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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모든 것에는 다 때가 있다.

오늘도 씨를 뿌리는 이유

by 베러윤

난 항상 느리다. 대학원도 남들보다 늦게 갔다. 덕분에 취업도 남들보다 늦었다. 직장에 늦게 들어와 일을 시작했으니 승진도 느렸고, 지금은 결혼도 안 했다. 남들이 말하는 노처녀다. 인생의 모든 게 남들보다 한 발자국씩 느리다.

이게 너무 스트레스였다. 남들보다 느린 내 모습이 항상 마음에 어려움을 주었다. 힘들 때 혼자는 아니었다. 언제나 내가 힘들 때마다 ‘잘 될 거야.’ ‘기도하고 있어.’ ‘꼭 될 거야.’라며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너무 마음이 힘들 때는 이 말들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본인이 안 겪어봤으니까 그래’ ‘내가 아니니까 저렇게 쉽게 얘기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그들은 말로 위로하는 척 나를 가스라이팅 시키려는 것 같았다. 사실은 그런 게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내가 노력한다고 되지 않는 것도 있는 법. 아무리 간절히 바라와도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었다.

내가 생각한 때에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스스로 어두운 힘든 터널을 지났다. 그러다 이제 정말 나도 모르겠다 싶을 때, 내가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 때, 그제야 내가 원하는 것들이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영화처럼 말이다. 흩어져있던 경험과 상황들이 하나하나씩 모아져서 마치 온 우주가 나를 돕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순간들을 되돌아보면 나에겐 항상 적당한 때였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은. 남들보다 느릴지 몰라도 마치 빈 퍼즐조각이 맞춰진 것처럼, 모든 일들이 완성되었다.

그래서 오늘도 내가 낙담만 할 수 없다. 내 눈으로 보기에 내 인생의 모든 것이 느릴지는 몰라도, 아니면 내가 원하는 방법이 아니어도, 분명 때에 따라 이루어질 것을 믿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내 인생에 씨를 뿌린다.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때를 기다리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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