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추억의 힘

영화<비포 선셋>과 <패스트 라이브즈>를 보고

by studiokioki

3부작으로 구성된 비포시리즈, 해리포터처럼 배우들 또한 나이를 먹어가며 영화에 기록된다.

청춘들의 강렬했던 하루를 그리는 비포 선라이즈

직업을 갖고, 각자 연애를 하며 다른 길을 가고 있으면서도 그날을 회상하는 비포 선셋

현실적인 부부들의 이야기를 하는 비포 미드나잇

skbOu_uqRQVAtnVNas-VJ4IOXxATLpM3zioQUjJR7CfejQKHPQkSNa1nmK_lhmuqZLMWz1yJCjFwuomPE0VwrcBkHIIaWJlpwuAC_If2lRPksgfbVNRcpcRWoPF1fFtEgNBAr8mSMHQYWPkbfQ 포스터에서 느껴지는 영화의 연륜...

세 영화 전부 재밌게 봤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이유는 롱테이크로 촬영하면서 일상, 자신의 가치관, 섹슈얼한 농담까지 아주 길게 쭉 보여주면서 영화라는 생각을 좀 잊게 만든다. 2명이 등장하면서 세계를 걷는 그런,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특히 남자 주인공의 비행기 시간 때문에 2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았다는 설정, 그리고 실제 영화시간이 그 정도 되기에 더 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비포 선셋의 극 중 배경인 파리 거리를 걷고 센 강에서 페리를 타고, 운전기사가 운전해 주는 차까지 타면서도 끊임없이 이야기를 이어간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 아쉬움, 각자의 연애, 결혼 상대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며 감정선은 계속해서 오르락내리락한다.


남자 주인공은 부인과 아들이 있음에도 필사적이다. 둘이 9년 전에 만나지 못한 아쉬움과, 같은 시간 뉴욕에서 거주했음에도 마주치지 못했던 점, 결혼식 전까지도 망설였다는 이야기를 하며 능글맞게 미련을 표하며 계속해서 끝까지 헤어지지 않고 이동하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가정도 있는 아저씨면 이제 그만 집 좀 가라!'라고 생각이 들면서도 매력이 있어 응원하게 만든다.


비포 미드나잇에서도 계속된 과거의 추억은 계속해서 언급된다. 이 이야기는 패스트 라이브즈 이야기 이후에 같이 이야기하고 싶어 두 영화의 후기를 같이 남겨본다.

OI-Ce8K0aE4azljpRotZBD8_JBb3GD55vV85A3aVWC5Tphd9J9lYIXkldPgVI8jQ0NcQjgv-ajr31Z4028qmRQ.webp 유태오의 매력을 알아버린 영화. 태오형.. 회사원이 몸이 그렇게 크면 안 되는 거잖아.

초등학교 시절 좋아하고 친했던 여자아이는 미국으로 이민 가게 되고, 남자아이는 커서 군대를 다녀온 뒤 복한 한 뒤 그녀를 페이스북에서 찾고, 스카이프에서 만나 화상통화를 이어간다. 그렇게 둘은 뉴욕-서울을 잇는 장거리 썸을 탄다. 하지만 각자의 상황 때문에 만날 수 없고, 그렇게 연락이 끊긴다. 12년 후 남자는 여행을 핑계로 여자를 만나러 뉴욕을 간다. 여자는 이미 결혼하여 남편과 같이 살고 있다.


-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된다. 초등학교 때의 호감으로 24년 뒤에 다시 만나 설렌다는 것이


- 생각보다 자신감 없는 뉴욕커 남편. 보통의 고정관념으로는 서양에서는 전 남자 친구뿐만 아니라 전 남편까지도 쿨하게 만나며 악수하는 장면들을 많이 봤는데, 여자가 옛 친구를 만나러 가기 전 걱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 유태오 씨의 연기논란? 극 중 유태오 씨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을 다닌다. 그런데 외국인을 만나 영어를 버벅거리는 모습에, 엘리트인데 영어를 못하는 게 말이 되냐는 리뷰를 봤다. 아마 그 리뷰를 봤을 때 이미 나는 이 영화를 너무 좋게 봐서 '예전 한국 영어 교육에서는 스피킹이 부족했으니까...'라며 혼자 실드를 쳤다.


