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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범 Apr 10. 2018

04 어릴 때의 경험이 왜 중요한가? 두 번째 이야기

아이의 뇌 속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뇌 발달에서 선천적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후천적 요인은 서로 어우러져 작용한다. 단순한 동물의 경우 유전적 영향이 절대적이어서 프로그램된 생활 방식과 행동만을 고수하지만, 더 복잡한 뇌를 가진 동물들을 보면 후천적 요소의 비중이 커진다. 특히 가장 복잡한 뇌를 가진 인간은 선천적 요소에서 후천적 요소로 이동하는 정도가 훨씬 크다. 마치 집을 짓기 위해서 집의 모양, 창문의 위치는 유전적 설계도를 따르지만, 지붕의 모양, 방의 위치와 크기, 벽의 소재, 벽지의 색깔 등은 경험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과 같다. 


일부 뇌과학자는 여기서 더 나아가 경험과 환경적 요인이 유전적 요인보다 더 큰 영향을 준다고 주장한다. 2012년 영국의 에딘버러 대학교의 연구팀은 유전적 요소와 후천적 요소가 지능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 지를 연구했다. 그들은 2000명의 DNA와 IQ 검사 결과를 비교했다. IQ 검사는 아동기와 노년기 때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그 결과 아동기와 노년기 사이에서 발생하는 지능의 변화에서 유전적 요인은 대략 24퍼센트라고 발표했다. 


인간의 특징을 나타내는 많은 부분에서 환경과 같은 후천적 요인은 매우 중요하다. 마치 어린아이가 곤란한 상황을 대처하는 데 있어 정정당당히 맞서야 할지, 크게 울어야 할지를 경험을 통해 배우게 되고, 이후 뇌에서는 경험을 통해 배운 자료를 토대로 특정 상황에서 맞설지 아니면 울지를 결정하는 셈이다. 


주위 환경이 어린이 인지 발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유명한 연구가 있다. 루마니아 고아원 아이들의 입양 후 인지발달 정도를 추적 관찰한 연구이다. 이런 방식의 연구는 수년의 시간이 필요하고 인위적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1980년대 루마니아는 악명 높은 독재자 차우셰스쿠의 지배하에 있었다. 그는 매우 비인간적인 인구증가 정책을 내세웠고, 결과적으로 많은 고아들이 생겨났다. 슬프게도 고아원은 고아들로 가득 찼다. 독재정권이 무너진 후 15만 명 이상의 고아들이 발견되었고, 많은 아이들이 서방세계로 입양되었다. 


연구는 이러한 입양아들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당시 루마니아 고아원의 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보모들은 아이가 울더라도 안아주거나 반응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 제한된 수의 보모로 많은 아이들을 돌보기 위한 방법이었다. 아이들은 먹고, 씻는 것 같은 기본적인 것들을 제외한 신체 놀이, 안아 주기, 관심 같은 어떤 것도 전혀 경험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양육되었다. 그 결과 머리나 손을 심하게 흔드는 것 같은 퇴행적 형태와 발달 저하의 모습을 보였다. 


당시 루마니아 고아원

보스턴 아동병원의 찰스 넬슨과 연구진은 날 때부터 고아원에서 살아온 생후 6개월부터 3세까지의 아동 136명을 평가했다. 아이들은 주의력결핍장애, 과잉행동장애, 자폐 유사증, 인지기능 저하와 같은 문제들을 많이 보였다. 아동들의 지능 지수는 평균 100에 한 참 미달되는 60~80 사이였다. 아이들은 뇌 발달 저하가 보였고 언어 습득도 매우 느렸다. 감정적 관심과 인지적 자극 없이는 정상적인 뇌 발달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 후이다.  


아이들에게 관심과 풍부한 자극을 주자, 다시 회복되었다. 하지만 결과는 다양했다. 생후 6개월 이전에 입양된 아이들은, 역시 입양되었지만 불우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란 다른 아이들과 비슷한 정도로 회복되었다. 생후 6개월 이후에서 2세 이전에 입양된 아이들은 약간의 문제 가능성을 보였지만, 대개 잘 회복되었다. 반면에 2세 이후에 입양된 아이들은 좋아지기는 했지만, 또래 아이들과 비교하여 경미하거나 심한 정도의 발달 문제들을 보였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하나 깨달을 수 있다. 


어릴수록 뇌는 주변 환경의 영향을 잘 받는다는 점이다. 


어릴수록 좋은 영향도 쉽게 받고, 나쁜 영향도 쉽게 받는다. 이 시기에는 급격한 뇌 발달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갓 태어난 아기의 뇌신경은 서로 충분히 연결되어 있지 않지만, 생후 2년 동안 뇌는 급격한 뇌신경 연결망을 만들어낸다. 매 초 약 200만 개의 연결이 생겨서 2살이 되면 200조가 넘는 뇌신경 연결망을 가지게 된다. 이때의 급격한 신경계 발달 시기에 환경이 뇌 발달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이 시기를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 미래의 모습이 근본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사실 200조라는 숫자는 학자마다 차이가 있다. 적게는 100조 개에서 많게는 1000조 개까지 다양하게 언급된다. 어쨌든 이는 엄청난 숫자임에는 틀림없다. 우리가 100세까지 살고 1초에 숫자 하나씩 센다고 가정하면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겨우’ 32억 개도 세지 못할 것이다. 뇌는 정말 경이롭기 그지없다.


