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역 채근담 시간의 언어 연재의 서문
유럽을 여행 가면 거기에는
가는 곳마다 영어나 독일어 그리고 프랑스 어가 아닌
각국의 자기 나라말을 은연 많이 들을 수 있다.
이것은 언어란
민족과 국가와 사람의 정체성이기에 그러하다.
만주족이 건륭제와 강희제 간의 빛나는
발전을 하고서도 지금 현재 그 문자와
언어를 잊음에 결국엔 민족 정체성을
잊음과 같은 것을 볼 때,
어떤 언어를 쓰고 어떤 언어를 말하는가는
상당히 중요한 것이라고 여겨질 법도 하다.
이번 초역 채근담의 언어에는 무슨
언어가 그 결을 보여 줄 것인가?
중년, 품격, 신중, 됨됨이, 온화 등의
시간은 그렇게 '시간'의 결을 고스란히
보여준다고 필자는 느꼈다.
경험의 골짜기가 얼마나 깊고
과정의 산봉우리가 얼마나 높은지는
오직
지나온 사람만이 안다.
그렇게 시간은 지나왔고, 같이 그 사람과
걸어오면 자기만의 결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줌이
있다.
지나오지 않고는 모르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은
누군가는 돈을 주고 못 살 경험이기도 하고
누군가는 돈을 받고도 하기 싫을 과정이기도 하건만
중요한 것은
그것은 오직 지나온 사람만이, 온연히 알고 있는
그 무엇인가가 있음은 자명하다.
시간은 그 사람과 같이 걸으며
어떨 때는 서쪽에서 부는 바람이었다가
어떨 때는 소나무 가지 끝에 달린 솔방울이었다가
서쪽하늘에 해거름 질 때 몸이 길어져선
키다리 아저씨처럼 보이는 누군가의 등신대
이었음 이리라.
그 결을 어찌하야 이름하랴?
무엇이라 명명하면 기꺼움이 극치에 오를까?
필자는
이에 담담히 말하노니
"이제 초역 채근담 시간의 언어, 그 결을 써보기로
하리라"
그 말을 여기 브런치가 펼쳐 만든 동산, 그 산 밑
구곡폭포의 어느 물살 얕은 어름에 살며시
놓고 일어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