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살, 4살 서로의 두 번째를 응원합니다.
나의 이뽕이가 울고 먹고 싸기만 (잠은 워낙 안 잤던 아이) 하던 시절 곤히 낮잠을 자는 녀석이 신기해서 반쯤 넋이 나가 바라본 적이 있었다. 집으로 방문한 엄마의 '밥 먹어' 소리에도 난 대답은커녕 기척도 안 했다고 한다. 무슨 일인가 곁으로 온 엄마의 눈에 담겨 보이는 내 몰골이 세상 처량했는지 혹은 처참했는지 이렇게 말했다.
"아이는 하나만 낳아서 잘 키워. 그리고 네 인생을 살아."
이뽕이가 어린이집에 가고 나서 시작되는 나의 집안 청소, 밀린 빨래, 설거지 더미, 요리 못하는 내가 그래도 주겠다며 음식을 하고 나면 어느새 띠링. 하원 시간.
"회사 복직하면 매일같이 하던 청소, 요리, 빨래 이거 언제 하지. 집이 쓰레기장이 되면 어쩌지."
"부딪혀보면 되겠지. 정 안되면 그냥 그만둬도 괜찮잖아."
내가 원한 대답은 이게 아니었는데...
아이를 낳기 전에는 집안 청소기는 늘 H의 전유물이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강박적으로 나는 집안 위생에 매달렸고, 졸지에 가사를 '업'으로 하는 엄마가 되었다.
태어날 때부터 '이모님'들과 함께 였다는 H는 집안일이라고는 해본 적도 없고, 해야 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빨래와 설거지는 수시로 해치웠다.
H의 눈앞에는 빨래와 그릇들만 보였고, 나의 눈앞에는 틈새 먼지들과 머리카락, 차려내야 할 음식들과 잔재들이 보였다.
투덜거리며 시어머니에게 '요즘 남자' 답지 않게 집안일 참여가 없다는 H와의 갈등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지혜로운 건지 단숨에 차단하고 싶었던 건지 그 주부터 매주 한 번씩 '가사도우미'가 우리 집에 왔다.
(직업정신이 투철하셨지만 그보다 내 집에 누군가의 손길에 닿는 게 내키지 않아 3개월 이내 끝을 냈다.)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게 되면 부부 사이는 극과 극이 된다고들 하는데, 최고조의 정점을 몇 번 찍고 나서 H는 집안일에는 손을 뗐다.
집에서 있는 시간이 많은 내 손이 더 많이 닿았고, 결혼 전 방청소 안 한다고 등짝 두드려 맞던 내가 늘 끊임없이 집에서 '일'을 하는 걸 보면서 엄마는 더욱더 말했다.
"이뽕이 하나만 잘 키워. 너도 똑같이 일해. 멋진 옷 입고 사회에서 당당하게 네 일 하는 네가 보고 싶어."
다 자란 자식의 곁에서 자신의 시간적 여유와 가느다란 체력을 손주사랑으로 내세우며 황혼육아를 자처한 친정엄마를 보며 주변에서는 다들 부럽다고들 했다. 맞벌이 가정의 절반 이상이 끝없는 의심 속에서 cctv만 보고 있느니 안쓰럽고 죄송스러워도 부모님, (딸이 당당하게 말싸움을 하고 다음날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친정엄마의 곁으로 아이를 맡기고 출근을 한다고들 한다.
많은 용돈을 드려도 손사래 치며 단칼에 '애는 예뻐만 하고, 그냥 보기만 한다.'라고 미리 이야기하는 부모님들도 있다고 하는데, 딸의 사회생활을 응원하며 아이는 걱정 말라며 나의 엄마는 말해왔다.
조건이라면 이뽕이 단 한 명.
이미 한차례 육아휴직의 기간을 연장하고 나에게 주어진 회사에서의 육아휴직이 오늘로 끝이 난다.
군대보다도 길게 4계절을 두 번이나 겪고, 난 2년 3개월 만에 다시 회사, 회사원으로의 복귀를 앞두고 있다.
'무엇이든 잘하고 싶습니다. 회사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라고 패기 있게 외쳤던 것도 같았던 나는 이제
'무엇이든 제시간에 끝내고, 회사에서 퇴근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라고 각오를 말해야 하는 아이 엄마라는 두 번째 직업을 가슴속에 품고 회사에 출근을 할 것 같다.
공교롭게도 나의 이뽕이도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기존 다니던 단지 내 어린이집에서 생일이 늦다는 이유로 반이동을 못하고, 몇몇의 다음 해 태어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해야 한다고 했기에 과감히 새로운 어린이집으로 재입학을 앞두고 있다.
가뜩이나 그해 제일 마지막에 세상을 박차고 나와서 태어나자마자 두 살이어서 억울했는데, 요 녀석들 세계도 참으로 치열했다. 이뽕이를 돌봐주는 친정 엄마의 편의를 위해 계속 다닐까도 했지만 주변에서 다들 '퇴행'이라는 진화론에 가끔씩 등장하는 단어들을 열거하며 성토를 했다.
아이는 우선 낳으면 어느새 이만큼 자랐네 라며 감탄하는 게 일방적인데, 그 이만큼이라는 단어는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와 엄마의 고민과 '팔랑귀를 부여잡고 흔들리지 않을 육아 철학' 이 고군분투를 허울 좋게 포장한다.
아이의 두 번째 '사회생활'을 앞두고 다시 시작된 후보군들을 둘러보면서 새삼 '빈부격차'를 느꼈다.
