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은 미각뿐 만 아니라, 후각, 시각, 가격 등에 의해 만들어진다.
우리는 주위 환경을 100퍼센트 온전히 지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보이는 그대로 세상을 보고, 들려지는 그대로 소리를 듣고, 느껴지는 그대로 감촉을 느낀다고 믿고 있다. 냄새나 맛도 그렇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는 사실이 아니다. 뇌는 세상을 인지하는 과정에서 외부 세상에 대한 정보를 끊임없이 수정, 편집, 왜곡, 보완한다.
매일의 일상생활에서 이를 경험하고 있다. 맹점은 이를 잘 보여준다. 망막에는 맹점이라는 부분이 있다. 이곳에는 시신경이 없기 때문에 맹점에 상이 맺히면 볼 수가 없다. 장님이 되는 것이다.
자, 이제 한쪽 눈을 감아보자. 다른 한쪽 눈으로 보면, 시야에 안 보이는 까만 점이 보이는가? 물론 없다. 왜 맹점이 보이지 않을까? 그것은 우리 뇌가 맹점에 해당하는 부분을 편집하여 감쪽같이 없애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처럼 보일 것이다.
눈을 통해 들어오는 시각 정보를 해석하는 곳은 뇌이다.
그럼 뇌에서 해석이 달라지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다르게 보일 것이다. 고흐는 강렬한 색채, 뚜렷한 윤곽을 지닌 화풍으로 현대미술사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일부 연구자들은 이런 그의 특징을 그가 앓았던 뇌전증에서 찾기도 한다. 고흐의 집안에는 정신병력이 있었고, 일부 문헌에서 그의 발작을 언급하기도 했다. 한 연구팀은 그가 정신적으로 안정된 시기에 그린 그림에 비해, 정신 착란이 심한 시기에 그린 그림은 기체나 액체가 불규칙하게 흐르는 난류를 정확하게 묘사했다고 발표했는데, 이도 같은 이유이다.
더욱 생생한 사례가 올리버 색스의 ‘화성의 인류학자’에 소개되었다. 꽤 성공한 화가였던 65세의 한 남성은 자동차 사고로 색을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사고 당시 머리 충격으로 색상 해석을 담당하는 뇌 영역에 이상이 생겨서였다. 세상이 온통 흑백으로 보였고 색을 구분할 수 없었다. 그는 처음에는 깊은 절망감에 빠졌지만, 이내 흑백만을 이용하여 더욱 풍성한 작품 활동을 하게 되었다. 나중에는 수술로 고치자는 제안을 거절했다.
맛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느끼는 맛은 혀를 통한 미각뿐 만 아니라, 후각, 시각, 브랜드, 가격 등에 의해서 뇌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많은 실험에서 보여준다. 그래서 같은 음식을 앞에 두고 한 사람은 ‘환상적이다’라고 평가하는 반면, ‘엉망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개인적 성격, 취향, 감정이나 사회적 혹은 정치적 성향은 어떨까? 왜 같은 것을 보고 어떤 이는 호감을 느끼고, 다른 이는 반감을 느끼는 걸까? 왜 첫눈이 내리는 풍경을 보고 포근하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고, 짜증을 내는 사람이 있을까? 처음 보는 사람을 대할 때, 왜 어떤 이는 환한 웃음으로 대하고 어떤 이는 경계의 눈빛으로 대할까? 왜 어떤 사람은 새로운 일을 쉽게 처리하고, 어떤 사람은 긴장하며 일 처리가 더딜까? 왜 우리는 하나의 사건을 두고 다른 생각과 태도를 가질까?
이는 외부 환경에 대한 정보를 뇌에서 저마다 다르게 처리하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는 행동 방식이나 절제력, 충동 조절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2016년 미국 예일대 서동주 연구팀은 알코올 의존증 환자들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뇌 반응이 다르다는 것을 밝혀냈다. 연구팀은 20대 성인 30명을 대상으로 테러와 폭력 관련 사진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며 스트레스 반응을 유도하고 그들의 뇌를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으로 촬영하였다.
알코올 의존증 환자들의 경우, 복내측 전전두엽과 좌측 외측 전전두엽이 정상 집단에 비해 과소 활성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정상 집단에서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들 부위의 활성이 저하되었지만,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는 다시 정상 상태로 되돌아왔다. 반면에 알코올 의존증 환자들은 계속 저하된 상태를 보였다. 이들 부위는 감정 통제와 불안감 조절 역할을 하는데, 그러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스트레스로 인해 불안한 감정에 휩싸이게 되고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게 된다. 이는 알코올 의존과 같은 부적절한 스트레스 대처로 이어지게 한다.
