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신세계

애엄마의 퇴근으로부터의 자유로울 권리.

by 이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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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뽕이의 자석으로 자동차 만들기가 나날이 발전한다.

예전에는 보란 듯이 '엄마 이거 봐' 하고 해서 보면 '뭐지'라는 생각과 함께 '뭐라 말해주면 이 아이의 기대 가득한 저 눈을 실망시키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요즈음의 이뽕이는 딱 보면 척!

창 너머로 매일 오는 종이 수집차의 집게 모양까지 턱 하니 붙이고 자랑스레 말한다.

"엄마 이거 사진 찍어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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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복귀한 지 20일 정도 되었다.

육아휴직 타이밍이 안 맞아 그 많은 혜택을 단 하나도 누리지 못하고 (난 이제 워킹맘인데 연차가 없다)

복직 타이밍에는 코로나다.

한시적으로 법으로 정한 10일 이상을 쓸 수 있는 '가족 돌봄 휴가'라는 카드가 있지만, 어찌 휙휙 결재를 올릴 수 있을까.

하루 최소 4시간 근무가 허용되는 '자율 출퇴근제'이지만, 이 또한 다 버리고 사무실을 박차고 나올 수 있을까.

하루 종일 집에서 일상을 보내는 이뽕이의 잠깐 영상을 가장 낮은 소리로 들어야 하는 답답함과 (간식 포함)여섯 끼를 차려내며 놀아주기까지 하는 친정엄마의 잠자리 숨소리를 들을 때의 먹먹함은 온전히 내 몫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되뇌고, 어디 나뿐이겠느냐. 전국의 모든 엄마들과 마음속으로 손을 다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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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표현한 커피타임 하는 이삿짐센터 아저씨 두 명과 사다리차)


나는 2년 3개월 만에 회사에 갔는데, 회사는 많이 변해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토록 '원하던' 부서 이동은 없었고, 원부서였던 곳은 내가 알던 것과는 많이 달라 보였다.

무였던 project 였던 곳은 많은 것을 하는 어엿한 팀이 되어 있었다.

인력이동이 많았고, 내게 잘 다녀오라고 반겨주던 사람들의 절반 이상은 다른 곳에서 만나 복직 인사를 나눴다.

복귀 첫날 파트장의 부재로 다른 수석과 업무 관련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예상치도 못한 업무 관련 제의를 받았다. 입사부터 휴직을 할 때까지 5년 넘게 해오던 나의 Job에 대한 개념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제안이었다.

솔직히 난 그동안 회사에 대한 소속감도 수면시간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업무에 대한 애정도 없었다. 그저 퇴근 시간을 기다렸고, 주말을 기대했으며, 휴가를 기도하며 살았다.

새로 제안을 받은 업무의 장점은 나의 집으로의 귀소본능 충족과 스마트워크가 1000% 가능했다.

결과를 기다리는 일도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도 없으며, 다른 부서와의 co-work도 할 필요 없는 마이웨이의 실현이 가능한 일이다.

단점이라면 기존에 하던 업무와는 달리 이 분야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과 지금껏 내가 해오던 경험과 경력을 한방에 날려 버릴 수 있다는 것. 빠르게 퇴근하는 것과 비례해 진급과도 인사를 해야 하는 것.

솔깃했지만 분했다.

휴직을 하긴 했지만 복직을 했고, 아이 엄마이기는 했지만 일을 하기 위해 있는 사람이었다.

메인에서 물러나 하루 몇 번의 클릭과 결재로 업무가 끝나는 일을 그것도 기존에 하던 사람들을 쳐내고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다른 부서로 전배 신청을 해야 할까 라는 생각도 했다.

'이곳에는 나 말고도 내가 했던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많으니까'

'이곳에는 내가 아니어도 되니 나여야 하는 곳으로 가고 싶다'

기한은 3일이었다. 충분히 생각할 시간.


이럴 때 필요한 건 유경험자의 조언이었다.

"언니 나 메인에서 밀려났다. 출퇴근 때문에 원래 하던 거도 못할 거 같아요도 못하겠고, 그냥 이거 하라고 파트장이 이야기하니까 네! 하고 이 새로운 업무도 못하겠다."

"응.. 원래 육아휴직 복직하고 아줌마한테 오는 불이익(?) 같은 거야. 당연하다고 그냥 받아들이면 돼.

진짜 더럽고 치사한 기분도 들고 그러는데, 일할 사람은 널렸어.

인정해야 할 부분은, 대체 불가능한 사람은 없잖아? 심지어 사장도 대체 가능한걸. 일단 일을 시작해보고 기회를 엿봐서 다시 부서이동을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회사에서 갑자기 아이가 아프면? 주말에 아이를 두고 출근해야 해? 그걸 감당할 자신 있으면 네 능력치를 어필하면 되는 거고.

