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독증, 학습장애, 주의력결핍장애 등과도 연관이 있다.
나에게는 사랑스러운 세 명의 아이들이 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면 매번 듣는 질문이 있었다.
“아이들은 잘 크고? 셋 키우는 데 힘들지 않아?”
그러면 이렇게 대답했다.
“아직 인간이 안되었어. 막내는 대략 1/2 정도의 인간이고, 둘째는 90퍼센트 인간이지. 다행인 건 첫째는 이제 인간이 되었다는 거야. 셋 다 인간이 되려면 좀 더 시간이 지나야 해.”
농담으로 한 말이었지만, 진화생물학적으로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갓난아기의 뇌는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채로 태어난다. 따라서 주변 상황을 고려하여 울음을 꾹 참거나, 소변을 참고 기다리지 않는다. 아무거나 입으로 가져가기도 한다. 생존에 필요한 원시적인 행동만 하는 것이다.
고래는 태어나면서부터 헤엄을 친다. 새끼 얼룩말은 생후 1시간 안에 달릴 수 있다. 새끼 킹코브라는 태어난 지 3시간 만에 사냥을 할 수 있다. 많은 동물이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독자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동물은 거의 완성된 뇌를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들은 신체 근육을 조절할 수 있는 뇌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나 갓 태어난 인간 아기의 뇌는 그런 조절 능력이 없다.
출산 후 많은 부모들, 특히 산모는 육아로 인해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낸다. 이제 막 태어난 아기가 의젓하게 걸어 다닌다고 상상해보자. 안고 다닐 필요가 없기 때문에 허리가 아플 일도 없고, 커다란 유모차를 나들이 갈 때마다 챙기느라 힘들어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선 태아는 엄마 배속에 1년은 더 머물면서 뇌가 더 성숙하기를 기다려야 한다.
이는 진화적 측면과 연관이 있다. 수백만 년 전 인간의 조상이 나무에서 내려와 직립보행을 하면서 몇 가지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그중 하나는 여성의 산도가 좁아진 것이다. 좁아진 산도를 통과하기 위해선 너무 크지 않은 크기인 미완성의 뇌로 태어나야 했다. 결국 빨기와 같은 생존에 필요한 최소 기능만 보유한 채 미리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그 시기에는 뇌를 싸고 있는 머리뼈가 서로 엇갈리면서 머리 모양이 가늘어져 산도를 통과할 수 있다.
미성숙한 뇌로 태어난 인간은 결국 부모의 보호를 가장 오랜 기간 받는 종이 되었지만, 덕분에 훨씬 큰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뇌가 주변 환경에 맞추어 변화할 수 있는 융통성을 지니게 된 것이다. 인간은 미성숙한 뇌가 발달하는 동안 주변 상황에 적응할 수 있게 세부적 뇌 회로를 변화시킬 수 있었다. 그 결과 인간만이 북극에서부터 사막, 열대 밀림 지역까지 지구의 모든 곳에서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출산 후 1년이 지나면 아기의 뇌는 두 배로 커진다. 이때쯤 걸음마를 시작할 수 있다. 그 전에는 머리 들기, 뒤집기, 앉기, 기기, 일어서기를 순서대로 하게 된다. 이 시기에 육아를 하는 부모들이 알아야 할 점이 있다. 각 단계의 시작 시기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중요한 점은 각 단계를 ‘순서대로’, ‘충분하게’ 훈련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조급한 부모나 조부모가 옆 집 아기가 앉는다며 목도 가누지 못하는 아기를 억지고 앉히거나 잘 기지도 못하는 아기를 억지로 서게 강요한다며 좀 더 참고 기다리라고 말하고 싶다. 갓난아기의 뇌 발달은 전 단계 발달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현재 단계를 충분히 연습한 후에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후에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청소년기나 성인 때 문제가 나타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자세가 나빠지거나 오랜 시간 앉아있는 것을 힘들어 할 수 있다. 문제는 여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자세는 주변 환경에 대한 나의 이미지를 3차원적으로 설정하는 것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공간 인지 장애가 생기기도 하며 난독증, 학습장애, 주의력결핍장애 등과도 연관 있다.
난독증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난독증의 원인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아직 많은 연구가 진행 중이다. 난독증 아이들은 글자를 따라 읽는 게 힘들어서 손가락으로 짚으며 읽기도 한다. 책을 읽기 위해서는 눈동자가 글줄을 따라 좌우로 정확하게 움직이는 능력이 중요하다. 이때 눈과 몸통을 움직이는 근육이 서로 조화롭게 움직여야 한다.
