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프로필 대신, 스튜디오에서 마주한 나의 진짜 모습

기술이 99%를 대체해도 남을 1%

by 베러윤


프로필 사진 예약하려고 하는데요.


최근에 프로필 사진을 새로 보내야 할 곳이 생겼다. 이전 같았으면 바로 스튜디오 예약을 했겠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생성형 AI툴을 이용하면, 내가 원하는 느낌과 완벽한 구도의 사진을 단 몇 초만에 수십 장 만들어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명도, 피부도, 표정도 자연스럽게 말이다. 무엇보다 카메라 앞에 어색함을 견디는 게 고민이 되었다. 스튜디오를 가고, 촬영을 하고, 다시 돌아오는 과정들을 따져보면 AI로 뚝딱 만들 수 있는 시간이 훨씬 낫지, 굉장히 비효율 적이라고 느껴졌으니까.


제출할 시간은 다가오는데, AI로 할까, 스튜디오를 갈까 계속 고민이 되었다. 사람들이 AI로 만들었다는 프로필사진들을 쭉 보는데 계속 보다보니 어쩐지 매끄러운 사진들이 생소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완벽함 속에 부재하는 인간미랄까? AI가 그려낸 프로필은 분명 근사했고, 완벽하게 그려낸 '나'는 있을지 몰라도, 진짜 내가 담기지 않은 사진은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은 특별한 스튜디오를 찾았다. 스튜디오 신청 페이지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있었다.


우리 스튜디오는, 당신의 삶의 박자를 듣고, 그 특별한 박자를 기록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사전질문으로 나의 삶의 박자를 물어보는 항목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답해야 하는 질문치 고는 꽤나 깊고 묵직한 질문이었다. 조금은 어려운 질문에 답을 하고 나선, 지난 주말 스튜디오를 찾아갔다.


나는 당연히, 인사하고 바로 사진을 찍겠거니 했다. 그런데 작가님이 카메라를 들기 전, 나를 앉혀두고 무려 한 시간 동안 인터뷰를 시작했다. 사전질문인 나의 삶의 운율에 대해 깊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인생의 한 단어까지. 작가님은 사진 속 진짜 나를 담기 위해 나와 대화를 나누며 나의 한마디 한마디에 더 집중하는 듯했다. 나라는 사람의 맥락이 사진가에게 전달되는 시간. 그 60분은 10분 만에 결과물을 뱉어 내는 AI프로필에 비하면 지독할 정도로 비효율적인 시간이었지만, 그 비효율적인 시간 덕분에 카메라 앞의 긴장이 조금은 풀렸고,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짜 카메라 셔터 앞에 서는 건 별개의 문제다.) 정해진 미소가 아닌, 대화를 통해 배어 나오는 찰나의 눈빛과 표정, 어쩌면 작가님은 사진을 통해 그 순간들을 놓치지 않으려 했던 게 아닌가 싶다.


대화를 하며, 내가 AI 연구원이라고 하니, 자연스럽게 우리의 이야기는 AI로 흘러갔다. 그리고 내가 스튜디오를 오기 전 AI로 할까 말까 고민했던 순간들을 말씀드리며 사진도 많이 대체되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작가님은 이렇게 답하셨다.


이제 사진의 99%는 AI가 대체할 걸요. 하지만 저는 남은 1%를 어떻게 붙잡아야 할지 찾고 있습니다.


찰나의 대화였지만, 그 대답에 큰 감동을 받았다. 사진작가로서 AI시대를 마주한 솔직한 고백이기도 했고, 동시에 자신의 일의 본질을 놓지 않겠다는 조용한 다짐이기도 했으니까.


모든 촬영이 끝난 후, 노트를 한 권 주셨다. 오늘의 찰나를 꼭 기록으로 남기고, 앞으로 인생의 중요한 순간도 이렇게 써 내려가길 바란다고 말이다.


두 시간 넘게 진행된 촬영 속에서, 나는 단순한 결과물 이상의 것을 얻었다. AI가 몇 초만에 만들어낸 최적의 표정은 아니었을지언정, 한 시간의 대화와 공감이 그 짧은 시간 쌓이며 '진짜 나'의 얼굴을 마주한 것이다.




요즘 AI 업무를 하면서, 난 늘 효율을 먼저 생각한다. 더 빠르게,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나은 결과물을 얻기. 그러나 주말에 내가 만난 비효율은 나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다. 어쩌면 AI 시대에 우리가 붙잡아야 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비효율이 아닌가 싶다.


집에 오는 길, 받아 든 사진 속에는 AI가 절대로 읽어낼 수 없었던 긴 시간 속의 과거, 현재, 미래의 내가 담겨 있었다. 기획자로 살아온 일에 대한 자부, 앞으로 써 내려갈 내 일들에 대한 설렘까지, 그건 데이터의 조합이 아니라 한 시간의 대화가 만들어낸 것이었다.


편리함과 속도가 지배하는 세상에 누군가와 깊게 연결되는 것, 빠르게 흘러가는 것들 속에서 나만의 엇박을 찾아가는 과정. 기술이 우리 삶의 99%를 더 빠르고 완벽하게 메워갈수록 AI가 학습하는 방대한 데이터 속에는 없는 경험이야 말로,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1% 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