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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범 Jun 02. 2018

08 인간 이해하기: 뇌진화의 관점에서.세 번째 이야기

상대방의 감정을 짐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인류의 역사에서 99퍼센트 이상을 수렵과 채집으로 살아왔다. 이는 인간의 뇌는 석기시대의 뇌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우리는 합리적 이성과 지성의 바탕 위에 살고 있다고 믿지만 우리의 뇌는 사냥과 수렵을 하던 석기시대 뇌와 크게 차이가 없는 셈이다.


인류의 조상 이전부터 집단을 이루어 살아왔다. 이것이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무리를 지어 행동해야 위험에 더 효과적으로 맞설 수 있고, 더 다양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모여야 힘이 된다는 것을 당시부터 깨달았다.  


이러한 집단생활 방식에서 상대방의 감정을 짐작하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상대방이 기쁜지 슬픈지, 만족한지 화가 났는지, 우호적인지 적대적인지를 구분해야 상황에 맞게 적절히 대처할 수 있고, 다음 행동도 예측할 수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감정 상태를 알아야만 했다.


감정을 알 수 있는 단서는 몇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얼굴 표정, 몸짓, 자세, 시선 방향처럼 신체적 움직임을 통해서다. 두 번째는 목소리의 높낮이, 말하기 도중의 멈춤, 헛기침, ‘음…’과 같은 비언어적 소리를 통해서다. 우리는 이 중에서 상대방의 얼굴 표정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는다.  


‘종의 기원’ 저자인 찰스 다윈은 19세기에 세계 여러 곳을 다니면서 언어와 문화는 달라도 감정 상태를 나타내는 표정은 일치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이후 인간의 표정은 학습으로 전달되는 게 아니고 유전적으로 전달된다고 주장했다.


이후에 심리학자인 폴 에크먼은 세계 여러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얼굴 표정을 보여주며 이와 부합하는 단어를 고르라고 요청했다. 또한 1960년대까지 현대 문명과 전혀 접촉 없이 석기시대를 살고 있던 뉴기니의 한 부족을 대상으로 여러 장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특정한 상황에 맞는 사진을 가리켜 달라고 했다. 이러한 연구들을 토대로 그는 찰스 다윈의 주장을 증명했다. 그는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을 여섯 가지로 구분했다. 기쁨, 슬픔, 분노, 놀람, 혐오, 두려움이 그것들이다. 


심리학자 폴 에크만


감정을 표현하는 얼굴 표정은 인간 기본의 장치이기에 무의식적이다. 우리는 따로 누군가에게 배우지 않았지만, 상대방의 웃음이 진짜 웃음인지, 가짜 웃음인지를 구분할 수 있다. 특히 싫은 사람과 같이 있을 때의 억지웃음은 쉽게 구분이 간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무의식적 웃음과 의식적 웃음이 다르기 때문이다. 의식적 웃음은 ‘큰광대근’을 이용하여 입꼬리를 올려 웃지만, 무의식적 웃음은 여기에 ‘눈둘레근’을 이용하여 눈웃음을 더한다. 데이트 상대방이 정말로 나에게 호감이 있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려면 상대방의 눈을 보면 되는 것이다.  


타인의 감정을 알아채는 데는 거울신경세포란 것도 있다. 거울신경세포는 신기하게도 타인의 표정이나 행동, 몸짓만 보고도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공유할 수 있게 해 준다. 거울신경세포가 심리학에 기여할 영향은 DNA가 생물학에 준 영향에 못지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과학자도 있다.


