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하고 싶어
티셔츠에 빤스 한 장 달랑 입고 소파에 널브러져 책을 읽고 있던 남편에게 말했다.
"나 브런치에 글이나 써볼까?"
"왜?"라고 말하는 남편의 눈은 여전히 책에 고정되어 있다.
"내 존재 가치를 증명해 보이고 싶어."
"그대로 있어도 존재 가치가 있어."라는 시큰둥한 그의 말투.
"그래도 해보고 싶어. 잘 하면 책도 낼 수 있대."
"이미 그 시장도 포화됐고 브런치 통해 책 내는 경우도 예전처럼 많지 않아. 하려면 일찍 했어야지."
우리집 만물박사 척척박사 박 박사님은 이렇게 말했다. 됐다, 인마. 너한테 말 안 할란다.
"진짜 성의 없이 얘기한다. 됐어, 학교 다닐 때 내가 너보다 공부 잘했어! 겁나 잘난 척이네."라는 유치한 멘트와 "그리고 집에서 바지 좀 입고 있어. 세연이도 이제 알 거 다 아는 나이인데!"라는 느닷없는 잡도리를 날리며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가 돌만 지나면 어느 정도 키운 건 줄 알았는데 세 돌이 넘어가도록 육아는 쉽지 않다. 코로나로 인해 어린이집에 갈 수도, 그렇다고 외출을 쉬이 할 수도 없는 요즘, 24시간 집 안에서 아이와 단둘이 부대끼는 체제는 (쌍)욕 나오는 이벤트의 연속이다. 게다가 가을이 '뚝'하고 떨어졌다. 봄과 여름을 통째로 도둑맞은 채 쓸쓸히 가을이 왔단 말이다(미리 말해 두지만 나는 격하게 가을을 탄다). 그야말로 독박육아와 코로나와 가을의 삼.중.고.
그래 뭐, 꼭 내가 아니더라도 요즘은 다 힘들다. 학생도 힘들고, 취준생도 힘들고, 자영업자도 힘들다. 해야 하는데 할 수 없고 가야 하는데 갈 수 없는 문드러진 길 위에서 너 나 할 것 없이 좌절하고 우울감을 느낀다.
언젠가부터 서점가에는 '날 내버려 둬. 그냥 쉬고 싶어.'라는 투의 에세이가 즐비했다. 무언가를 더 하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만족하고, 거창한 꿈과 희망 보다는 일상에서 누리는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에 관심을 갖는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도 '한다'와 '안 한다' 중 선택할 수 있는 '일상적 삶'이 있다는 전제 하에서의 이야기이다. 이 봄만 견디면 괜찮겠지, 이 여름만 버티면 나아지겠지 하다가, 한 해가 다 지나도록 학교도 직장도 그 어디도 제대로 못 나간 채 손발이 꽁꽁 묶여 버렸다. 뭘 좀 하고 싶어도 '못' 하게 된 작금의 상황에서 우리는 우울해(海)에 빠지고 무기력에 빠진다. 신조어로 '코로나 블루'라나 뭐라나.
아무튼 더 이상은 이대로 계속 고여 있고 싶지가 않다. 어떻게든 움직이고 무엇이든 하고 싶다. (남편이 좋아하는) 아이유가 그랬단다. 지금 느끼는 이 기분 5분 만에 스스로 바꿀 수 있다고. 그러니 몸을 움직여야 한다고. 그렇다. 나는 지금 뭐라도 해야 한다.
어릴 때나 간간히 해보던 자아찾기 놀이를 해본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서른이 훌쩍 넘어, 좀 더 솔직하자면 마흔을 코 앞에 두고 이러고 앉아 있다니 낯이 간지럽다 못해 섬뜩하다.