-여주인공 역을 맡은 그레타리는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한국인 이민자를 연기하고, 셀린 송 또한 캐나다계 미국인, 유태오는 독일에서 자라고, 미국에서 살던 경험이 있는 서드컬처키드다. 그렇기에 그레타리의 한국어, 영어 연기는 딱 맞춘 캐스팅이 아니었을까.


* 한국 대학생으로 연기하는 유태오의 몸이 너무 좋아서 술집 연기에서 흠칫했는데, 꽉 맞는 와이셔츠를 입고 뉴욕으로 온 유태오는 숨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 보통의 한국 회사원이 이래도 되나... 남자가 봤을 때 너무 멋있었지만 소심한 연기를 하는 것이 재미 포인트


*아서와 해성, 유태오와 존 마가로는 극 중에서 처음 만났다고 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언제 끝날지 감독만이 알고 있었다. 등의 비하인드 이야기들도 흥미로운 점이 많다. 영화를 재밌게 봤다면 인터뷰를 찾아보는 것을 추천


명장면은 노라, 해성 그리고 노라의 남편인 아서가 같이 바에서 이야기를 한다. 노라가 가운데 앉고 양 옆으로 두 남자가 앉는다. 처음에는 스몰토크를 이어가고, 세명은 점점 더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이 장면은 영화의 시작으로 쓰이기도 했다. 이 장면에서 미국인 남편인 아서를 옆에 두고 해성은 한국어로 '네가 그때 미국가지 않았더라면, 결혼하지 않았을까?', 혹은 '사랑하지 않았을까'라는 말들을 노라에게 한다.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거의 스릴러. 아무리 미국인 남편이더라도, 한국인 아내와 한국인 장모님이 있는데... 결혼, 사랑과 같은 단어들은 당연히 알지 않을까.. 하지만 묵묵히 그들의 대화를 옆에서 기다려주고, 심지어 해성이 택시를 타러 가는 길까지 노라와 단 둘이 바래다주도록 허락하는 아서의 모습은 존경스러웠다. 그는 집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아내를 기다렸고, 돌아오자마자 울음을 터트리며 미안했다고 말하는 아내를 안아주기만 한다.


- 노라 또한 해성에게 흔들렸고, 그럼에도 끊어냈고, 그 과정을 기다려준 남편에게 대한 미안함, 등등 복합적인 감정을 담아내는 연기 또한 인상적이었다.


사실 우리 외갓집은 90년대 후반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어렸을 때부터 작년까지 종종 미국에 갔고, 사촌 동생들은 한국계 미국인이며, 영어가 모국어이자, 교포 한국어를 구사한다. 그렇기에 나는 <미나리>와 같이 이주민의 영화를 다룬 것에 조금 더 쉽게 몰입하며 관람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더 재밌게 봤을 수도~



다시 비포 트릴로지와 패스트라이브즈를 같이 쓴 이유로 돌아가자면 강렬한 추억의 힘을 새삼 느꼈기에 적어본다. 강렬한 추억은 계속해서 되새김질되고, 그 기억은 또 다른 행복해질 수 있겠다는 여지로 이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본래 갖고 있던 추억들로 더 많은 실존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기대하고, 상상하게 된다. 너무 상상하면 마치 없었던 일을 일어난 일처럼 여기고, 다시 마주할 수 없음에 그리워한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백현진 씨의 뉴스룸 인터뷰에 나온 자신만의 암시? 문장도 떠올랐다.

있을 수 없는 일은 없는 일 일어난 모든 일은 있는 일

일어난 일들(추억들)은 계속해서 좋은 기억으로 남기에 가져가고, 그 기억에서 파생된 만약이라는 가정의 상상들은 일어나지 않았기에 없는 일로 가져가면 되지 않을까.


두서없는 영화리뷰였다. 많은 콘텐츠들을 보고 좋았던 것들을 모두 기억할 수 없음을 깨닫고 일단 생각나는 전부를 적는데 집중했다. 많은 평론가, 시네필들처럼 인문학적 교양과 자신의 전공분야를 엮어 콘텐츠를 리뷰하는 멋진 칼럼을 동경하지만, 나는 당장 지금 신난 나의 모습을 기억하고 싶어 이렇게 쏟아내듯이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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