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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수 Oct 13. 2020

여느 개죽음


30년 간의 서울살이를 끝내고, 경기도민이라는 어색한 타이틀을 처음으로 받아들고서 자동차로 출근하던 1년의 시간이 있었다. 매번 빡빡한 2호선 지하철 속에서 갇혀지낸 탓일까. 부천 to 강남, 스테레오 빠방한 음악이 흐르는 자차 출퇴근은 내겐 나름 설레는 경험이었다. 이제야 비로소 나는 어른이 되었구나, 하는 유치한 생각에 서울 여기저기를 순회하며 친구들의 귀가를 돕기도하고, 삘 꽂히면 액셀 닿는데로 어디든 쏘다니곤 했다.




그렇게 짜릿한 몇 달이 지나고 자동차 출퇴근이 더이상 스포츠가 아닌 일상이 될 때쯤, 문득 새롭게 한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생각보다 도로에서 일어나는 로드킬이 참 많구나` 하는 거였다. 사실에 서울에 살 때는 로드킬, 로드킬 말만 들었었지 와닿지 않았었는데 `신도시 → 시골 → 강남`을 주된 경로로 출퇴근하니 몇일에 한번 씩은 반드시 로드킬 현장을 마주치는 것이 일상이었다. 길을 잃은 동물들이 어줍잖게 도로를 건너려다가 중앙선 즈음에서 차에 치이는 일은 너무나도 흔했고, 그나마도 운좋은 동물들은 도로 옆 길가에 눕혀져 생을 마감하고, 운이 없으면 도로에 그대로 누워 짓이겨지다가 밤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곤 했다.




글로 표현하자면 너무도 비참하고 비극적인 일이지만, 현실에서 나를 포함한 사람들의 반응은 꽤나 냉담했다. 그런 사고가 일어나는 도로들은 보통 시내 외곽의 빠른 도로들이기에, 사람들은 그들을 발견하고 흠칫 놀라거나 슬퍼하면서도 그들이 운전하는 속도 만큼이나 빠르게 다시 현실로 돌아가곤 했다. 사실 나도 그랬다. 거의 1년간 수십 번의 로드킬 사건을 마주했고, 내 차가 그들 위로 지나가지 않게 하는 최소한의 조의를 표하며 하루 하루를 보냈다.




여느 날, 운 좋게 빨리 퇴근한 나는 평소와 같이 강남에서 부천으로 긴 퇴근 여행을 시작했다. 저녁 일곱시의 강남은 교통체증의 산 증인이기에, 평소보다 두배는 천천히 느릿느릿 차를 돌렸고 부천 즈음 여느 터널 앞에 도착했다. 하수상하게도 앞 차들은 비상등을 깜빡하며 서행하기에 바빴고 나는 본능적으로 앞에서 또 어떤 사고가 펼쳐졌구나 직감할 수 있었다. 이 때 즈음의 나는 어느 정도 출퇴근 경험치가 쌓인 덕분에 앞 차들의 움직임을 보면 대략 어떤 사고가 펼쳐졌는지 추론할 수 있었다. 두 차선중 한 차선만 유독 막히고 다들 한 쪽 깜빡이만 켜고 있으면 추돌사건이요. 앞차들이 특정 구간에서만 몸을 살짝 비틀면 로드킬이구나 하는 식으로. 그날은 안타깝게도 앞차들의 움직임을 보아 로드킬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달라질 일은 없었다. 뭔지 모를 생명체의 명복을 빌며 조심조심 액셀을 밟는 게 내가 할 수 있는일의 전부니까. 그렇게 조심조심 액셀을 밟던 중,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강아지의 외침이 들렸다.




그리 크지 않은 소리였지만, 터널 속이었기에 그 외침은 크게 증폭되었다. 무슨 용기였을까. 그 소리는 이미 현장을 몇미터 지나친 나를 멈춰 세웠고, 적어도 누군가 이 가엾은 생명체를 다시 밟지는 않았으면 하는 생각에, 현장 앞에 서서 손짓 하며 차들을 돌리려 애썼다. 한바탕 차들이 지나가고 뒤를 돌아보니, 뽀얀 포메라니언 한마리가 힘없이 누워있었다. 털이 그리 때타지않은 걸로 봐서 누군가의 손에서 이쁨받고 자라던 반려견이었던 듯 했고, 이제는 끙끙거리는 소리정도만 겨우 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살려야한다". 이제는 우스갯소리가 되버린 문장이지만, 내 머릿속엔 그 한 문장만이 가득했다. 지금이라면 아직 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어떻게든 머리를 쥐어 짜내 방법을 찾고 싶었다. 도로에 서서 `부천 동물병원`, `동물병원 출동` 같은 검색어를 연신 찾아보다가 몇 군데의 동물병원에 연락했지만, 대부분은 받지 않거나,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곤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길가에서 사고 당한 주인 모른 강아지를 멀리까지 구하러 오겠다는 수의사는 찾기 힘들었고, 지푸라기 잡는 마음에 112에 전화를 걸어 출동을 요청했다.




몇 분이 되지 않아 경찰 한 두분이 도착해 상황를 물었고, 처리하겠다는 답변을 하며 내심 내가 자리를 떠나주기를 원하는 눈치를 보였다. 나는 상황을 설명하며 내가 비용을 대서라도 강아지를 살리고 싶다는 뉘앙스를 풍겼었고, 경찰은 이런 경우 보통 강아지가 더이상 밟히지 않게 도로 멀리로 치워두는 정도에서 일을 마무리했기에, 뭔가를 더 기대하며 현장을 지켜보는 내가 부담스러웠을거라는 생각을 했다. 결국 경찰분은 내게 다시 다가와 이미 저렇게 다쳤으면 살기는 어려울 거라고, 더이상 밟히지 않게 길 옆으로 치워두면 새벽에 시에서 거둬줄거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곧이어 강아지를 옮기주시곤 경찰분들은 떠났고, 나는 그 곳을 머뭇머뭇 지키다가 트렁크에 있던 신문지로 강아지를 덮어주고 자리를 떠났다.




매캐한 기분으로 밤을 맞이 하고, 다시 아침이 밝아와 그 터널을 지났다. 터널 속 신문지는 온데 간데 없었고, 세상은 간밤에 무슨 일 있었냐는 듯 화창하고 쨍쨍했다. 그 도로 위에 누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어떤 심경일까, 아플 줄 알면서도 피하지 못하는 무기력함은 얼마나 큰 공포일까. 그간 내가 목격해온 수많은 현장들도 다 그처럼 처절하고 비참했을까. 끝을 경험하지 못한 나는 절대 이해하지 못할 아픔이다. 다만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그 터널을 지날 때, 그 이름 모를 포메의 목소리와 눈빛을 기억해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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