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가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

유아 동반석에서 아이와 함께 할 수 없던 이야기

by 이알





(아이를 가진 부모 입장에서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불편하시면 넘겨주세요 ^.^)



자동차-기차-로봇-공룡으로 흔한 남자아이들의 관심사처럼 나의 이뽕이는 자동차와 기차 그 중간 즈음에서 늘 상기되어 있다.

어릴 때는 늘 '우리'차의 '이뽕이'카시트가 이동수단이었지만

아이가 제법 자라고 해외를 몇 번 다녀오고 비행기의 본인 자리, 우버의 뒷자리, 기차의 엄마 옆자리, 지하철에서 본인의 유모차 자리, 버스의 유모차 자리를 경험해 봤다.

사실 국내에서는 카시트가 너는 별로 엄마 아빠는 최고이기 때문에 아이를 데리고 장거리 여행을 가거나 차가 세우기 어려운 곳을 갈 때에도 늘 자차를 이용했다.

안전상의 이유도 있지만 아이와 함께 하는 택시 거부 사례도 많이 들었고, 아무리 씩씩하게 잘 걷는 아이라도 어느 순간 '엄마 안아줘' 하면 '여보 안아줘' 하며 남편에게 그날의 무용담을 늘어놓을 나 자신을 겪기 싫었다.

그리고 가장 걱정이었던 건 이 나라에 만연한 '아이 혐오'에 대한 시선 때문이었다.



이뽕이가 첫 기차를 탄 건 광주 시가에 가는 길이었다.

늘 차를 가져갔는데, 명절 전후로 더욱 열악해지는 호남 고속도로에서 이제 아이는 더 이상 긴 낮잠을 자지도 않았고, 남편과 나는 영상 노출을 안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버님의 추천으로 '유아 동반석'으로 아이와 함께 첫 기차를 탔다.

아기라 부르는 게 익숙한 11개월의 쪼꼬미는 연신 창밖을 보며 엄마는 빨라서 지나치는 창밖을 보며 좋아했다.

H와 나는 광주에 갈 때는 기차를 타고 가도 되겠다.라고 생각했다.

'유아 동반석'에는 우리 말고도 많은 아이와 함께하는 부모들이 있었고, 아이들은 저마다 그 공간에서 나름의 기차여행을 하고 있었다.

저마다의 소리로 엄마에게 이야기를 하고, 노래를 틀어놓기도 하고, 재잘거리며 아빠에게 설명을 하기도 하는 가족들의 풍경들이 있었다.

아직 이뽕이가 자기만의 언어를 마음껏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도 그 틈에서 수월하게 한 공간을 차지하며 시간을 넘겼다.

간간히 보이기도 했던 '유아 무동반' 승객들도 보였지만, 그들 모두 아이들과 함께 하는 그 공간에서 각자 나름의 방법으로 기차 안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H와 나는 가끔씩 기차를 타고 다녀고 되겠다.라고 생각했다.



이뽕이의 두 번째 기차는 이탈리아에서였다.

피사를 꼭 보고 싶다는 H의 계획으로 로마-피사를 가는 기차를 탔다.

바깥 풍경에 어느 정도 본인의 언어를 퐁퐁 내뱉기 시작한 20개월의 이뽕이는 '치다', '덤프트럭', '크레인' 등등의 자동차 언어를 말했고, 목소리가 조금씩 들리는지 주변 외국인들의 시선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나의 예민함의 정도가 조금씩 높아졌는데, 하필 낮잠시간과 맞물려 잠투정 짜증을 부리기 시작한 아들과 충돌했다.

H가 달래고 책을 보여주고 그림을 그려주고 과자를 줘도 온갖 짜증을 내며 칭얼거림으로 기차가 어수선해지고 하나둘 귀여움의 시선이 낯선 눈빛으로 바뀌어 우리 가족을 보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이날 영상을 허용했고, 보여줬다.

(영상 노출을 하던 아이가 아니라서 그런지) 5분 정도 지났을까, 이것도 싫다고 울기 시작했다.

