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무서워...
오래전 시골에서 생긴 일이다. 그 당시 시골에서는 흔히들 개를 키웠다. 아이들은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에, 어느 집 마당에 얌전히 있던 개를 발견했다. 심심했던 아이들은 개를 향해 장난 삼아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개의 덩치는 매우 컸지만 대문이 닫혀 있어서 무서운 줄 모르고 돌을 던졌다.
곧 화가 잔뜩 난 개는 대문을 열고 말았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다른 아이가 있었고, 개는 그 아이를 향해서 달려들었다. 다행히 그 아이는 달려드는 개를 겨우 피해서 이웃집으로 도망갔다. 그 사건 이후로 아이는 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큰 개를 보면 무서워한다. 내 친구의 이야기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그 사람의 뇌에서 ‘개=두려움’이라는 공식이 생겨났다. 만약 그 아이가 큰 개를 보듬고 즐겁게 지낸 경험이 종종 있었다면 ‘개=즐거움’이라는 공식이 생겼을 수도 있다. 이것을 뇌과학에서는 ‘학습’이라고 한다. 보통 학습하면 우리는 의자에 앉아 공부하는 모습을 상상하지만, 뇌과학에서는 ‘경험을 통해 특정 자극에 일관되게 보이는 정신적 또는 신체적 반응’을 가리켜 학습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러한 학습이 시간을 가로질러 지속되면 ‘기억’이 된다. 간단한 예는 우리가 생물 시간에 배웠던, ‘파블로프의 개’ 실험이다. 실험에서 개는 종소리만 들어도 침을 흘리게 학습되었다. 뇌는 ‘종소리=음식’으로 인식하고, 이러한 인식으로 인해 침을 분비하게 된 것이다.
학습은 보통 여러 차례에 걸친 반복 훈련을 통해 이루어진다. 파블로프의 개 실험처럼 말이다. 하지만 앞의 사례처럼 단 한 번의 경험을 통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보통은 경험이 충격적이었을 때 잘 이루어지지만, 단순한 한 번의 경험만으로도 뇌에 학습되기도 한다. 특히 나이가 어릴수록 뇌에서 이러한 학습이 잘 형성된다. 어린 뇌는 뇌신경이 한창 발달하는 시기이고, 이러한 시기에 일어난 자극은 뇌에 강하게 각인되기 때문이다.
학습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필수 요소이다. 훗날 유사한 상황이 발생하면 처음부터 생각하는 것보다 과거의 사례를 참고해 반응하는 것이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00년대 초반까지 야생 호랑이를 보았다는 기록이 있다. 당신이 1900년대 초반을 살고 있다고 가정하자. 산속을 지나다 호랑이를 만났다. 급박한 순간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이것저것 머릿속으로 궁리한다면 살아남기가 힘들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유사 경험을 기억하고 있다면 상황은 좀 더 유리해진다. 당신이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신속하게 판단하고 반응한다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이것이 진화론적 학습의 장점이다.
하지만 원치 않는 부작용을 떠안게 되었다. 뇌에 각인된 반응이 불필요한 상황에서도 작동하는 경우이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그렇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가진 사람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괴로운 기억으로 인해 삶 자체가 매우 힘들어진다. 앞의 사례처럼 개를 즐거움과 연상하여 인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두려움’이라는 공식이 지워지지 않는다.
앞에 언급한 개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학습된 호감이나 반감 같은 성향은 의식과는 상관이 없다. 개를 두려워하는 모든 사람들이 어렸을 때를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당신은 왜 개를 두려워하는지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다. 당신이 기억한다면 알 것이고, 기억하지 못한다면 모를 것이다.
어렸을 때 개와 관련된 사건을 기억한다면, 이 사건은 뇌의 ‘해마’라는 곳에 저장되어 ‘의식적’으로 기억해 낼 수 있다. 그러나 기억하지 못한다면 ‘편도체’라는 곳이 주도적 역할을 한다. 이 곳은 무의식적이다.
편도체는 특정 사건에 대해 감정을 입히는 일을 한다. 따라서 편도체는 기억을 일으키기보다는 호감이나 반감과 같은 성향으로 나타난다. 이런 경우 당신은 개를 두려워하는 이유를 모를 것이다. 하지만 당신의 편도체는 개와 관련된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개를 보면 의식적으로는 모르지만 무의식적으로 신체가 반응하게 된다.
잠시 용어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뇌과학의 생소한 용어는 일반인의 접근을 방해한다. ‘해마’라는 용어는 바다에 사는 해마 모양을 닮아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편도체 역시 영어로 amygdala라고 하는데, 우리가 즐겨 먹는 아몬드 모양을 닮아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용어에 특별한 무언가가 있을 것 같지만, 이름의 유래는 의외로 간단한 경우가 많다.
그럼 뇌는 모든 경험을 동일한 정도로 학습할까? 특별히 학습이 잘 되는 경험이 있을까?
그렇다.
뇌는 감정적 동요가 큰 사건일수록 쉽게 각인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뇌의 편도체는 감정적 처리를 담당한다. 해마는 기억을 담당한다. 편도체는 구조적, 기능적으로 해마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와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가 한 부서에서 같이 일하기 때문에 감정과 결부된 경험이 잘 기억된다. 이것 또한 진화론적으로 의미가 있다. 어떤 사건에서 감정을 느꼈다는 것은 중요한 사건임을 의미하고, 중요한 사건을 기억해 두는 것이 나중을 위해서 생존하는데 유리하다.
감정에는 행복과 같은 긍정적 감정과 슬픔, 분노,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 감정이 있다. 여러 감정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을 주는 것은 ‘두려움’이나 ‘공포’다. 두려움이나 공포를 느낀 사건을 잘 기억하는 것은 생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인간의 안전이 사회제도에 의해 보장받은 지는 단지 몇십 년 밖에 되지 않았다. 불과 100 년 전에도 우리는 길을 가다 무서운 맹수나 산적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두려움이나 공포를 느낄 상황은 목숨과 직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을 기억해 두는 것은 나중에 발생할지 모르는 유사한 경우에서 목숨을 보존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결국 인간은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는 상황을 뇌에 더 잘 각인시키게 진화했다. 또한 여기서 뇌 사용법에 대한 하나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무엇인가를 잘 기억하고 싶다면 감정적인 요소를 곁들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