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엄마와 귀걸이

'여자'인 내가 꾸며야 하는 이유

by 이알


1)

말이 트인 나의 아기 이뽕이는 요즘 눈을 떠서 눈을 꼬옥 감고 잠에 뜰 때까지, 심지어 자면서도 중얼중얼거린다. 24개월 인생에서 들어왔던 수많은 말들을 그 작은 입으로 하는 걸 보고 있노라면, 세상의 모든 단어를 끌어모아 어떻게 하면 멋져 보일까 고민하는 아마추어 작가인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나름 고심을 하고 단어와 단어를 늘어놓고, 내가 맞춰주는 장단에 또 한 번 따라 한다.

'이래서 엄마들이 영어 노출을 하는구나' 하고 무릎을 치게 한다. (하지만 전-혀 안 하고 있어 나중에 내 머리를 치겠지)

어느 한날. 친정에 가서 투닥투닥 뭘 부산스럽게 움직이더니 낑낑거리며 가져온다는 게 나의 결혼식 앨범.

'엄마, 이거 뭐야? 책이야?'

'이걸 어디서 가지고 왔어 또? 이거 보고 싶어?'

나름 최근에 결혼하고, 아이 낳고 셀렉한 사진들인데도 하고 나서 보면 꼭 옛날 구닥다리 보기 낯부끄러운 결혼식 앨범을 아이 낳고 두 번째로 보게 되었다.

사진을 하나하나 넘기다 가만히 같이 보고 있던 이뽕이에게 내 얼굴을 가리키며

'이뽕아 이거 누구야?' 하고 자연스레 물으니,

'큰엄마'라고 대답을 했다.


당연히 나올 줄 알았던 '엄마'라는 단어 대신에 '큰엄마'라는 단어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단 한 번도 닮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과 닮았다는 아이의 생각은 그렇다 치고, 혹시나 해서 물어봐도 페이지가 끝날 때까지 계속 나를 '큰엄마'라고 하던 아이의 확신에 대한 반감이었다.

'큰엄마'라는 호칭은 12월 초에 시가 가족과 함께 갔던 하와이에서 배워온 단어였다.

본인이 모르거나 생각이 나지 않을 때는 입 밖으로 비슷한 단어도 내지 않고 엄마에게 반문하는 이뽕이의 입에서 정확히 사진 속 손가락을 얼굴에 갖다 대고 '큰엄마야'라고 했다.


'어딜 봐서 큰엄마야. 다시 봐봐 이거 누구야?'

라고 묻는 내게 친정 엄마는 '화장해서 달라 보이나 보다.'라고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드레스 입고 화장했다고 24개월의 20개월은 자는 시간 빼고 매일 옆에서 봤을 나를 못 알아보다니 적잖은 그날의 충격이었다.



2)

늘 지니고 있는 장신구라고는 몸에 지니고 있는 반지 두 개 (결혼반지, 어느 날 서랍에서 발견해 잃어버릴까 끼고 있는 반지), 지나가다 한말인데 거금 주고 사 와서는 신혼여행지에서 대뜸 꺼내서 하라고 H가 강제로 목에 채워준 목걸이, 가끔 차는 시계가 전부다.

내가 아이를 준비시키고도 H보다 빨리 외출 준비를 할 수 있는 이유는 옷 입기가 시작이자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드레스룸 화장대 위로는 기초제품과 내게 있어 가장 자극적이라 할 수 있는 선크림이 딸랑 하나.

그나마 뿌렸던 향수들은 아이를 낳고 가끔씩 뿌리는 룸 스프레이로 전락했고, 너도 좀 꾸미라며 사주신 시엄마의 립스틱이 굴러다닌다. (이것도 상자 그대로 1년째 보관 중이네.)

시가 모임이 있던 어느 주말.

감기로 고생을 해서 안 그래도 내 인생 있어본 적이 없던 볼살은 빠질 때로 빠져 있었고, 거울의 나는 스스로에게 '피골이 상접하다'라는 문학적 표현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반면 번듯하게 준비된 옷으로 갈아입고 노는 이뽕이는 포동 했고, 그 옆의 H는 업무 스트레스와 제곱 비례로 축척하고 있는 지방으로 인해 투실했다.

함께 가는 둘의 모습과 거울 속 나의 현실이 너무 대비되었고, 내가 제일 싫어하는 '네가 제일 걱정된다' 소리를 마음속으로 계속 들어서인지 뭔가 해야 할 것 같았다.

살면서 결혼식을 제외하고는 화장을 해본 적이 없어 무리이고, 내게 있어 최선은 귀걸이였다.