결국 아이를 안고 한구석으로 가 토닥토닥거리니 잠잠해진 아이를 안고 자리로 돌아오니 옆자리 이탈리아 부인들이 내게 말했다.

"아이들은 다 울어요. 괜찮아요. 자리에 앉아서 아이를 안아주세요."

"아이가 피곤한가 봐요. 모두가 이해해요."

타인의 나라에서 아이를 데리고 함께한 이탈리아가 좋은 기억으로 남았던 건 그들 대부분이 내 아이의 존재와 그런 아이와 함께 다니며 전전긍긍하는 우리 부부에게 보내준 일종의 이해였다.



그리고 얼마 전 우리는 광주에 다녀오는 SRT 유아 동반석 고속열차를 탔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 그 공간에서 우리 아이는 2번의 직접적인 경고와 3번의 안내방송을 들었다.

열차가 도착하고 자리를 정리하고 앉자마자 지나가던 승무원이 우리에게 말했다.

"아이들이 시끄럽다는 문의가 들어와서요. 좀 조용히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희 지금 탔는데요. 저희가 낸 소리라고는 '여기 앉아 있어. 아빠 가방 올려놓을게.'가 전부예요."

우리의 대답을 채 듣기도 전에 그는 우리 앞자리로 가서 똑같은 말을 했다.

그렇게 그 승무원은 그 칸의 모든 아이를 동반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다른 칸으로 갔다.

순간 내가 다른 칸을 탄 건가 싶어 H에게 물었다.

"우리 유아 동반석 아니야?"

"맞아. 누가 시끄럽다고 했나 보지. 근데 너무한데? 타자마자 이뽕이는 한마디도 안 했어."

라고 말하며 누군지 보겠다며 쭈욱 일어나 그 칸 내부 손님들을 한번 둘러보고는

"저 중에 누가 호출했나 보지. 유아 동반석에 왜 타지? 그 정도도 용납을 못하면 휴"

열차에 타자마자 우린 아이와 함께 탔다는 이유만으로 승무원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나는 더욱더 이뽕이의 소리에 예민해져 있었다.

"이뽕아. 지금 사람들하고 같이 기차를 타고 가는 거야. 목소리가 커지면 다른 사람들이 코 잠을 잘 수가 없대. 엄마랑 같이 자동차 구경하자."

이뽕이와 나는 한참 자동차를 보며 차장 밖 풍경에 대해 작은 소리로 이야기를 하는데 또 어떤 여자 객실 승무원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이뽕이에게 다가와 손가락으로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 목소리가 너무 커. 좀 조용히 해줘."


이뽕이는 놀라고, H와 나는 어이가 없었다.

큰소리를 내고 울고 생떼를 부리고 괴성을 지르거나 했으면 죄송하다 라고 그 여자에게, 그 여자에게 소리를 찾아 경고하라고 했다던 그 사람에게 가서 백번이고 천 번이고 미안하다 했을 거다.

그리고 아이를 데리고 나가 어떻게든 달래고 그게 안되면 그 열차칸이 아닌 곳에서 아이를 달래고 집에까지 왔을 우리였다.

그런데 우리는 옆자리 아저씨의 20분째 이어지는 통화 소리보다 조용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칸의 누군가의 '먹방' 동영상은 이어폰을 통한 소리가 아닌 객실 방송처럼 그 공간 안에서 다 들리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가까운 곳의 여자 둘은 쉴 새 없이 본인들의 이야기를 떠들어 난 그들의 신상과 이제 내려서 누굴 만나고 오늘 저녁에 뭘 먹을 건지도 알게 되었다.


그 소리에 묻혀 우리는 서로의 말이 들리지 않아, 난 아이의 귀에 바짝 대고 이야기하고 이뽕이는 창밖에 딱 붙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왜 우리 아이가 작은 소리로 엄마인 나와 '유아 동반석'에서 이야기를 한 그 소리만 그들에게는 '소음'으로 들리는 건지, 우리에게 주의하라며 내 아이에게 손가락질을 하던 그 객실 승무원에게 다 큰 어른들이 '유아 동반석'에서 떠드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는지 묻고 싶었다.

