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임원의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by 이알


그날은 아침부터 다이내믹했다.

이미 한차례 이뽕이는 우리 집 조명 컬렉션 중 하나인 5(오번이라 부른다)를 떨어뜨려 금을 낸 적이 있다.

국내 편집샵에 전화도 해보고 담당자 통해 구하려 해도 따로 구할 수가 없어서 그냥 방치를 해 둔 상태였는데, 그날 하필이면 치실을 본인이 가져오겠다며 가서는 shade를 결국 박살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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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맙소사'를 외칠 새도 없이, 아이가 놀랠까 다독였다.

'괜찮아. 전날 하필이면 아빠가 치실을 5 옆에 놔둔 게 잘못이야.'

'괜찮아. 어차피 금이 갔는데 멋진 크랙이 생겼네!'

보기 좋게 아주 박살이 난 사진을 H에게 보내려는데, 메시지가 와 있었다.


- J팀장님 임원 되셨다. 축하 연락드려.


매년 1월 말이 되면 그룹 임원 인사 발표가 난다. 윗선에서는 진즉에 누가 될 것이다. 누가 집에 가신다. 등등 입에서 입으로 오고 가지만, 나 같은 계급 내 최하위 사원. 덧붙여 (육아) 휴직자에게는 남 이야기일 뿐이다.

남편의 문자를 보고 뉴스 페이지를 열었다.

올해는 젊은 인재, 여성 임원의 발탁 등이 크게 헤드라인으로 이번 임원에 대해 알려주고 있었다.

사실 그룹 자체로 보면 임원이 너무 많아서, 내가 같이 일하던 팀장이 임원이 되느냐. 재계약을 하느냐. 또다시 우리 팀을 맡느냐. 가 중요하지 누가 임원이 되느냐는 크게 직원들에게는 큰 관심사가 아니다.

더군다나 내가 속한 팀은 '고인 물 of 고인 물', '최고 기피 부서'라서 그런지 인사 발표 후에는 크게 변하거나 그대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큰 분들이 혁신을 일으켜 더 높은 곳으로 가거나, 성과를 내지 못해 집으로 가는 게 기존 절차다.

뉴스에 나오는 모든 임원들을 다 아는 것도 아니고, 아침에 공고되는 임원 명단을 봐도 내가 아는 사람을 필터링으로 찾아야 할 정도이다.

그런데, 이번 남편의 회사 임원 소식은 조금 신선했다.

'내가 (조금) 알고 있었던 분'의 임원 소식이라니. 신기했다.

사원 나부랭이가 회사 생활에서 옆자리 동료처럼 씽긋 웃으며 임원과 알고 지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인사권을 쥐고 있는 경우, 소위 말하는 임원 스태프인 경우를 빼고는 크게 일을 낸 경우? 랄까. ( 큰 성과 혹은 큰 업무사고)


- 복직하고 찾아뵙고 인사드리지 뭐. 휴직한 주제에 무슨 ㅎㅎ 축하 많이 받고 계실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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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뽕이를 재우고 퇴근길 친구가 보내준 사진을 보면서 '그래도 육아가 제일 힘들어'라고 서로 힘들다 하는데 뜬금없는 메시지가 왔다.


- 이알 잘 지내냐?

나 오늘 드디어 진급했다. 니 응원 항상 고마웠어.

지지해주는 후배들이 있다는 게 정말 고맙다. 파이팅!


오늘 H 소식의 주인공 J 팀장님의 메시지였다.

갑자기. 너무 뜬금없는 先 소식에 뒤늦었다 생각한 後 축하를 하기는 해야 해서 똑똑똑 인사를 보냈다.


- 너 복직이 언제지? 휴직 전에 상무 될 줄 알았는데 이제 되었네. 복직하고 보자!

- 네. 복직하고 찾아뵐게요 ^.^



퇴근하고 자려고 누운 H에게 팀장님에게 메시지가 왔다고 했다.

'원래 이렇게 임원 되고 하면 이런 문자 다 돌리고 그러나?'

'나 지금까지 임원 세명을 만들었는데 단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데'

'내가 휴직하고 있으니까 그런 거겠지. 회사에 없으니까. 먼저 연락드릴걸 그랬나. 오지랖 같아서 안 했는데'

'굳이 휴직한 사람한테 직접 문자까지 보내나. 다들 임원 분위기, 축하에 취해 있을 텐데.

네 생각이 났나 보지. 그러게 먼저 보내라니까.'


'그나저나, J 팀장님 참 난사람인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이 임원이 되는 게 맞지.'



H의 마지막 말이 잠자리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평소 J팀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H는 말했었다. '좋은 분이네.'

J팀장은 내가 회사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2012년 겨울 그 부서 파트장으로 첫인사를 나눴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 선배들 틈에서 방치하다시피 현장업무에 놓였었다.

프로젝트 부서였고, 파견된 몇몇 선배들은 바빴다. 물어보면 언제든 알려준다고는 하는데, 아무도 자리에 없었다. 늘 현장에 있었고, 사무실에 덩그러니 앉아 매뉴얼이나 부서 업무 문서들을 부릅뜨고 쳐다봐도 '왜 폰트를 이것만 써야 하는 걸까' 자문자답으로 이어졌다.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 기간에 인사팀 지목으로 모두의 앞에서 PT발표를 한 적이 있었다.

같이 발표를 했던 전문성 뛰어난 자료들 사이에서 내 자료가 비교되어 인사팀 담당자에게 왜 내 PT자료를 뽑았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의 대답은 간결했다.

