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디지털 인간이 되는 이유

빈 그릇에 AI를 담으면, 그냥 AI 일 뿐이다.

by 베러윤
우리의 미래는 AI로 어떻게 될까요?

2024년, 새로운 부서로 옮겼다. 기존에는 신사업과 메타버스, NFT 등 미래기술로 할 수 있는 사업 점검을 했다면, 이제 미래 기술을 연구하고 우리 인간의 삶과 어떻게 연결할지 고민하는 연구직으로. 2024년 내가 이 부서에 처음 왔을 때, 메타버스는 저물고 AI에 대한 미래기술 검토가 제1순위 과제였다. 물론 이전부터 AI는 있었다. 하지만 ChatGPT가 등장하면서 기술을 모르는 일반 사람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며, 판은 완전히 기울었다.


처음 부서에 발령되자마자 국내외 소위 AI 전문가란 전문가는 다 만나 인터뷰 했다. 해외에 있는 미래예측 전문가 분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분들을 만날 때, 마지막엔 항상 공통된 질문을 던졌다.


‘우리의 미래는 AI로 어떻게 될까요?’


근데 모든 분들에게 돌아온 대답은 거의 비슷했다.

공장 자동화, 일자리 대체, 인간을 닮은 로봇 등 우리가 수십 년째 SF영화에서 봐온 장면들이었다. 하나 추가된 것이 있다면 영화 <그녀(HER)>의 한 장면이었다. 노동을 대신하는 기계를 넘어, AI와 인간적인 교류를 나누고 감정의 파동을 공유하는 모습. 기술이 차가운 철제가 아니라, 인간의 가장 내밀한 감정까지 어루만지는 존재로 다가오는 그 낯설고도 서정적인 풍경 말이다.



우리는 모두 동일 선상에 있었다.


이 전까지의 기술의 지각 변동이 특정 계층이나 전문가들의 전유물이었다면 이번엔 달랐다. 수많은 시절을 미래만 연구했던 박사님도, 이제 막 스마트폰을 쥔 초등학생 아이도, 기술의 파도 앞에 선 위치는 같았다. 단순히 인간이 노동을 대신하는 단계가 아니라,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 믿었던 감정까지 학습하며 대답하는 지금. AI는 어느 누구의 관찰자나 소유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이 거대한 지능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라는 낯선 숙제를 동시에 받아 든 셈이다.




맨 처음 ChatGPT를 마주한 날이 기억이 난다.


텅 빈 프롬프트 화면을 보고 있자니,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네이버처럼 검색하면 답을 내주던 방식에 길들여진 내 사고에 마주한 기분이었다. 그동안은 내가 궁금한 키워드를 던지면 나열된 정보 중 하나를 골라내는데 익숙했다. 따로 내가 정교한 질문을 던지지 않아도 여러 나열된 정보를 나만의 방식으로 짜집기 하면 되는 거였다. 하지만 ChatGPT는 달랐다. 내가 질문하지 않으면 그는 대답하지 않았고, 딱 내가 질문한 깊이만큼만 대답해 주었다.


이 창 앞에서, 수십 년을 연구한 박사와 이제 막 AI를 접한 대학생 사이의 격차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누가 더 비싼 데이터베이스를 가졌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본질을 꿰뚫는 질문을 던질 줄 아느냐의 싸움. 그 낯선 출발선 위에서 나는 다시 한번 확신했다. 우리는 모두 동일 선상에 있었다. AI 앞에서 막막했던 건 나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렇게 2년 여가 흐른 지금, AI는 빠르게 발전했고, 눈을 뜨면 온갖 업데이트 소식에 새로운 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AI로 제작

2년 전에 비하면 너무나 많은 것이 업데이트되었다. 초창기 AI는 답답했는데, 지금은 회의 녹음 파일을 넣으면 몇 초 만에 요약이 나온다. 핵심요약, 간략요약, 보고서 요약 등 내가 선택할 수 있으며 To do List까지 짜준다. 그뿐인가, 방대한 자료 정리는 이제 프롬프트 한 줄이면 정리가 된다. 예전에 일주일 씩 걸리던 작업은 몇 분으로 줄었다. 3년 전에 메타버스를 만들고 홍보영상을 만든다고 성우분들을 섭외해서 몇 백씩 주고 녹음한 적이 있었다. 최근에도 비슷하게 음성이 필요했는데, AI로 몇 분이면 뚝딱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한숨, 웃음 등 대본 속 디테일한 부분까지 AI가 알아서 짜준다. 몇 백씩 줄 필요도 없다. 몇만 원, 혹은 몇십이면 우리가 원하는 것을 무한 데로 수정까지 가능하다. 이런 세상이다.


서비스 기획자라 개발 쪽 친구들을 많이 알고 있는데, 최근에 만나서 들었던 이야기 중에 재밌는 부분이 있었다. 회사에서 팀별로 AI 툴을 하나씩 맡아서 코딩을 해보고 매주 팀별 교류회를 하면서 장단점을 나누고 툴별로 결과물을 발표한다고 했다. AI 코딩 툴을 도입했더니 못하던 개발자는 그럭저럭 쓸만해진 개발자가 되었고, 잘하던 개발자는 더 넘사벽이 됐다며 같은 도구를 손에 쥐고 있더라도 결과물의 격차는 꽤 벌어진다는 이야기도 했다.





AI는 인간이 가진 것을 증폭시킬 수 있는 도구다. 빈 그릇에 AI를 부으면, 그냥 AI 결과물이 나온다. 하지만 단단한 사고와 경험이 쌓인 사람에게 같은 AI 도구를 쥐어 준다면, 전혀 다른 폭발력이 나온다. 하지만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다. 나도 요즘은 퇴근 후엔 디지털 인간이 돼보려 노력하고 있다. 제미나이 책, 나노바나나 책 2권을 2월에 끝냈고, 노션 강의도 매주 들으면서 AI와 연동해보려 하고 있다. 이번 달은 바이브 코딩을 해보려고 클로드도 결제해 보았다. 하루에 한 개라도 AI와 결과물을 뽑아내며 무언가 만들어보려고 말이다. 아직 ‘이걸로 뭘 해야겠다’라는 것은 없지만 그냥 지금은 익숙해지는 중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우선 해보는 건 많이 다르니까.



아직 AI가 대중에게 익숙해진 것은 고작 2년이다. 모두가 동일 선상에 선 이 공평한 시대. 정답을 아는 전문가는 없어도, 매일 질문을 던지는 실행하는 사람들은 참 많다. 그것들이 쌓이면 굉장한 폭발력을 낼 것임을 믿는다.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밤 깜빡이는 커서 위에서 조금씩 만들어가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