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구 몇 개가 골목 위에서 느리게 흔들리고 있었다.
겨울밤의 공기는 생각보다 차가웠다.
우리는 선배의 친구분 집에 잠시 들렀다가 그 집 앞에 있는 작은 카페로 들어갔다. 공장형 인테리어의 투박한 공간이었다.
“연인이라는 카페에는 연인이랑 와야지.”
선배는 ‘연인’이라는 카페 이름이 재미있다며
혼잣말처럼 몇 번이고 되뇌다 웃었다.
그날따라 선배는 달콤한 커피를 골랐다.
캐러멜 마키야토.
나는 늘 그렇듯 디카페인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
“그래도 커피는 커피지.”
그는 웃으며 그렇게 말했지만 선배는 어딘가 씁쓸해 보였다.
선배는 완벽주의자였다. 정확히 말하면 자기 자신에게만 유난히 엄격한 사람이었다. 그날 선배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를 조금 다른 방향으로 받아들였고
그 말은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되감기 되다가 결국 작은 실수로 이어졌다고 했다.
“말 하나에 이렇게 흔들릴 줄은 몰랐네.”
“스스로를 너무 몰아붙인 것 같아.”
그는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쥔 채 말했다. 잔 위로 김이 천천히 올라왔고 그의 얼굴은 생각보다 많이 지쳐 보였다.
나는 알 것 같았다. 내 주변의 남자들은 대체로 그랬다. 기준이 높고 스스로 약해지는 순간을 쉽게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들. 잘해온 시간보다 잠시 흔들린 한 순간을 더 오래 되뇌는 사람들.
내가 조용히 말했다.
“맥락이 잠시 어긋난 것뿐이에요.”
그는 고개를 들었다.
“그 말은 선배에게 떠오른 불리한 하나의 해석일 뿐이에요. “
“사실이라고 할 수는 없죠.”
“그 해석이 선배라는 사람을 규정하지도 않고요.”
잠시 말이 멎었다. 카페 안에는 잔이 부딪히는 소리와 멀리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가 섞여 있었다.
그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너는 항상 “
“한 걸음 물러나서 보더라.”
나는 시선을 잠시 낮췄다.
“제 주변엔 유난히 자기 기준이 높은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알게 됐죠. 그들은 정말 문제가 있어서 흔들리는 게 아니라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수준이 지나치게 높아서 균형을 잃는다는 걸요.”
밖은 여전히 겨울 한가운데였지만 커피는 쉽게 식지 않았다. 그날 밤, 우리는 오래도록 말을 아꼈고 각자의 잔을 천천히 비웠다.
나는 그가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의 본질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기가 만든 해석의 방향은 언제든 스스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랐다.
그 간절한 마음으로 그날의 커피를 …
천천히, 끝까지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