회사 그냥 편하게 다니면서 누가 뭐라고 하든지 난 애엄마야~ 육아에 에너지 쏟고 월급만 받는 거야~라고 편하게 생각하다가도 막상 메인에서 밀리면 너무 짜증 나."

내 업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H, 이전 동료, 동기들 모두 펄펄 뛰었지만 난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난 지금 집에서 엄마가 회사에 가서 퇴근하고 놀아줬으면 하고 기다리는 4살 아이의 엄마이고,

그런 나의 아이와 하루 종일 고군분투하는 친정엄마에게 온전히 맡기기에는 죄책감을 견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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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일러에 실려있는 무지개 차_ 전날 할아버지와 함께 폐차장을 차 안에서 구경했다는데, 4살 녀석은 연신 이상한 무지개차 라며 싱글벙글 이었다.)



2명의 리더와 이야기를 나눴고, 파트장과 면담을 했다.

업무에 할애되는 능력은 줄고 그만큼 퇴근 시간과 주말의 자유가 보장되었다.

시스템쪽은 처음이라 새로 배워야 해서 기존에 하던 사람이 오버랩 기간이 적어도 6개월은 필요하다고 하던데, 파트장은 1달을 주겠다고 했다. 단, 다음 주에 최종 면담을 해서 정하겠다.

이쯤 되면 나를 과대평가하는 건지 나라는 사람이 귀찮아지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지만 포기!

생각해서 무엇하리. 난 복직을 했고, 내 일만 하면 되는 거라고 쿨하게 인정했다.


드디어 최종 면담.

업무가 바뀌었다. 생각해보라도 아니고 통보였다.

회사에서 아니 이 나라에서 한 번도 하지 않았던걸 실효 가능성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처음 들었을 때 '뭐 이런 걸 하지' 했는데 그걸 나보고 하란다.

기존 그 업무를 맡고 있는 분들은 모두 기본 10년 이상이고, 20년 이상 하신 분도 계신다.

그런데 나보고 덜컥, 하라고 한다.

내가 회사에 없는 동안 파트별 회의를 통해 결정되었다던데 날벼락이었다.

"할 수 있잖아. 한번 해봐. 5년 안에 이 분야 책임지고 마스터하는 거야."

라는 파트장 말을 듣는데, 마스크를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과 생각이 고스란히 얼굴로 드러나는 내게 마스크가 고마웠다.

짐만 챙겨 나왔다. 그리고 H에게 전화를 했다.

듣자마자 H는 엄청나게 웃었다. 그리고는 다행이라고,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재미있을 거라고 했다.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회사 친구 K에게 전화를 했다.

자초지종을 듣고는 갑자기 쌍욕을 했다. 네 동의도 없이 의사결정을 해놨는데, 하필이면 왜 그런 거냐고.

너 퇴근 안 하냐고. 너 이뽕이 못 볼 거 같다고 했다.

회사 주차장에서 부랴부랴 '언니 나 똥 밟았어...'로 시작하는 구구절절 메시지에 유경험자의 답변이 왔다.

'넌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 전자야 후자야. 그냥 일해봐.'



걱정은 단 하나다.

복직 첫날 후배가 도와달라는 말에 손가락이 알아서 프로그램을 만지며 일을 도와주는 나 자신이 신기했었다.

분유 타는 법, 아이 기저귀 적정한 장당 가격 등이 머릿속에 가득해 불안했는데, 몸이 알아서 사무실에서 적응하고 있었다.

새로운 기술과 업무에서 부딪히는 어려움은 주변에 널린 유경험자의 도움을 빌리면 된다.

아무도 못해본 것에 대해 한다는 건 이 업계에서 최고로 인정받을 수 있는 한편, 내가 했고 내가 제일 잘 안다는 '전문가'가 된다는 걸 의미한다.

그래서 늘 대단해 보였고, 멋있어 보였다.

다시 사람들을 자주 만나야 하고, 말 못 하는 결과에 대해 혼자 반문하는 일이 고난이겠지만 시간이 해결해준다.


걱정은 단 하나다.

아침에 일어나 아직도 할머니에게 가장 먼저 하는 말.

내 아이의 '엄마는 회사 갔어?'

엄마가 오는 퇴근 무렵 현관문 가장 가까운 곳에 빠방들을 가져다 놓고 엄마를 기다리는 나의 이뽕이.

H가 그랬던 것처럼 이뽕이의 자는 모습만 보게 되면 어쩌지 하는 걱정.

그리고 그런 이뽕이의 깨어있는 시간 온전히 돌봐줘야 할 나의 엄마에게 다시 죄인이 되어야 할 것 같은 걱정.

퇴근시간으로부터 내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조금 있으면 회사에 출근해야 하는데, 앞으로의 퇴근 걱정에 '애엄마'는 잠이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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