마치 오케스트라에서 모든 악기가 조화롭게 연주되어야 훌륭한 화음이 만들어지듯, 정확한 눈동자 움직임을 위해서는 신체의 여러 근육들이 조화롭게 협력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발달과정에서 단계에 맞는 뇌기능이나 근육이 충분히 연습되지 않으면, 눈동자와 신체 근육과의 협응 움직임 같은 복잡하거나 정교한 동작을 못할 수 있다. 그래서 아기를 억지로 앉거나 서게 하는 것은 안 좋다.
난독증 아이들은 말은 유창하게 하지만 글 쓰는 것이 매우 서툴기도 하다. 이러한 생활은 학습장애로 이어지고, 결국 아이들의 자존감을 떨어뜨린다. 2014년 교육부에서 초등학교 154개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00명 당 5명 꼴로 난독증 위험이 있다고 발표했다. 난독증은 최근 급격하게 증가하는 추세이다.
난독증의 또 다른 원인은 좌우 모양을 같은 것으로 취급하려는 뇌 성향에도 있다. 이제 막 숫자나 글자를 배우는 아이들이 좌우를 뒤집어서 쓰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숫자 '5'나 '2'를 거울에 비친 상으로 뒤집어쓰기도 하고, 'ㄷ'이나 'ㄹ'을 뒤집어쓰기도 한다. 영어권에서는 ‘p’를 ‘q’로 뒤집어쓰기도 한다.
이러한 좌우 혼동의 원인을 수백만 년 전부터 이어온 생활방식에서 찾기도 한다. 과거에는 이러한 방식이 생존에 유리했다. 수렵 시대에 사냥감이나 맹수의 왼쪽 혹은 오른쪽만 보고도 알아챌 수 있는 능력이 중요했다. 그래야 어느 쪽에서 이들이 나타나도 재빨리 대응할 수 있었다. 이러한 생존적 필요성으로 인해 뇌는 좌우를 같은 것으로 취급하게 되면서, 난독증을 증가시키는 원치 않는 부작용도 떠안았다. 실제로 뇌손상 환자들이 반대 방향으로 쓰거나, 읽는 것이 더 편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때때로 있다고 한다.
반대로 좌우뇌의 기능이 극단적으로 뛰어나도 좌우를 뒤집어 읽거나 쓰는 것에 익숙할 수 있다. 천재들이 그렇다. 대표적인 인물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이다. 그는 글을 거울에 비친 상처럼 즐겨 뒤집어썼다.
난독증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좌뇌 또는 우뇌 중에서 한쪽 뇌의 우위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좌우뇌의 체계가 뒤엉킨 상태에서 한쪽 뇌의 우위를 만들어주면 읽기나 쓰기에 하나의 기준이 세워지기 때문이다. 읽기와 말하기와 관련된 뇌는 대부분이 좌뇌이다.
난독증 예시. 초등학교 3학년. 철자를 틀리게 썼다. 어떤 것은 소리 나는 대로 쓰기도 했다. p를 q로 바꾸어 쓰기도 했다. 대문자로 써야 할 곳을 소문자로 썼다. 쉼표와 마침표를 적절히 쓰지 않았다.
균형 있는 뇌 발달을 위해 양 손도 충분히 이용해야 한다. 오른손잡이를 만들기 위해서 이른 시기부터 오른손을 강요하는 하는 것도 영유아 뇌 발달에 좋지 않다. 2~3세 때까지 양손을 번갈아 가며 사용하도록 하여 뇌를 충분히 훈련시킨 후에 뇌가 스스로 오른손잡이가 될지 왼손잡이가 될지를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뇌의 가장 앞에 위치하는 전두엽은 뇌의 진화에서 가장 나중에 발달했다. 인간만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고차원적인 기능을 담당한다. 이러한 전두엽과 관련된 증상이 주의력결핍장애이다. 전두엽은 주의를 조절한다. 이것을 생각하다가 저것으로 생각을 옮겨가게 해주는 것이 전두엽이다. 주의력결핍장애가 여아보다는 남아에게서 더 자주 관찰되는 것도 진화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먼 과거 수렵시대에 사냥은 주로 남성들이 담당했고, 사냥을 하는 동안에 그들은 주변의 모든 것에 관심을 기울여야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