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될 수 있다
뇌 기능을 연구하는 가장 고전적인 방법은 사고나 질병으로 뇌의 특정 부위가 손상된 사람을 조사하는 방법이다. 그럼 뇌가 다치거나 손상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
뇌 관련 질환에서 가장 흔한 것은 뇌혈관 질환이다. 주변에서 가끔 볼 수 있다. 뇌출혈이 오면 뇌의 어떤 부위에서 발생했느냐에 따라 증상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어떤 경우는 다리 근육이 경직되어 보행이 어려워지거나 말이 어눌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뇌병변으로 인한 증상은 육체적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외상이나 질환으로 인한 뇌기능 이상은 사람의 성격이나 성향도 극적으로 바꿀 수 있다.
내가 지방의 한 사립대에서 강의하던 시절, 그 학교에는 학생들에게 인기 있고, 주위 교수들에게도 평판이 좋은 한 노교수가 있었다. 그의 사무실 문 앞에는 학생, 제자들과 함께 찍은 행복한 추억이 담긴 사진들이 즐비하게 붙어있었다. 그 교수를 잘 알지는 못했지만, 그분의 항상 웃는 얼굴과 언제나 학생들과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나로 하여금 멀리서나마 그분을 존경하게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부러워하게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교수가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모든 것이 엉클어지기 시작했다. 교수는 조그마한 경승용차를 몰고 다녔는데, 교수가 운전하던 차가 논두렁으로 떨어졌다. 그 교수는 크게 다쳐서 병원에 여러 날을 입원했지만 다행히 회복하여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 뒤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한 번은 여러 교수들이 모인 자리에서 다른 교수를 모욕한 적이 있었다. 그러한 모욕이 객관적 사실이나 근거에 의한 것이 아닌, 전적으로 그 교수의 개인적 심경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모욕을 당한 당사자가 크게 화가 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학교에는 같이 근무하는 젊은 교수가 한 명 있었다. 그 젊은 교수는 전부터 이 노교수를 잘 따랐기에 둘의 관계는 매우 친밀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노교수가 젊은 교수에 대한 갖은 험담이 담긴 내용의 메일을 다른 동료 교수들에게 공개적으로 보내버렸다.
주위 사람들은 노교수가 벌인 일에 충격을 받기도 하고 당황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왜 그렇게 괴팍한 인물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크게 궁금해하지 않았다. 예전의 그의 모습은 사려 깊고 남들을 배려하며 유머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 그는 괴물로 변해 있었다. 그 두 모습 사이에는 논두렁에 빠진 자동차 사고가 있었다. 그의 뇌는 자동차 사고로 손상되었고 이전의 교수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되었던 것이다.
이보다 더 극적인 사례가 외국에서 있었다. 너무나 유명한 실례이기 때문에 뇌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한 번 이상씩은 접해보았을 것이다. 바로 피니어스 게이지의 사례이다. 이는 국내 한 방송의 유명 프로그램에서 소개되기도 하였다.
한 철도 공사의 감독관인 그는 근면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1848년의 9월의 어느 날 예전처럼 철로 작업을 하기 위해 폭발물을 설치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예기치 못한 폭발 사고가 일어나서 무게 6 kg, 길이 1m의 철 막대기가 그의 왼쪽 뺨에서 왼쪽 머리 윗부분을 관통했다. 모두들 그의 죽음을 예상했지만 다행히 회복하였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그의 인지 능력은 회복되었지만 충동조절 능력은 상당히 손상되었다. 게이지는 매우 변덕스러운 사람이 되었고, 불안정했으며 괴팍하고 무례해서 같이 지내기 힘든 사람이 되었다. 사고 전후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이다. 결국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말았다. 이후 그는 서커스의 기형적인 사람들이 등장하는 쇼에서 일하게 되었고 사고가 난 지 20년 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무일푼으로 사망했다. 이후 그의 뇌는 하버드 의대에 전시되었다.
한 인간으로서는 불행했을 이 사건이 뇌 과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이유는 뇌의 특정 부위 손상이 성격과 행동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단초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사진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Phineas_Gage>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더 비극적인 사고도 있었다. 1966년 8월의 어느 날 한 청년은 대학교 전망대에 올라가 아래에 보이는 사람들을 무차별로 사격했다. 14명이 사망했고 31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 청년은 결국 경찰에 의해 사살되었다. 범인의 집을 수색한 경찰은 그가 전날 밤에 자신의 아내와 어머니를 죽인 것을 발견했다. 놀라운 사실은 찰스 휘트먼이라는 이 청년은 전혀 그럴만한 인물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는 범행 직전 책상에 유서를 남겨놓았다.
‘어떤 충동으로 이런 유서를 쓰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내가 최근에 한 행동들에 대한 막연한 이유를 남기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최근 나 자신을 정말 이해할 수 없다. 나는 남들만큼 합리적이고 영리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상하고 비이성적인 생각에 시달렸다. 이러한 생각들이 끊임없이 떠올라서, 유용하고 생산적인 일에 집중하기 위해 엄청난 정신적 노력을 해야 했다. ……’
유서의 마지막에 그는 자신의 행동과 극심한 두통에 대한 생물학적인 원인이 있는지를 밝혀내기 위해 부검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부검을 실시하자 그의 뇌에 작은 종양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종양은 편도체를 압박하고 있었다.
편도체는 어떤 사건에 대해서 감정적 중요도를 매기는 역할을 한다. 특히 공포와 공격과 많은 관련이 있다. 편도체는 감정적 반응의 조절자 역할을 하기에 우리의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이것이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기에 더욱 중요하다. '무의식적'이라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내포한다. 내 의지로 조절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찰스 휘트먼의 뇌에서 종양이 편도체를 압박했고 이로 인해 뇌에 일련의 반응을 일어났다. 그 결과는 굉장히 비극적이었다.
뇌의 퇴행화, 물리적인 충격, 종양 등으로 전두엽이라고 불리는 뇌의 앞부분에 손상이 생기면, 그 사람의 옷차림, 정치철학, 심지어 종교도 극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예전의 소신을 버리고 심하게 탈바꿈한 정치인을 보면 뇌진탕을 겪었나 하는 걱정을 하기도 한다.
뇌 이상으로 인한 이러한 사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다만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을 뿐이다. 첫 번째 사례의 노교수처럼 뇌기능 이상이 검사상으로 발견되지 않은 경우도 있을 것이고, 두 번째나 세 번째 사례처럼 그 원인이 명확히 밝혀진 경우도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현대 의학의 최첨단 검사장비도 뇌의 상태를 정확히 검사할 수는 없다.
우리는 나 자신이나 주변 사람의 성격, 감정 조절 능력, 판단 능력, 대인관계 능력, 학습 능력 등이 예전 같지 않다거나 부정적인 면에서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느낄 때가 있다. 이는 일시적 기분, 나이에 따른 호르몬의 변화, 최근의 사건 등에서 영향을 받을 수도 있지만, 상당 부분에서 뇌 이상 또는 뇌기능 저하가 원인이다.
물론 유아기 때부터 나쁜 환경에서 자랐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이다. 올바르지 않은 감정적, 행동적, 사고적 반응이 더 이른 시기에 '강하게' 형성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가 올바르게 기능한다면 우리도 올바르게 사고하고 행동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삶도 문제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인간이 긍정적이었기에 지금의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뇌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노력한다면 뇌로 인한 다양한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