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웠던 해협, 따뜻했던 애플티

by 소이
Ravel: Pavane pour une infante défunte, M.19 (연주:조성진)


그날 터키 해협은 유난히 텅 비어 보였다. 바다는 넓었고 바람은 이유 없이 차가웠다. 배 위에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상하게도 공기는 성글었다.


나는 갑판 난간 근처에 서 있었다. 몸을 웅크린 채 어깨를 세게 끌어안고. 추위는 피부보다 먼저 마음을 파고들었다. 이상하게도 그날의 나는 더 어려 보였고 스스로를 지킬 준비가 덜 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의 팔이 내 어깨를 감싼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빨간 담요를 내 어깨에 덮어주고 자신의 가슴으로 내 어깨를 꼭 감싸 안아주었다. 나는 그 품 안에서 조용히 떨고 있었다. 사랑을 처음 가르쳐준 그 사람의 품은 … 그렇게, 말없이 사람을 보호하는 방식이었다.


그때였다. 찻잔 하나가 내 앞으로 조심스럽게 밀려왔다. 잔은 아름답고 무늬가 고급스러웠다. 멋진 옷을 입은 선장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말없이 웃으며 고개를 조금 숙였다. “마드모아젤~”


애플티였다. 김이 천천히 올라왔고 달콤한 향이 바람을 밀어냈다. 나는 두 손으로 잔을 감싸 쥐고 한 모금을 마셨다. 단맛이 혀에 닿았고 그 온기가 목을 타고 내려가자 몸이 조금씩 풀렸다. 떨림이 천천히 사라졌다.


그날 이후 애플티는 언제나 달았다. 터키에 간다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꼭 그 차를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집에서도 마셨고 가끔은 비슷한 여행지에서도 마셨다.


하지만 아무리 비슷한 맛이어도 그날의 애플티와는 달랐다.


바람의 차가움도 그의 팔이 만들어주던 온기도 그 위에서 조용히 웃던 시선도 어디에도 없었다.


가끔은 그날의 황량함이 그리운 날이 있다. 사람들로 가득 찼지만 이상하게 비어 있었던 해협의 공기와 그 빈 공간 속에서 잠시 보호받았던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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