나이가 듦에 따라 발달하는 뇌신경. 생후 2~3년 정도까지는 계속 뇌신경의 연결(시냅스)이 발달한다. 이는 성인의 두 배이다. 그 후에는 필요 없는 신경 연결(시냅스)은 제거된다.

어린 시절 환경은 수 십 년 뒤의 결혼 생활에도 커다란 영향을 준다. 텍사스 대학의 로버트 아크만 교수는 20년에 걸쳐 어릴 때의 가정환경이 성인이 되어 가정을 꾸려갈 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연구했다. 1989년 288명의 아동을 대상으로 그들의 가정에서 대화 방식이나 갈등 상황에서 문제 해결 방식 등을 조사했다. 이후 20년 뒤, 아크만 교수는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한 이들을 다시 조사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어릴 적 가정환경의 영향은 현재 배우자와의 관계에서도 분명히 나타났다.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일수록 배우자에게 더 많은 공감과 애정을 표현하고 갈등 상황에서 공격적 반응보다는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이는 당연히 더 만족스러운 결혼 생활로 이어졌다. 


이제 막 태어난 갓난아기는 타인과 관계 맺는 법을 가정에서 가장 처음 보고 배운다. 어떻게 공감하고 어떻게 갈등을 해결하는 지를 부모나 형제자매와의 관계를 통해 학습하게 되고, 이때 형성된 방식은 본인 결혼생활의 밑바탕을 이룬다. 가정에서 안정적 애착 관계를 맺고 성장하면 애정의 가치를 바르게 느끼고, 편안하고 합리적으로 관계를 맺는다. 자존감이 높고, 낙천적이고, 회복탄력성이 있다. 또한 논쟁을 할 때에 모욕적인 언사를 들어도 좀 더 쉽게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 


불안증도 그렇다. 아이의 작은 행동에도 지나치게 비판적인 부모는 언제 화낼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아이를 항상 떨게 한다. 과잉보호를 하는 부모는 아이가 난감한 상황을 맞이했을 때, 좋지 않은 결과에 대해 필요 이상의 불안감을 느끼게 한다.  


학업 성적에 관심이 많은 부모라면 솔깃할 만한 연구 결과도 있다. 1965년 로젠탈과 동료는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지능 검사를 하여 그 결과를 선생님들에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들의 지능 수준에 맞게 교육을 받도록 하였다. 이후 지능이 높다고 평가된 학생들은 기대에 부응해 우수한 학습 성적을 나타냈다. 하지만 당황스러운 사실은 그 학생들의 지능이 평범했다는 점이다. 똑똑한 인재로 대우받자 성적도 기대만큼 향상되었다. 


어린 시기 환경이 주는 영향에 대한 연구는 매우 많다.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은 쉽지 않기에 주로 동물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다행스럽게는 현재는 실험 중에 동물 학대가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가 강화되고 있다. 부주의한 어미 쥐에서 태어났지만 양육을 잘하는 어미 쥐가 보살펴 준 새끼 쥐는 양육을 잘하는 어미 쥐가 낳은 새끼 쥐들과 뇌신경 발달상의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양육을 잘하는 어미 쥐에서 태어난 새끼 쥐가 부주의한 어미 쥐 밑에서 자랐을 경우에는 반대의 결과가 일어났다. 


다른 연구에서는 쥐를 두 그룹으로 나누었다. 한 그룹은 작은 공, 사다리, 파이프 같은 자극이 풍부한 환경에서 자랐고, 다른 그룹은 장난감이 없는 빈곤한 환경에서 자랐다. 이후 자극이 풍부한 환경에서 자란 쥐들의 뇌는 신경이 더 많아지고 커졌으며 세포핵도 커졌다. 또한 신경세포의 수상돌기의 수가 증가했고 대뇌피질의 크기가 빈곤한 환경에서 자란 쥐들에 비해 10퍼센트 더 커졌다. 자가 치유 능력도 향상되어 손상을 입었을 때도 회복 속도가 훨씬 빠르게 나타났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러한 변화가 불과 며칠 사이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스트레스에 대한 건강 관리 능력도 어릴 적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고 보고한 연구도 있다. 어미가 세심하게 보살핀 쥐는 나중에 발행하는 스트레스 상황에 잘 대처했다. 그러나 어미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로 자란 쥐들은 스트레스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생애 초기의 경험이 스트레스 대응 방식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위스콘신 대학교의 심리학자인 해리 할로의 원숭이 연구도 있다. 붉은 털 원숭이를 어미가 없는 환경에서 키웠다. 어미 대신에 어미 모형 인형 두 개를 새끼 원숭이 우리에 넣어줬다. 한 인형에는 철로 만든 몸통 가운데에 분유통을 끼웠고, 다른 인형에는 분유통 없이 타월 천으로 몸통을 감쌌다. 


원숭이들은 어디로 향했을까? 


원숭이들은 먹을 것이 있는 철로 된 어미 인형보다는 부드러운 천으로 된 어미 인형으로 향했다. 이 실험은 새끼 원숭이들이 어미의 존재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먹이 이상의 무언가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말해준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랑과 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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