다이어트에 번번이 실패하는 사람들의 뇌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볼 수 있다. 캐나다 맥길 대학 다허 교수 연구팀은 2018년 성인 남녀 24명을 대상으로 일정기간 동안 하루 1200칼로리만 섭취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실험 전, 1개월 후, 3개월 후에 음식 사진을 보여주며 그들의 뇌를 영상 검사하였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고칼로리의 음식 사진을 보여보자 실험 전에는 동기, 욕망, 가치와 연관된 복내측 전전두엽이 활성화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부위의 활성도가 감소된 것을 확인했다. 이는 음식을 억제하려는 뇌의 시도로 인한 것이다. 실험이 진행됨에 따라 피실험자들의 뇌에서 자기 통제와 관련된 외측 전전두엽의 활동이 증가하고, 가치 영역인 복내측 전전두엽의 활동이 감소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가장 성공적인 다이어트를 한 사람들의 복내측 전전두엽 활동이 가장 크게 감소하였고 외측 전전두엽의 활동은 지속해서 증가했다.
2018년 독일의 카롤리네 슐루터 교수 연구팀은 일을 꾸물거리는 사람의 편도체는 전방 대상회와의 연결이 약하고 일반 사람들에 비해 편도체의 부피가 크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정신 장애가 없는 남녀 264명을 대상으로 일을 미루지 않고 끝맺음을 하는 성격인지 미루는 성격인지를 검사하고 이들의 뇌 여러 부위를 측정하여 이러한 결론을 얻었다.
편도체는 특정 사건에 감정적 가치를 입히는 일을 한다. 특히 부정적 감정에 민감한데, 어떤 상황 하에서 특정 행동이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것 같으면 이를 경고하는 역할을 한다. 전방 대상회는 편도체의 이러한 정보를 이용하여 어떤 행동을 실행에 옮길지를 선택한다. 이때 선택된 행동을 성공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다른 감정과 행동을 억제해야 한다.
그러나 꾸물거리는 사람은 편도체와 전방대상회의 연결이 약해 행동 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행동을 주저한다. 이들의 편도체 부피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 큰데, 이는 편도체가 더 강한 영향을 준다는 의미이다. 이들은 부정적 측면에 더 과하게 몰입하여 더 큰 불안을 느껴서 더 주저하고 더 미루게 된다. 결국 일을 시작하지 못하고 꾸물거리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고 만다.
하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면이 있다. 다이어트에 실패하거나 일을 꾸물거리는 것은 그들의 의지가 빈약하거나 게을러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얼굴 생김새가 다르듯 사람마다 뇌의 생김새가 다르기에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것들을 고려하여 평가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적 혹은 정치적 대립을 다루는 뉴스를 자주 접할 수 있다. 남녀에 대한 인식, 외국인에 대한 시선, 정치와 북한에 대한 견해 등이 그렇다. 두 집단이 서로 극명하게 맞서 다른 주장을 말하고 있다. 각자 자기주장의 정당한 논리를 확신하며 상대방은 틀렸고 멍청하며 나는 맞다고 믿는다. 상대방을 향해 ‘왜 저들은 거짓 주장을 일삼으며 좀처럼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할까?’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사고 처리 과정이나 해석하는 데 있어 '고유'의 편집과 왜곡을 거치기 때문에 각자의 판단이 그렇게 객관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마치 풍경화를 그리고 ‘난 있는 그대로를 그렸어’라고 말하지만, 하늘에 떠있는 구름 색과 모양, 햇빛을 받은 들판의 알록달록한 색의 변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의 움직임 등이 화가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것과 비슷하다.
이러한 사실은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꽤나 의미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우리 모두는 다른 환경에서 성장하면서 매일 다른 경험을 한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뇌에 새로운 신경 연결이 생기거나 기존 연결이 더 강해지거나 약해지거나 사라진다. 일상의 대화에서부터 개인적 사회적 생활의 모든 경험이 당신 뇌의 세부 구조를 변화시키고 있다.
결국 나와 우리 각자는 세상에 하나뿐이 없는 뇌를 소유하게 된다. 그러면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나만의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이 만들어진다. 그러기에 각자의 생각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 이는 나와 다른 주장을 하는 상대방이 고집불통의 거짓말쟁이가 아닐 수도 있을뿐더러, 나의 주장도 그렇게 객관적이고 논리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상대방과 나 자신에 대한 열린 태도야 말로 대립과 비난이 아닌 화해와 상생으로 우리와 우리 사회를 인도해줄 수 있다.
인간의 이기심, 허영심, 나약함, 변명 같은 통속적인 면들도 그러하다. 이러한 것들은 경험에 의해 형성된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인 사고와 생존 본능이 어우러진 뇌의 산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속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하찮게 보거나 경멸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것을 인정하고 올바르게 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
경험에 의해 신경세포 A는 신경세포 B와 연결(그림 1)될 수도 있고 신경세포 C와 연결(그림 2)될 수 있다. 신경세포 A가 어느 신경과 연결되었느냐에 따라 다른 반응이 나온다. 예를 들어 남녀가 응시하는 장면을 보고 그림 1의 경우는 '사랑의 눈빛'을 볼 것이고, 그림 2의 경우는 '증오의 눈빛'을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