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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범 Apr 14. 2018

05 어릴 때의 경험이 왜 중요한가? 세 번째 이야기

"강력범죄자들은 100% 아동학대 피해자라고 보시면 됩니다." - 표창원

성격, 성향, 사고방식, 행동방식 등 나란 정체성을 구성하는 많은 부분들이 어린 시절의 경험에 토대를 둔다고 여러 연구에서 말하고 있다. 어린 뇌일수록 주변 환경의 영향을 쉽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무조건적인 보호와 사랑이 최고의 방법일까?


그렇지 않다. 아무리 좋은 환경이더라도 적절한 자극이 없는 환경에서 자란다면 뇌는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다. 적절한 자극이란 뇌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활성화되도록 유도하는 자극을 뜻한다.


재미있는 연구가 하나 있다. 일본의 나리타 코스케 연구팀은 20~30세 사이 남녀 50명의 뇌를 스캔하고 16세 때까지의 부모와의 관계를 조사하여, 과잉보호를 받았는지 여부를 판단하였다. 스캔 결과, 지나친 모성애나 부성애로 과잉보호를 받은 사람들의 전전두엽 회색질 크기가 혼자 놀이터에서 놀던 사람들보다 뚜렷하게 적었고, 이는 어린 시절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거의 받지 못한 사람들과 비슷한 정도였다.


과잉보호를 하면 아이들이 자기 선택권을 가질 수 없고, 이는 여러 상황을 경험할 기회를 박탈한다. 건강한 뇌로 발달하기 위해서는 여러 경험을 통해 능동적으로 반응하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어 이를 발전시키는 자극이 필요하다. 이러한 자극이 없으면 아이는 수동적이 되고, 뇌가 적극적으로 사고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결과적으로 뇌 성장을 방해하게 된다.


전전두엽과 회색질이라는 용어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전’은 앞을 의미하고, 전전두엽은 전두엽의 앞부분을 의미한다. 이곳은 사고, 추론, 계획, 억제 등과 같은 인간의 가장 고차원적인 기능을 담당한다. 회색질은 뇌의 겉 부분을 말한다. 해부해서 보면 회색으로 보이기 때문에 회색질이라고 불린다. 이곳은 뇌신경의 몸통이 위치하기 때문에, 뇌에서 핵심적 기능을 하는 부분이다. 백색질도 마찬가지 이유로 이름이 붙여졌다.

뇌의 구조


회색질과 백색질


그럼 여기서 또 하나의 의문이 들 수 있다. 환경이 뇌 발달에 영향을 준다면 언제부터 그러한 영향을 받을까?


자궁에서부터 일까? 태어난 이후일까?


기존에는 자궁 속의 태아는 의식이 없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은 자궁의 경험도 태아에게 중요하다는 연구 결과가 계속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된 테사 로즈붐과 동료들의 연구는 매우 놀라운 결과를 보여준다. 세계 2차 대전 중인 1944년의 네덜란드는 나치에 의해 식량이 징발되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거의 없었다. 이러한 상태는 5개월간 지속되었고, 당시 하루에 먹을 수 있는 양은 빵 2조각과 감자 2개, 사탕무 반쪽이 전부였다. 이는 하루에 필요한 열량의 1/5에서 1/6 수준이었다.


연구진은 암스테르담의 한 병원 출생기록을 이용해 그 당시에 태어난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하였다. 그들을 찾아서 인터뷰와 병원 검사를 하였다. 그 결과 심혈관, 폐, 신장 관련 질환과 유방암, 우울증 발생 가능성이 높았다. 그 영향은 매우 커서 심장마비의 경우에는 2배에서 4배 더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산모의 다른 시기에 태어난 형제, 자매의 건강 상태는 양호했다.


임산부의 건강상태가 태아의 평생 건강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이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여성의 경우, 성인이 되어서 배출할 약 백만 개의 난자를 가지고 태어난다. 이 중 약 4백 개가 일생 동안 배출된다. 태아는 난자를 지닌 채로 태어나기 때문에 태아의 건강 상태에 따라 태아의 난자도 영향을 받는다. 결국 손자까지 할머니의 임신기간 영양상태에 따라 영향을 받는 셈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 손자가 낳은 아기 또한 영향을 받는다.