거울신경세포는 동물 실험 도중에 우연히 발견되었다. 1990년대 이탈리아의 한 대학교에서 원숭이가 먹이를 집는 동작과 관련된 뇌 부위를 연구하고 있었다. 연구 도중 우연히 뇌의 이 부위가 다른 동물이 먹이를 집는 동작을 보는 것만으로도 활성화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울신경세포는 마치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듯이 다른 개체의 동작을 보는 것만으로도 자기가 하는 것처럼 똑같이 반응하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거울신경세포는 인간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거울신경세포는 내가 하는 행동과 타인의 같은 행동을 보는 것을 동일 시 한다. 내가 하는 것과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셈이다. 프로 골퍼의 스윙 동작을 보기만 해도 거울신경세포는 내가 직접 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준다. 그래서 내 스윙 동작도 향상될 수 있다.


근력 운동을 하는 것만 봐도 근력이 향상될 수 있다. 카를로 포로와 동료들의 연구에서 한 집단은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구부리는 운동을 했고, 다른 집단은 이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실제 운동한 집단의 새끼손가락 근력이 50퍼센트 상승했다는 사실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운동하는 모습을 지켜본 집단도 32퍼센트 향상했다. 더 신기한 점은 두 집단 모두 왼손 새끼손가락 근력도 함께 향상되었다는 점이다. 실제 운동을 한 집단은 33퍼센트, 지켜본 집단은 30퍼센트 향상되었다.


갓난아기가 엄마의 입 모양을 따라 하며 언어를 배우는 것도 거울신경세포 덕분이다. 측두엽 안 쪽에 위치한 섬엽이나 전두엽에 위치한 언어 영역인 브로카 영역에 거울 뉴런이 많은데, 거울 뉴런을 통해 아기는 엄마의 입 모양을 흉내 내면서 언어를 습득하게 된다. 언어뿐 만이 아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보고 배우는 사회적 규범과 관습도 거울신경세포 덕분에 가능하다. 우리가 어른을 보고 반갑다고 머리를 쓰다듬거나, 직장 상사의 등을 두드리며 격려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타인의 감정 상태를 공감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상대방의 기뻐하는 표정을 보면, 거울신경세포는 내가 기쁜 것과 같은 상태로 인식한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방이 기쁘면 같이 기뻐할 수 있고, 상대방이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면 같이 슬퍼할 수 있다.  


‘부부가 오래 살면, 얼굴이 서로 닮는다’라는 말이 있다. 이러한 현상도 거울신경세포를 이용해 설명할 수 있다. 오랜 세월 동안 같이 살면서 서로의 표정을 무의식적으로 흉내 내다보면 사용하는 근육 패턴이 같아지고, 얼굴도 서로 닮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예외가 있다. 거울신경세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다. 자폐증이 그렇다. 그들은 상황에 따른 타인의 감정 상태를 이해하지 못한다. 사회적 관계에 적응하기도 힘들어한다. 누군가가 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바닥에 떨어뜨렸을 때 그의 심정이 어떨지, 먼 길을 한 걸음에 달려온 친구가 목이 말라서 물을 원하는지를 쉽게 알지 못한다.


동물학 박사이며, 그녀의 분야에서 우수한 업적을 이룬 자폐증 여성, 템플 그랜딘이 그러하다. 일반인들에게는 평범한 사회적 관계를 맺기 위해서 그녀는 많은 노력을 해야 했다. 행복감이나 만족감을 나타내는 표정의 차이를 알지 못했고, 농담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파티에서 다정스러운 눈빛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손뼉을 박자에 맞추어 치는 것이 어려워서 다른 사람을 보고 따라 해야 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과학이나 역사를 공부하듯 따로 공부해야 했다. 후에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자폐에 관련된 여러 권의 책을 쓰기도 했으며, 그녀의 생애는 ‘템플 그랜딘’이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템플 그랜딘(우측)과 올리버 색스. 신경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올리버 색스가 평범하지 않은 그녀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미완성의 뇌로 태어난 인간은 발달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부작용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인간의 뇌는 완벽하지 않다. 인간의 뇌는 생존하기 위해 그럭저럭 모습을 갖췄을 뿐이다. 마치 서투른 기술자와 같다. 그러기에 스스로의 한계를 인식하고 겸손하며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할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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