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용인될 수 없는 당연한 사실
안 잔다고 이리저리 구르며 내 팔뚝을 만지작 거리다 쌔끈 새끈 잠이 든 나의 이뽕이를 재우고 무겁게 마음에 불현듯 떠오르는 질문이 있었다. 그리고 무거움이 깊은 죄책감이 되어 다짐을 해보자 자판을 두드려본다.
일종의 자기반성이며, 다시는 하지 않겠다 라는 깊은 약속이다.
'내일부터' 라며 오늘 저녁에 치킨을 시키며 우걱우걱 먹는 가벼운 감정 변화가 아니기를 마음을 다잡는다.
- Ep.01
가볍게 나의 아들과 산책을 하고 있는데 날카로운 여자의 목소리가 시선을 끌었다.
'너 진짜 엄마 화나게 할래?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짜증 나게'
대여섯 살쯤 보이는 아이에게 어떤 사정이 있는지 사람이 많은 그 공간에서 아이의 엄마는 아이에게 소리를 치고 있었다. 보란 듯이 헤죽거리던 아이도 어느새 풀이 잔뜩 죽었고, 갈 곳 없는 시선 끝 나와 눈이 마주쳤다.
어떤 상황이었는지 처음부터 지켜보지 않았지만, 아이의 고집 혹은 용납될 수 없는 행동의 엇나감으로 인한 짜증이 소리로 나온 것이겠지 추측을 해봤다.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왜 저렇게 소리를 지를까. 아이의 기분은 생각하지 않는 걸까.'
'나도 저런 순간이 오면 똑같이 행동할까.'
- Ep.02
유난히 빠방 (=자동차)을 좋아하는 이맘때의 아이의 특성을 잘 알고 있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연신 기분이 좋은 이뽕이를 보는 게 요즘의 세상 즐거움인 나의 부모님.
종종 이뽕이는 할아버지의 차를 타고 할머니와 셋이서 드라이브를 간다.
호수에 가서 물고기도 보고, 길거리에 묶여있는 강아지도 보고, 오리들이 푸드 득도 보지만 이뽕이의 가장 큰 즐거움은 큰 차를 보는 것이다.
운이 좋으면 공사현장에서 굴착기가 흙을 퍼 나르거나, 트레일러가 여러 대의 자동차를 싣는 모습을 보고, 청소차가 신나게 쓰레기통을 비우고 홀연히 떠나는 장면을 본다.
그 동행에 나는 제외되곤 했는데, 친정엄마의 부재로 운전하는 친정아빠를 대신해 리액션을 해주기 위해 함께 했었다.
다음날, 친정엄마는 내게 말했다.
'아빠가 그러더라. 너 이뽕이한테 무섭게 뭐라고 한다고. 그럴 때도 있고 고집부리고 떼 부리면 어느 정도는 들어주고 해야지 무조건 안된다고 그러지 말아야지. 아직 아기잖아.'
차에서 물을 따라주는데 기다림을 참지 못하고 물을 쏟았고, 0.5L나 되는 물을 고스란히 억지로 먹겠다고 했고, 자꾸만 본인의 자리에서 앉아있기 싫다고 고집을 부렸다.
이뽕이의 행동은 내 기준에 옳지 않았고, 난 낮은 톤으로 아이를 제지했었다.
- Ep.03
오늘 어린이집 상담을 다녀왔다.
평소 등 하원 시간에 원장이나 담임선생을 통해 전반적인 상황이나 발달과정을 들어온 터라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 나는 이뽕이가 내 곁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잠을 잔다는 것이 상상이 안돼서, 자는 모습을 보려고 약간은 설레는 마음이었다.
아이는 방에서 자고 있고, 담임 선생님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데 눈물이 쏟아져 나올 뻔했다.
12월 생인 나의 아이는 같이 지내는 대부분의 1,2월생 아이들에 비해서 말이나 행동면에서 조금 뒤처지지만 누구보다도 담담하게 잘 해내고 있다고 했다.
준비를 하고 기다리는 시간에 얌전히 앉아서 기다리고, 본인 차례가 되면 여지없이 큰소리로 대답을 하고 해야 할 일을 한다고 한다.
친구들과 상호작용이 제대로 안 되는 시기인지라, 주로 혼자서 놀이를 하기는 하지만 나름 잘 지내고 있어 어린이집 내에서 훈육할 일조차 없는 '우등생'이라고 했다.
집에서 세상 크게 구시렁 대고 자기 전까지도 중얼중얼거리는데, 어린이집에서는 조용하고 얌전한 사내아이란다. 친구 식판을 헷갈려 가지고 오기도 하고, 가방을 다른 위치에 올려놓기도 하지만 눈치껏 제 요령껏 어린이집에서 잘 지내고 있었다. 22개월 나의 이뽕이는 그렇게 사회생활을 해나가고 있었다.
공공장소에서 단 한번 아이에게 소리를 지른 적이 있었다.
이유는 기억에 남아있지 않은데, 엘리베이터 앞에서 '도대체 왜 그래.'라고 했던가...