'독특해서요. 이 회사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PT에요.'

난 화학공학을 전공했지만, 졸업 후 디자인 일을 하다가 공대인들이 90프로 이상인 회사에 재취업했다.



1. 혼자 모니터만 보고 앉아 있다가 너무 답답했다. 이게 왜 문제가 되는지 이건 또 왜 이렇게 처리가 되는지 알아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물어봤다. 지금의 임원. 당시 나의 파트장에게.

그날의 그 시간을 아직도 나는 잊지 못한다. 차근차근 하나씩 선배들이 하는 '하다 보면 알게 돼, ' '그냥 이건 이렇게 하는 거야.'라는 말을 그 시간에는 듣지 않았었다.

그리고는 그분은 말했다. '언제든지 궁금한게 있으면 선배든 나든 물어봐.'

(훗날 감히 파트장에게 그런 걸 물어봤다고 선배들이 시시덕거리며 까는? 상황을 엘리베이터에서 겪었다.

그 주인공이 나인데요)

자유로운 그전의 회사 분위기와는 달리, 철저한 계급이 있고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직급에 따라 해서는 안될 행동과 무언의 규칙이 있었다.

그 자리에 선배들이 없었다고 해도 너무 궁금해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고 해도 난 감히 파트장에게는 물어서는 안될 쌩기초를 물어봤고, 파트장도 내 옆에서 차근차근 친절하게 설명해줬다는게 포인트였다.

아직도 이해가 잘 되지 않지만 '그런걸 묻고 대답해줬다.' 라는게 당시 부서내 선배들의 명백히 웃긴 상황이었다고들 한다.





2. 부서 동기의 할아버지 장례식에 가야 했었다.

너무 갑자기라 차량 지원을 신청하기도 늦었고, 가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선뜻 아무도 나서지 않았었다.

저녁 9시, 대구에서의 부고 소식이었다.

소식을 듣고 동기의 직속 선배가 가야겠다는 말에 나와 또 다른 동기가 따라나섰다.

그리고 출발하려는데 양손 가득 간식거리를 사들고 파트장이 왔다.

'나도 가야지'

무사히 다녀오고, 한 명 한 명 내려주고 선배에게 주유비라며 봉투를 무심하게 쥐어 주며 파트장이 차에서 내렸다. 그때 선배는 말했다.

'정말 좋은 분이야. 너 아마 저런 분 회사에서 만나기 힘들걸'



J팀장은 그 뒤에 계속 옮겨 다녔다. 소위 인맥 인사이동이라고들 했다.

늘 고생스러운 프로젝트팀을 맡았다. 어떤 건 성공했고, 다른 건 실패했다.

매년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이번에 임원 달겠지.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매년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이제 마지막인 거 같다.'

그분의 직급이 파트장이건 팀장이건 가끔씩 마주치면 늘 반갑게 맞아주셨다.

내가 유일하게 '업무 고단함'을 이야기해도 이해해주며, 동료들의 결혼 소식에 그분은 나를 부르셨다.

'이알. 시간 되냐? 축의금 좀 전달해줘~'

그러면서 커피 한잔 마시며, 신입사원 티를 털어낸 묵묵히 묻은 직장인의 푸념을 늘어놓았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별의별 사람을 다 봤었다.

나는 너무 바빠서 점심도 못 먹고 일하는데, 딱히 할 일이 없이 웹서핑만 하면서 주말출근을 하는 사람을 보면서 부글부글 열 받은 적이 있었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거냐고 묻자 '곧 정년퇴직이잖아. 퇴직금 많이 받으려고 그러는 거지'

라는 내 상식에서는 이해가 안 되지만 누군가의 아버지라면 이해를 해야 할 것 같은 이유에 그러려니 했다.

해외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는데도 로밍으로 오는 전화에 H의 휴대폰을 바닥에 내팽겨 치며 연차인데도 뭐 하는 거냐고 묻자 '지금 안 받아도 어차피 또와.'

라는 답 없는 대답에 토라져 혼자 반나절을 보낸 적이 있다. H는 반나절을 호텔에서 회사일을 했다.

당직으로 출근이 정해져 있는데, 갑자기 장염으로 떼굴떼굴 바닥을 구르며 도저히 안 되겠다고 울며 전화를 하니 '커피 한잔' 이라며 휴일을 반납하고 대신 근무를 해주었던 선배가 있었다.

출산 당일,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모르는 번호로 수십 개의 문자들의 발신인은 별로 이야기도 하지 않았던 (그래서 번호도 없었던) 부서원들의 축하 문자였다.



얼마 전 복직원계를 작성하러 오랜만에 회사에 갔다.

신종 바이러스로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웃으며 찡그리며 짜증 내며 무표정으로 각각의 얼굴로 회사에 있던 그 사람들과 난 이제 다시 회사원으로 일을 하게 된다.

(임원이 되셔서 바쁜) 만나지 못한 J팀장님의 자리에 작은 메모를 남기고 왔다.

'뒤늦은 축하드립니다! 복직하고 찾아뵐게요^^'


내가 아직도 임원이 된 그분과 거리감 없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자리에 찾아가 메모를 남기고 가는 것도 H는 신기하게 생각한다. 나는 의외로 단순해서 인사 한마디, 안부 한마디로 인연이 이렇게 이어졌을 뿐인데, 모든 사람들의 말처럼 J 팀장이 '난사람' 이어서 가능한 걸지도 모르겠다.


- 뭘 이런 걸 다 ㅎㅎ 복직하고 봐 ^^


그는 참 좋은 사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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