멍해진 나와 놀란 이뽕이를 보더니, 재빨리 정신을 차린 H는

"신경 쓰지 마, 다 큰 어른들이 더 떠들어"

라며 이뽕이를 토닥이고, 아이와의 대화에서 더 예민해질 나를 다독여줬다.

우리는 그 뒤 40분을 더 열차 안에서 시간을 보냈고, 2번의 경고 방송을 또 들었다.

'객실 내 아이를 동반한 손님들은 아이들을 조용히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방송들이 나오는 동안에도 유아 동반석의 아이들은 내 아이 포함 모두 자고 있었다.

그 방송들이 나오는 동안에도 유아 동반석의 어른들은 여전히 소음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H와 역에 주차한 차의 카시트에 자는 아이를 태우고 집에 오는 5분 내외의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나 이제 SRT 안 탈래. 그 여자 손가락질하고 말하는 거 봤어? 나도 안 해본 명령이었어."

"손가락질과 소리의 대상을 우리한테 잘못한 거였어."

"아이 데리고 이 나라 살기 너무 힘들다. 대중교통 안 탈래 당분간은"


아이의 시끄러운 소리와 내려달라는 생떼를 달래지 못하는 부모와 달래려고 노력조차 안 하는 부모는 다르다.

후자의 경우보다 훨씬 많은 대다수의 부모들은 전자이다.

식당에서 내 아이가 앉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자리를 원했던 젊은 연인을 본 적이 있었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이제 곧 아이가 떠드는 소리로 그들의 식사를 방해받고 싶지 않았던 거라 생각했다. 충분히 이해한다. 예뻐하는 것 경험하는 것은 다른 거니까.

동물원의 차창 밖 동물을 보는 것과 그 동물과 한 공간에서 지내는 건 엄연히 큰 인내심과 돌발상황에 대처해야 하는 부담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 거니까.

TV 방송 프로그램의 예쁘게 생긴 아이들이 나와 아이들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아이들의 걸음으로 하루를 보낸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예쁘다.''너무 귀엽다.''정말 아이들이 사랑스럽다.' 하며 타자를 눌러대는 남녀노소가 많다. 그런데 그들은 알까? 그 예쁘게 생긴 아이들도 당신들이 식당에서 봤던 소리를 지르는 아이가 될 수도, 당신들이 버스에서 봤던 드러눕고 생떼를 부리는 아이가 될 수도, 당신들이 봤던 서점에서 사달라고 한없이 우는 아이의 모습도 있다는 걸 말이다.

우리 엄마가 늘 하는 이야기가 있다.

이뽕이가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식사가 끝날 때까지 어른들과 함께 그 시간을 버티지 못하는걸,

이뽕이가 '엄마 잘 자요' 하며 알아서 잠을 자지 않는 걸 보며


"애들은 원래 그래. 미디어나 책 속에서 만들어진 아이에 대한 환상으로 아이를 가두지 말았으면 해.

이뽕이의 기질과 네가 원하는 아이 사이에서 지혜롭게 많은 경험을 해야 해."



사실 우리나라의 '아동 혐오'에 대한 시선은 익히 들어왔고, 아이를 낳고 경험했다.

난 이제 너무 좋아했던 제주도를 지난겨울 아이와 다녀오고 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내가 자주 갔던 그곳들이 모두 'NO KIDS ZONE' 이 되었고, 아이 친화적 장소 호텔에서만 5일을 보내고 오니 제주는 이제 아이가 있는 우리를 위한 장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나 키즈카페에서 아이와 함께 하면서도 휴대폰이나 보면서 아이를 방치하는 부모는 자주 봤다. (난 아직까지 대소변 기저귀를 가는 무시무시한 부모는 본 적이 없다.) 그런 부모들은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기관에 맡겨놓고 본인들끼리 나와서 했으면 한다. '아동 혐오'의 근본은 아이들보다 그 아이들을 '방목'이라는 이유로 '방치'하는 부모들에게 있다.

방목과 방치는 엄연히 다르다. 방목은 일정 규칙과 규범을 지정해놓고 그 안에서 아이들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고, 방치는 울타리조차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다.