소리를 내뱉게 한 이유조차 기억에 남지 않은데, 소리를 질렀다는 행위가 또렷이 기억에 남는 건
당시 사람들의 시선에 놀란 나 자신의 화끈거림 때문인 것 같다.
내 상식에도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어린 존재에게 '화'가 섞인 소리를 낸다는 건 눈살을 찌푸리는 불쾌감은 아니더라도 이해심 부족한 어른의 욕심 같으니까.
그때의 난 그 기억을 잊지 못하고, 다시는 아이에게 공공장소에서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서 소리를 지르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
오늘, 이뽕이를 재워놓고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작은 아이에게 화를 낼 권리가 있을까?'
이 세상 모든 것이 신기하고, 이제 막 본인의 생각과 의지가 생기기 시작했고, 세상이 만들어놓은 규칙과 엄마인 내가 지켜야 하는 행동을 알기에는 턱없이 적은 세상을 산 22개월의 아이.
그런 아이에게 내가 옳지 않다고, 잘못되었다고 소리칠만한 자격이 있을까.
요즘 들어 밥을 먹을 때마다 숟가락이나 젓가락을 자꾸 바닥에 떨어뜨린다. 씨익 나를 한번 보고 웃으면서 보란 듯이 자유낙하시킨다.
밥을 먹다 말고 입에 있는걸 툭 하고 내뱉는다.
산책을 하다가 얼마 안 가서 무릎을 꿇는다. 그리곤 요지부동 안아달라는 신호.
사람이 많은 곳으로 외출했을 때, 소리를 지른다.
생각해보면 '아이가 한때 할 수 있는 행동' 들이고, 내가 아이를 키우지 않는다면 저 정도의 일로 왜 화가 나지? 라며 이해가 안 될 것 같기도 하다. 매일같이 혼자서 아이를 상대하고 있다는 구실이 설명이 될까.
아이와 함께 지내는 엄마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이 내 아이가 '감정 쓰레기통'이 되는 것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과 잘 보살펴야겠다는 다짐으로 인한 매일 반복되는 육체적 육아노동, 엄마가 되어 겪는 혼자라는 외로움은 그때그때 쌓이는 복잡하고 버거운 감정을 해소시키지 못한 채 쌓여간다. 하루의 힘듦이 아이의 예쁨으로 일부가 소실되면 좋겠지만 늘 그러한 일들이 있는 건 아닐 테고 늘 나보다 피곤한 육아 동반자 (라 칭하지만 이미 친권자의 역할만 충실히 하고 있는)는 내 상황을 알리가 없고 알려고 하지 않는다. 온통 육아로 가득 찬 지금의 내 일상에서 감정의 탈출구는 어느새 꽉 막혀 온전치 못하고 전혀 다정하지 않은 상태 그대로 매일매일 꾹꾹 눌러 담기를 반복한다. 가까스로 온 힘을 다해 막고 있는데, 나의 아이가 아주 작은 행동으로 아주 사소한 내 기준의 엇나감으로 펑-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고, '절대 화내지 말아야지' 했던 이성적인 엄마는 묻어놨던 감정을 '화'로 그 대상을 '아이'에게로 어느새 쏟아낸다.
친구 중에 나와 같은 해에 조금 일찍 아이를 낳은 친구가 있다. 여자아이 이기는 하지만, 우리 이뽕이 보다 더 한 고집과 더 한 성질을 내보인 적이 있는 아이를 키우고 있는 친구는 내 기억에 단 한 번도 화를 낸 적도 큰소리로 아이를 혼낸 적도 없다.
평소 성격이 유하기도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늘 대단하다고 생각해 어느 날 물었더니,
'나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더 벽을 부수고 싶을 만큼 짜증 나고 화가 나. 그런데 쟤가 뭘 알겠어. 나의 화내는 나쁜 모습만 기억하겠지. 그냥 다른 방에 가서 뒤집어쓰고 소리 지르고 나오면 좀 괜찮아.'
긴 문장을 구구절절 썼지만, 요점은 세상 살면서 큰소리라고는 수학여행 극기훈련 가서 소리 지른 게 전부인 내 삶에서 요즘 목소리 커지는 일들이 종종 좀 자주 있었다.
그리고 그 대상이 나의 아이라는 점에서 과연 내가 화를 낼 자격이 있을까 하는 점이다.
내가 원해서 세상에 불쑥 태어났고, 하루하루 갖가지 신기하고 다양한 경험들 속에서 부지런하게 제 나름 노력하며 열심히 (?) 살고 있는 나의 아이에게 내가 화낼 자격이 있을까.
우아한 아들 엄마는 되지 못하더라도 우악스러운 엄마가 되지는 말아야 하는데, 매일 잠든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다시 또 아침이면 물컵에 있는 물을 쪼르르 떨어뜨린 이뽕이에게 '너 진짜' 하며 큰소리 내는 삶의 반복.
내가 과연 아이에게 화낼 자격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