입구부터 화려한 영어 문구와 깨끗한 건물로 환하게 맞이하는 곳에서는 '선진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영어, 체육, 미술, 오페라까지 내가 이뽕이 나이였을 때는 상상도 못 했던 것들을 그만큼의 값을 주고 하고 있었다.
내 기억에 난 영어를 중학교 때 처음 모두가 배우기 시작했고, 나름 초등학교 때 몇 단어 더 알고 있어 선행학습의 산증인이라고 생각했었던 H와 그곳에서 14개월 아기가 영어로 웅얼거리는 걸 보면서 적잖이 충격을 받았었다.
어린이집에 가고 싶다며 주말에도 언제 월요일이 오냐고 하는 아이들도 있다던데, 아직도 나의 이뽕이는 아침이면 '5분만 놀고 옷 입을게요.'라고 한다.
엄마와 울기를 반복하며 생이별을 겪었던 어린아이가 다시 새로운 곳에 적응을 해야 할 곳이었다.
H와 나는 아직까지 교육보다는 보육이 우선이었고, 그곳에서 충분히 자고 싶으면 자고, 놀고 싶으면 놀아야 하는 곳. 무엇보다도 지금 현재 그곳에 있는 아이들이 행복해 보이는 곳으로 선택을 했다.
거리가 멀어졌고, 차를 타고 다녀야 하고, 큰 건물에서 다시 새롭게 그만의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한다.
몇 달 전부터 가족 모두가
"이뽕아. 아침에 눈을 뜨면 아빠가 없고 엄마만 있네. 아빠는 어디 갔지?"
"아빠는 회사에 갔어."
"회사에 왜 갔지?"
"돈 벌러. 돈 벌어서 이뽕이 빠방사주구, 비행기 타고 하와이 가려구"
"맞아."
복직을 앞둔 몇 주 전부터
"이뽕아. 아빠가 회사에 가는 것처럼 이제 엄마도 아빠처럼 회사에 갈 거야."
"엄마도 회사 가면 이뽕이 빠방사주고, 하와이 가?"
"그럼. 엄마가 이뽕이 빠방도 사주고 하와이도 갈 거야."
"웅."
그리고 며칠 전부터
"이뽕아. 아침에 일어나면 이제 엄마가 회사에 가서 없어. 대신 누가 있지?"
" 웅. 엄마는 없고, 할머니가 이뽕이 옆에 있어."
"할머니랑 씩씩하게 어린이집 차 타고 안녕하고 잘 지낼 수 있지?"
"사이좋게 지내고. 집에 와서 할머니 아니 힘들게 안아달라고 많이 안 해요."
두 번째 사회생활을 앞두고 요 며칠 아이와 떨어질 생각을 하면서, 다시 그 회사의 구성원이 된다는 사실이 두려워 침울했고,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넘치는 모성애를 가지고 있어도 타고난 모성력 부족으로 아이에게 화를 낸 적도, 안아주기보다 훈계로 다스린 적이 생각이 나서 자책을 하기도 했었다.
온전히 아이를 위한 '육아휴직'을 제대로 보낸 건가 냉정하게 평가하면 10점 만점에 2-3점 도 후하다 라며 자괴감에 괴로워하기도 했었다. 집안에 내내 틀어박혀 아이와 씨름하는 시간을 보내는 대신 SNS속의 우아한 엄마들처럼 되고 싶었는데, '남자'도 이해하기 어려워 결혼생활을 후회한 적도 있었는데, '남자아이'는 정말 너무 힘들다며 엉엉 운 적도 많았다.
그렇지만 신기하게도 그 와중에도 난 '회사에 나가서 일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스트레스로 택배박스가 계속 도착하고, 홀리듯 등 하원용으로 '자유부인 플렉스(FLEX)' 날이라며 남편에게 고가의 옷을 입고 '어떤 거?'라고 사진을 보내면 H는 '갈 데도 없으면서'가 아니라,
" 두 개 다 사라." 하며 더 큰 플렉스로 맞장구를 쳐주었다.
저녁에 잠을 안 잔다고 10시까지도 눈을 비벼가며 부릅뜨고 있는 이뽕이를 힘들게 재우고 맥주캔을 따는 순간 '엄마' 하고 불러 H에게 '니아들 미워.'라고 해도 다음날이면 또 이뽕이와 산발인 머리로 마주 앉아 주먹밥을 같이 먹었다.
심심하면 언제든 둘이 차를 타고 나갔고, 놀았다.
2주 남짓 이탈리아도 다녀왔고, 하와이도 다녀왔다.
꿈같은 국내여행도 회사 눈치 없이 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나와 이뽕이는 그렇게 다녔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1년동안 거의 최소보육일수만 채웠던것 같다.
나에게는 참 행복한 여전히 아쉽지만 그래도 참 아름다웠던 육아휴직의 나날들이었다.
새벽 내내 이뽕이가 한 시간 단위로 깨서 '엄마 안아줘'. '엄마 어디 있어.'를 말했다.
알고 있는 것 같다. 이제 내일이면 엄마, 아빠, 그리고 모두가 말한 엄마가 회사를 가는 날이다.
불안에 떨며, 안 하던 실례도 팬티에 해버린 오늘의 이뽕이가 가여워 꼬옥 안아줬다.
아이들의 적응이 다 큰 생각 복잡한 어른보다 빠르다고 한다.
사실은 그 적응이 포기라는 단어로 예쁘게 포장된 것이라고 해도, 아무렴 어떠겠느냐.
나와 그리고 이뽕이의 두 번째 '사회생활'을 응원한다.
우리는 잘 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