어려서부터 방치당한 아이는 그 상태로 자란다. 놀아줄 사람이 없어서, 모르는 아이의 엄마에게 말을 걸고, 놀아달라고 한다. 자신의 부모는 그곳에서 아이와 놀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 근데 왜 이야기가 방치 부모 이야기까지 갔는지 모르겠네....)


각설하고, 유아 동반석에서 아이와 함께 탔다는 이유 만으로 경고를 받았던 나는 아이와 함께 기차를 타는 것을 당분간은 안 할 것 같다. 고생스러워도 내 아이와 두배가 넘게 걸리는 내 차에서 마음 편히 가야겠다.

'유아 동반석'을 왜 만들었는지 그곳에서 아이의 목소리 데시벨이 어느 정도이어야 하는지 궁금하다.

타자마자 너는 소리를 곧 내고 시끄러운 소음을 낼 대상이라는 이유로 '유아'를 지정했다면, 그곳에 타서 마음껏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잣대로 경고와 지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출산율이 최저라고 뉴스에서는 늘 떠들어대는데, 아직도 곳곳의 관공서에서조차 유아 혹은 아동을 위한 수유실이나 공간 하나 마련하지 못하고, 만들어진 곳이라고 들어가면 덩그러니 창고가 전부인 곳도 많다.

역이나 대형 쇼핑몰 등등의 아이 동반 화장실이나 수유실을 들어가면 젊은이들이 화장을 하고 있거나, 개인 볼일을 보고 나오는 경우도 자주 봤다. 난 그들에게 단 한 번도 원망의 눈초리를 보낸 적이 없다.

다들 사정이 있으니 하고 '이해'를 한다.

엄연히 그 장소들의 밖에는 '수유부와 아이 동반 외의 이용객은 이용을 자제'라는 경고가 있어도 말이다.


아이가 말이 트여 곧잘 하는 요즈음 어딜 가도 아이가 내는 소리에 전전긍긍하고 외출을 하면 H와 나는 늘 말한다.

"큰 소리로 이야기하면 안 돼."

"쉿"

언제쯤 나의 아이가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아진다.

나와 같은 고민. 외출하면 피해를 줄까 전전긍긍하는 부모가 이 세상에 정말 많다는 걸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한다.

독일에서 오래 살다 온 친구가 아이를 낳고 한국에 3개월 머물면서 가장 많이 했던 이야기가 있었다.

"이 나라에서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있는데나 있어? 어딜나가 내 아이를 왜 그렇게 쳐다봐?

무슨 소리만 나면 쳐다봐. 무슨 잘못을 한것도 아닌데"

한창 혈기 왕성한 4살 여자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아이가 뭘 하는지 쳐다보고 조금만 소리를 내도 잔뜩 성이난 눈빛으로 쳐다본다는 것이다. 자기네 나라에서는 겪은 적 없는 불쾌한 경험이라고 했다.

독일에서는 겪어본 적 없는 일이라며, 아이에 대해 너무 예민하게 군다는게 그의 설명이었다.


그날 나와 같이 유아 동반석으로 타고 그토록 많은 민원을 했던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를 가진 부모가 본인 아이가 잠이 깰까 시끄럽다 다른 아이들 보고 경고하라 했을 수도 있고, 무소음 속에서 편안히 목적지까지 가고 싶었던 사람일 수도 있다.

그게 무슨 이유이든 다음번에는 충분히 작은 소리도 낼 수 있으니 '유아 동반석'에 감히 타지 말아 줬으면 한다.



2시간 정도 열차를 이용하면서 업무 등을 보려고 하는 사람은 유아 동반석이 존재하는 객실은 피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이 객실은 장시간 이동을 힘들어하는 아이들과 함께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소음 등에 대하여 이해와 양해를 구하는 객실입니다. 유아동 반실을 선택하는 경우에는 이런 양해를 한다는 사전 동의를 전제합니다.


출처: https://korealand.tistory.com/8294 [국토교통부 정책·어린이 기자단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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