결국  임신한 여성의 건강 상태는 4대에 걸쳐 그 영향을 줄 수 있다. 가히 충격적이다. 임산부의 건강이 후손의 건강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준다는 사실에서, 뇌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산모의 우울증은 태아의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의 수치를 높여 뇌 발달을 저해한다고 말하고 있다.  


루마니아 고아들의 발달 과정을 조사한 찰스 넬슨의 다른 연구에서는 신생아가 엄마의 목소리를 낯선 사람의 목소리와 구분하여 다른 뇌파 반응을 보인다는 것을 밝혀냈다. 많은 연구에서 인간의 경험은 엄마의 자궁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말하고 있다. 태어난 순간부터 주변 환경으로부터 쏟아지는 자극에 비하면, 엄마의 자궁 속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하지만 우리의 경험은 자궁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나는 신경해부학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본인이나 부인이 임신했을 때는 부부 싸움을 절대 피해야 합니다. 꼭 해야겠다면 출산 후까지 참고 기다리다가 아기가 없는 곳에서 하세요. 임신 기간 동안 어떻게 지냈느냐에 따라 아기와 여러분 후손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인생도 달라지겠지요.”


대부분의 연구가 어머니의 생물학적 특징과 2세와의 연관성을 중점적으로 다뤘지만, 아버지의 경우도 비슷하다. 2015년 캐나다 맥길대학교 사라 키민스 연구진은 쥐 실험을 통해, 아버지가 자녀를 낳기 전의 후천적인 생활 습관이나 환경 영향으로 인한 키와 몸무게, 질병의 유무, 수명 등과 관련된 요인들이 정자에 기록되고, 이는 아들과 손자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자가 생성되는 과정에서 유전자 단백질 변형이 일어날 경우, 이를 물려받은 2세에게도 이와 관련된 질병이나 선천적 결손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A라는 남성이 선천적으로 당뇨나 비염이 없더라도 생활습관이나 환경 등 후천적 요인으로 인해 이러한 질환이 생기면, 이는 A의 아들이나 손자에게도 나타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를 ‘세대 간 후성 유전’이라고 하는데, 기존 생물학계에서는 아직 논란이 있는 이론이다. 하지만 2015년에 레이첼 예후다 박사가 유전자 분석을 이용해 2차 세계대전 홀로코스트 트라우마도 자녀에게 유전된다는 실험 결과를 발표한 것처럼 최근에는 이를 입증하는 연구 결과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만약 당신이 건강하고 현명한 2세를 원하는 남성이라면, 당신의 역할은 중요하다. 후천적 변화는 당신 아이의 건강과 수명을 바꿀 수 있다.


표창원 범죄심리분석가는 강력범죄자들은 100퍼센트 아동학대 피해자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범죄를 용서하자는 말은 아니다. 그의 견해는 뇌과학적으로 매우 타당하다. 만약 그들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그 아이들을 가혹한 매질이 아닌 사랑과 포용으로 대했다면, 그들의 미래는 어떻게 되었을까? 분명 달라졌으리라고 확신한다. 어린이들은 부모나 어른의 강압적 행동에 저항할 수 있는 신체적, 정신적 조건이 안 된다. 그들은 복종할 수밖에 없다. 복종할 수밖에 없는 그들을 우리 어른들이 최선의 길로 인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유아나 어린이는 대인 관계나 세상에 대해 알아가는 데 있어, 부모와의 상호관계에서 가장 많은 정보를 얻는다.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비정상적인 대우를 받게 되면, 사회나 타인에 대해 뒤틀리고 왜곡된 인식이 뇌에 각인된다. 특히 어린 시기에 공포와 결부된 경험은 매우 강력하다. 어린 시기의 경험은 개인의 성격, 성향, 취향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평생에 걸쳐 강한 영향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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