뒤적거려 찾아낸 충동구매로 결혼예물 사러 갔다 사버린 귀걸이를 하고 집을 나섰다.

오랜만에 해서인지 귀가 간지러워서 (이래 봬도 4살 때 귀걸이를 뚫었다. 안 한 날들이 더 많지만) 엘리베이터 안에서 자꾸 귀를 만지작거리는 나를 보며 H가 말했다.

'뭐야, 달라 보이네! 다른 사람 같다!'

'뭐래. 뭐가?'

'귀걸이를 다했어! 뭐야?'

'음 근데 그 말끝마다 놀람의 물음표야? 감동의 느낌표야?'

'둘 다인데 예쁘네'





세월이 지나면 늙는 게 아니라 나이를 들어간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단순히 늙음으로 대변되는 주름, 쇠약함, 구부정한 자세, 불안정한 시선이 아니라 주어진 시간을 맞게 자연스럽게 그 세월을 수용하고 지금을 보낸다는 느낌이 이런 거구나 눈에 보이는 사람들.

샤를로뜨 갱스부르 (Charlotte Gainsbourg), 소피아 코폴라 (Sofia Coppola).

프렌치 시크니 타고난 귀족이니 라는 수식어를 떠나서 꾸미지 않아도 그들 스스로에게서 나오는 나름의 매력이 분위기를 입었고, 애티튜드를 머금었다 라고 괜히 말하는 게 아닌 사람들.

마냥 어릴 때는 이들의 자연스러움이 아무것도 안 하는 날것이라고 생각했다. 로션 하나 스윽 바르고 입은 것 같은 드레스. 그냥 보여서 신고 나온 것 같은 사진 속의 신발.

어린날의 내가 바라본 나의 워너비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꾸미지 않는' 예쁨보다는 쿨함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워너비들의 쿨함에 한 발이 아니라 꾸밈의 무신경에 목까지 담겨 나올 생각을 하지 않은 것 같다. 그들도 시상식이나 때에 맞는 곳에는 적절한 TPO를 보여줬는데, 나라는 사람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신경의 귀찮음'의 실천주의였다.

원래도 꾸밈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는데, 나도 자연스러운 나이 듦을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추잡스럽게 늙음을 속이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나이 듦의 미학을 보여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

화장을 하면 더 도드라져 강해 보이는 나의 눈이 싫어 해볼 생각조차 안 한 거고, 외출 후 돌아오면 몸에서 떼어내는 장신구들이 귀찮아 아예 하고 다니지 않은 채로 살았던 거였다.

선크림만 바르고 만났던 H는 결혼식 때 나의 모습을 대기실에서 300장 넘게 찍었었다.

이제 곧 아내가 될 사람이 예쁘다가 아니라 이런 모습을 다시 못 볼 것 같다 라는 생각이었단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엄마는 무색무취여야 한다는 생각에 나 스스로를 청정구역으로 만들었던 거고, 그래서 아빠가 한번 봤던 결혼식의 내 모습을 이뽕이는 매일같이 화장하고 짧은 치마를 입는 '큰엄마'라고 했었나 보다.



아이의 화려한 큰엄마로의 착각도 남편의 달라 보인다는 (어쩌면) 잠시 기분이 좋았던 외모 칭찬이 아니라, 거울을 보고 잠깐 나를 반짝이게 해 줄 수 있는 뭔가를 해보며 살아야겠다.

그게 굴러다녀 색이 뭔지도 모르는 립스틱이든 나머지 8손가락 중 하나에 끼워질 반지이든 살 때는 모두 매일 같이 할 기세로 샀던 나의 시대를 대표했던 명품 아이템이든 밤에 퉁퉁 앓는 소리 하게 될 하이힐이든 말이다.

기저귀 가방이 준 만큼 내 파우치 하나 넣을 공간이 생겼고, 내게 안겨 칭얼거리며 잠투정하는 시간 대신 두발로 씩씩하게 오늘의 너를 살아갈 아이의 시간이 늘어났다.

여전히 전쟁이긴 하지만 숟가락으로 손이 가는 아이의 곁에서 어쩌면 잠시 욱여넣지 않아도 되는 함께하는 식사의 여유가 자연스러워졌다. 아직 나는 늙음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젊은 시절이라며 누군가의 부러움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는 사실이 가장 큰 이유다.

곧 나는 복직을 앞두고 있다.

자연스럽고 꾸미지 않은 나의 워너비들의 가장 큰 특징은 '예쁨' 이 아닌 '우아함'이었다.

우아함은 타고남과 끊임없는 시도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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