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일지] 1. 나의 몸을 찾아서.

by 이지애

몇 년 만에 찜질방이던가.

찜질방 마니아들만 들어간다는 불가마에서 온몸을 지지고 나와서는 땀범벅을 하고 나와 앉았다.


4만 명 정도는 앉고 눕고 했을 것 같은 매트 위에 멍하니 앉아서 집에서 가져온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멍 때렸다. 불가마에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면 체감하지 못했을 시원함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탈의실 락커에서 핸드폰을 꺼내와 찜질방 매트에 앉았다.

저장해두기만 했던 발레학원에 전화를 걸었다.


“문의 좀 드리려고요. 마흔 중반에 출산 이후로 몸이 확 굳어버린 발레는 1도 모르는 저 같은 사람도 발레를 배울 수 있나요?”


시작부터 두려움이 앞선 건지. 그보다 누군가의 지지발언이 필요했다.

마흔이 훌쩍 넘어서도 발레를 시작할 수 있다고.

석고상처럼 굳어버린 뻣뻣함에 유연성이라는 기름칠을 할 수 있다고.

뭐 그런 용기, 응원의 말이 필요했던 것 같다.


내 돈 내고 배운다는데 시작 못할 건 없지 않은가.

다만 내가 두렵고 쪽팔려서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뿐이지.


“네~ 그럼요. 자세 교정을 위해서 하시는 분들도 정말 많으세요. 복장도 발레복 처음부터 안 입으셔도 되고요 편하게 운동복 차림으로 오셔도 돼요. 발레슈즈만 착용해 주세요~”


친절한 말투로 ‘당신도 할 수 있어요’는 뉘앙스의 말 한마디면 시작할 이유가 충분했다. 게다가 보기엔 예쁘지만 입기엔 부담스러운 발레복을 처음부터 안 입어도 된다고 하니까 더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날로 바로 체험 수업 신청과 동시에 결제를 했다.

카드를 내밀며 말했다.


“3개월. 일시불로 해주세요.”



무슨 바람이 불었던 걸까..? 봄이 와서 그런 걸까.

문득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던 발레를 하고 싶었다.



요가를 꽤 오래 하긴 했지만 그것도 진지한 수련이 이어지질 않으니 점점 몸이 굳어갔고, 간단한 스트레칭 정도야 무리 없이 하지만 나는 내 몸을 잘 안다. 내 근육이 많이 굳었다는 걸.


출산과 힘든 육아라는 시간 4년을 거치면서 내 자세도 있는 대로 틀어졌고, 이미 틀어져있던 골반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틀어져있는 것 같았다.



발레로 말할 거 같으면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전 직장 건물 1층에 발레 학원이 들어왔다. 같은 건물 직원들은 할인을 해준다길래 퇴근하고 바로 찾아갔던 발레 학원. 발레 슈즈만 사고 발레수업은 한두 번 하고 결국 포기.



처음 해보니 당연히 발레에 재미를 느낄 새도 없었는데 더 중요했던 건 나 같은 몸치와 초보들에게 우쭈쭈쭈 해주는 영업에 능수능란한 선생님도 없었다.^^ (이게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전신거울을 보며 낑낑 대는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더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발레는 배우고는 싶지만 나 같은 사람은 엄두도 내서는 안 되는 운동이 되어 멀어지고 있었다.



이제는 마흔 중반.

출산을 하고 나니 새로운 것에 도전을 하는 것에 있어서 무서울 일도 없어졌다. 이게 ‘가정’이 주는 최대의 장점이 아닌가 싶다. 실패하고 좌절한 모습을 보여줘도 되는 ‘나의 편’들이 있다는 위안.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아이가 유치원에 입학을 하면서 나는 이상한 감정들을 마주해야 했다. 말로도 글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과 생각들이었다.


여러 개의 회로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

마음속 복잡한 회로들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 인생을 늘 그렇게 왔다. 그 타이밍이 또 돌아온 것 같았다. 나만의 공부를 해야 하는 시간.


이 시간은 멀리 내다본다면 인풋, 성장 같은 것과 이어진다. 내가 선택한 나만의 공부법은 ‘나의 몸을 찾는 새로운 운동’ 그리고 ‘어학 공부’다.


배움 앞에서는 늘 겸손해진다. 조용히 생각하고 집중하는 시간이 갖게 된다.


아이는 다섯 살.

어느 정도 대화도 되고 몸을 쓰는 일은 예전에 비해 반 이상 줄었다.



이제는 ‘나’를 찾고 싶었다.

늘 일을 했고, 책을 쓰며 무언가를 계속해왔지만 완벽한 나를 찾지 못한 갈증에 늘 시달렸던 것 같다.


‘나의 몸’을 찾는 시간 속에서 나는 또 얼마나 많은 배움과 성장의 시간을 가지게 될지. 수영이나 요가를 오래 해왔기에 가능한 동작과 영법이 있듯이 발레도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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