헛짓거리 그만 하자 싶어 주섬주섬 빨래를 주워 담고 밀려있는 집안일을 한다. 오늘 급히 처리할 일과 이번 달 챙겨야 할 일들을 확인하기 위해 스케줄러를 꺼내 들었다. 지난 연말 기어코 모은 프리퀀시로 받아낸 별다방 다이어리(왜 인간은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가) 말이다. 그래봤자 요즘에는 아이 예방접종 일정이나 양가 대소사 정도만 쓰여 있지만. 먼슬리를 스치고 위클리도 지나 맨 뒷장 프리노트에 이르니 올 초에 호기롭게 써두었던 새해 계획들이 나부낀다. 그 중 눈에 들어오는 하나.
‘생각나는 대로 짧은 글 쓰기’
아, 그랬지. 내친김에 작년 다이어리(역시나 별다방)도 펼쳐보았다. 재작년 다이어리(이 역시)도. 그리고 그 이전 다이어리(더는 말 못 하겠다)도. 몇 년 째 나의 계획이자 목표 리스트에는 같은 것이 쓰여 있었다. 빠지면 섭섭할 것처럼 매번 적어 놓고는 시도하지 않았던 것. 시간이 없었던 건지 두려웠던 건지는 애써 들춰내고 싶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나는 항상 무언가를 쓰고 싶었다.’라는 사실.
더듬더듬 기억해 본다. 초등학교 때 문방구에서 한참을 고민하다 골라온 촌스러운 핑크색 일기장을. 나의 가을병은 그 때부터 시작된 모양인지 '가을이다'로 시작하는 글을 지금 보다 훨씬 쪼매난 게 지금 보다 훨씬 겁도 없이 잘만 써댔다. 엄마의 칭찬을 등에 업고 신명나게 적어댔다.
그래, 나 글을 써봐야겠다. 깜냥 따위는 생각 말고 일단 시작하자. 한 자라도 쓰고 보자.
오랜만에 책상 앞에 앉았다. 사과가 새겨진 남편의 컴퓨터는 세상 '힙'하지만 윈도우에 익숙한 나에게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기본적인 한/영 전환법 조차 모르겠고 인터넷 익스플로러는 또 어디로 갔는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져 나오는 난관들. 휴대폰으로 검색해가며 겨우 컴퓨터 사용법을 익혔다.
이제는 진짜 글을 써보자. 그런데 한글도 없고 워드도 없단다. 유사한 기능의 문서 작성 프로그램을 찾다가 포기하고 일단 블로그로 들어가 비공개로 돌려놓고 쓰기로 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방치해 둔 계정은 당최 비밀번호가 먹히지를 않는다. 예상되는 알파벳과 숫자의 조합을 다 눌러보아도 실패. 결국 인적사항을 입력하고 휴대폰으로 인증번호를 받고 새로운 비밀번호를 만든 후에야 간신히 로그인을 했다. 컴퓨터 앞에 앉은 지 이미 한 시간이 지났다. 시작도 하기 전에 몸뚱이는 굳고 입에서는 단내가 날 지경이다.
잠시 숨을 고른 후 이제는 ‘진짜로’ 글을 써보자고 마지막 다짐을 한다. 딱히 이렇다 할 체계도 없이 일단 생각나는대로 지껄인다. 쫄깃한 랩핑마냥 현란한 타자소리와 뒤이어 쏟아지는 아름다운 한글의 나열. 회사에서 온갖 표와 그래프가 수놓아진 휘황찬란한 보고서에 길들여져 있다가, 새하얀 바탕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담백한 검정 글자들을 보고 있자니 생경하지만 기분이 좋다. 마음도 생각도 딱 필요한 만큼만 남기고 깔끔하게 정리되는 것만 같다.
이제 뭐라도 해보려고 한다. 제일 먼저 ‘글쓰기’를 택했다. 새로운 시대 앞에 변해버린 일상과 버텨내려는 나의 안달난 몸부림과 뭐라도 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담았다. (남편, 보고 있나?)
분홍색 일기장이 이십 몇 년 만에 시동을 건다. 오래되어 금세 엔진이 꺼질 지도 모른다. 겨우 몇 발짝 가다가 자빠질 지도 모른다.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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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