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을 세기는 손끝
<꿈이 열린 자리>
그녀가 깨어난 곳은 현실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고풍스러운 공간이었다.
머리 위로 오래된 천장이 펼쳐져 있었고 그 표면엔 세월이 스며든 듯한 엷은 금빛 균열이 가느다란 실처럼 뻗어 있었다.
기둥에는 잊힌 왕조의 문양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고 쓸린 듯 반짝이는 홈 사이로 장인의 혼과 숨결이 아직도 남아 있는 듯했다.
공기에는 목향(木香)과 백단향이 은근하게 피어올라 따뜻하면서도 어딘가 스산한 기운을 만들고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손끝에 닿은 바닥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온도 없는 묘한 촉감이었다.
멀리서 여인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물결처럼 일렁이는 가벼운 발걸음 소리.
비단옷자락끼리 스치는 부드러운 마찰음.
전통 사극에서나 봤던 비단 의상 햇살이 스칠 때마다 실루엣이 달라지는 장신구들. 장신구 표면에 닿은 빛은 정원 위로 금가루처럼 퍼져 흩어졌다.
잘 다듬어진 정원에는 꽃잎이 바람을 타고 천천히 회전하며 떨어졌고 나무의 잎맥은 살아 있는 것처럼
빛을 머금고 흔들렸다.
그녀는 조용히 숨을 들이켰다.
따뜻한 공기 속에 설명할 수 없이 차가운 기운이
가느다랗게 섞여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다행히도 아무도 그녀를 보지 못한다.
여인들은 그녀의 곁을 스치며 지나갔지만 단 한 번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
마치 그녀가 빛과 그림자의 틈에 갇힌 다른 차원의 사람인 것처럼.
<왕과 같은 자>
정원 저편에서 갑작스레 정적이 서서히 다가왔다.
순식간에 모든 여인이 스르르 고개를 숙였다. 단순한 고요가 아니라 무거운 기압처럼 내려앉는 침묵이었다.
그 사이로 한 남자가 걸어왔다.
양쪽 어깨에 걸쳐진 비단은 바람도 불지 않는데 은은하게 흔들렸다. 그의 걸음은 땅이 아니라 시간을 밟고 지나가는 듯 아득하게 느렸다.
얼굴에는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자만이 지닐 수 있는 강철 같은 냉정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의 뒤에는 한 여자가 조심스레 따라왔다.
비정상적으로 가녀린 몸. 뼈마디가 드러날 듯 여린 어깨. 길게 늘어진 검은 머리카락이 얼굴 대부분을 가리고 있었지만 그녀 주변의 공기는 희미한 청색빛을 띠며 조금씩 일그러지고 있었다.
빛이 그녀의 몸을 감싸는 것이 아니라 그녀 때문에 빛 자체가 뒤틀리는 듯한 느낌.
왼쪽 팔목에는 기묘한 문양이 새겨진 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금속 같지만 금속이 아닌 살아 있는 것처럼 서늘한 기운을 뿜는 팔찌. 팔찌에서 이어진 가느다란 금줄이 왕의 손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 여인은 스스로 걷는 것이 아니라 비틀리는 몸을 억지로 내딛는 듯 조용히 끌려가고 있었다.
그러다,
그녀가 걸음을 멈췄다.
느리게,
너무 느리게…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얼굴이 돌아갔다.
그리고
이 세계에 속하지 않은
꿈의 방문자
바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공기가 찢어지는 듯한 날카로운 청각적 감각.
심장이 잠시 멈춘 것 같은 통증.
세상이 흔들리는 듯 그녀의 힘이 한꺼번에 빠져나갔다. 무릎이 꺾이며 몸이 어둠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