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차에 앉아 창밖을 보았다.
정오의 햇살이 아직 남아 있는 듯 따뜻했지만 마음 한쪽은 오래된 기억이 아지랑이처럼 미세하게 일렁였다.
연우의 마지막 말이 귀에 남아 있었다.
“그 사람 어떤 사람인지…
묻지 말라는 말은 하지 마.”
그 말은 한때의 감정에 대한 고백이었지만 사실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그건 내게서 멀어지기 위해 그가 던진 마지막 문장이기도 했다.
잠시 차가 멈추자 휴대폰이 진동했다.
선배였다.
“소이야, 전화했었지? 좀 바빴어. 지금 끝났어.
무슨 일이야? “
잠깐,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가 듣는 목소리가 괜히 흔들릴까 봐.
“아까… 연우를 만났어요. 초등학교 때 알던 친구요.”
짧은 침묵.
그 뒤, 선배의 목소리가 아주 부드럽게 떨렸다.
“괜찮았어?”
그 한마디는 질투나 의심이 아닌 상대의 감정부터 묻는 배려와 다정함이 담겨있었다.
“네. 그냥… 오랜만에 본 얼굴이라.
근데 선배한테 바로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말해줘서 고마워.”
조용하지만 깊게 스며드는 말이었다. 그는 늘 이런 식이었다. 숨기지 말라고 몰아붙이지도 않고 괜찮은 척 지나치지도 않고.
“걱정 마. 혹시 네 마음이 조금이라도 흔들린다면… 내가 잡아줄게.”
그 말에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차 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조금 전보다 더 편안해 보였다.
“아니에요. 저는 괜찮아요.
감정 같은 건… 하나도 없는 친구일 뿐이었어요.”
“다행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낮게 깔린 숨.
“나도 네가 누굴 만나든… 내게 돌아오면 된다고 생각해.”
마음이 아릿하게 떨릴 만큼 너무 솔직했다.
“선배.”
”응? “
“저… 마음에 흔들림 없어요.
오늘은 그냥 예전에 친구 만난 거뿐이에요.
지금은… 선배로 마음이 가득 차 있어요.”
반대편에서 숨이 멎는 듯한 정적이 들렸다. 아주 낮게 깊게 웃는 소리.
“야. 시즌1 마지막에 이런 말 들으면 어떡하냐.”
“시즌1이라니요.”
“다음 시즌에도 우리 함께 할 거지?”
나는 괜히 얼굴이 화끈거려 고개를 숙였다.
“… 약혼도 했는데요. 당연히 해야죠.”
“그럼, 다음 시즌 보러 올래?
오늘 오전만 근무해서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어.”
마침 주차장에 도착했다. 내리는 순간 어디선가 가을바람이 불어와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야외 주차장 앞.
선배가 긴 코트를 입은 채 서 있었다.
햇빛에 눈을 가늘게 뜨고, 소이를 보자 미묘하게 입꼬리가 올랐다.
“일찍 오셨네요?”
“기다리는 건… 네가 항상 더 오래 했잖아.”
그는 내 왼손을 들어 반지를 가만히 살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손등에 입을 맞췄다.
“이제 끝났지?
그림자 같은 거.”
“응. 끝났어요.”
“그럼 우리 시즌2 시작하자.”
햇살 아래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하나로 겹쳐졌다.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오늘 스친 아주 얇은 틈은
누군가 흔들어놓는다 해도 늘 선배가 다시 꽉 잡아줄 거라는 걸.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계절의 끝에서, 소이와 선배의 이야기도 잠시 숨을 고르려 합니다.
아마 느끼셨겠지만, 두 사람의 마음은 큰 변화를 지나 조금 더 단단한 자리로 향하고 있어요.
말하지 못한 것들, 아직 열지 않은 문들,
그리고 다음 장면으로 이어질 작은 떨림까지
시즌2에서 천천히 펼쳐 보일게요.
잠시 멈추는 동안에도 여러분이 보내주신 응원 덕분에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이어갈 수 있습니다.
다시 만날 때,
조금 더 깊어진 세계로 찾아올게요.
고맙습니다.
우리, 곧 다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