들른 ‘일리(illy)’.
도심 빌딩 숲 한가운데 대리석 테이블과 차분한 조명 유리창에는 저녁 해가 기울고 있었다. 나는 창가에 앉아 책을 펴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진한 바디감 속에 부드럽게 번지는 크레마, 쌉쌀한 초콜릿 뒤로 캐러멜 같은 단맛이 살며시 스며드는 맛.
이상하게 그날따라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디선가 계속 머무는 시선이 느껴졌다. 한 남자의 눈빛이 멀거니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조심스레 다가온 목소리.
“저… 실례합니다. 혹시 여기 자주 오시나요?”
책장에서 시선을 뗐고 그가 서 있었다. 셔츠 소매를 걷은 팔목엔 티파니 남성용 파베 브레이슬릿.
말투는 담담했지만, 어딘가 초조한 기운이 배어있었다.
“제가 요즘 정신이 좀 없어서요. 차도 고장 나고, 회사도 너무 바쁘고… 저 ** 회계법인 근무해요. 그냥 커피 한 잔, 괜찮을까 싶어서요.”
그는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정중했지만, 깨진 유리잔 같은 공허함이 묻어 있었다.
나는 조용히 책을 덮었다. 손끝에 닿는 종이의 감촉,
식어가는 커피잔의 무게가 결론을 대신했다.
“죄송하지만… 이건 아닌 것 같아요.”
나는 조용히 일어섰다. 그는 잠시 당황했지만,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문을 열고 나오자, 커피잔 안쪽에 남아 있던 거품이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