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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니카의 참견 Aug 21. 2020

코로나 때문에 왔습니다.

물론 다 그렇다는 건 절대 아니지만.

 갑자기 쏟아지는 폭우를 뚫고 북쪽을 향해 내처 달려 오늘도 성실한 진료소장은 출근을 했다. 어제 코로나19 선별 진료소 검채채취 요원으로 파견 근무를 하느라 진료소를 온종일 비운 탓에 조금 일찍 나왔다. 선별 진료소 근무 동안 착신해 놓은 전화로 진료 문의 전화가 적잖게 왔었다. 하루 비웠다고 공연히 쿰쿰한 냄새도 나는 것 같다. 근무복을 갈아 입고 청소를 시작하자마자 전화가 울린다.

"진료소장님 나오셨어요? 약 타러 가려는데."

"네, 지금 오시면 됩니다."

"어제는 온종일 안계시던데"

"네, 코로나 선별 진료소 파견근무 나갔었습니다."

"그렇다고 여기를 그렇게 온종일 비우면 지역 사람들은 어쩌라는 겁니까?"

"실례지만 전화하신 분은 누구실까요?"

"알았어요, 지금 갈게요."

뚝!


 에효......하고픈 말이 많았는데 뚝!하고 전화를 끊으신다. 뉴스에서 온 나라가 광복절 집회와 성북구 사랑**교회발 등 코로나 확진으로 들끓어도 내가 약 타는 날에 약을 못 타면 일단 화가 나시는 모양이다. 급 피로가 몰려온다. 전화를 끊자마자 오토바이를 타고 오신 분은 올해 딱 65세가 되어 경로해지로 무료로 혈압약을 드시는 L님이다.

"아니, 군에는 직원이 없어요? 왜 소장님이 여기 놔두고 거기 가서 근무를 해야 해요? 여기 사람들 불편한 것은 생각들 안하나?"

"어제 헛걸음하셔서 많이 불편하셨군요? 죄송합니다. 그런데 지금 워낙 시국이 엄중하고 우리 지역도 확진자가 나온 상황이라 조금 심각한 건 이해하시죠? 저희야 명령에 의해서 파견되는 것이니 제 선택도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한 달에 한 번 꼴로 나가니 조금 이해해 주시면 좋죠."

"나라가 잘못한 걸 왜 우리같은 힘 없는 국민이 당해야 하는지 원....."

아....나라가 잘못했다니...

눈물이 날 것 같다. 어디서 부터 풀어야 할 지 알 수 없는 '엉킨 실타래 같은 세대'여..


 어제 코로나19 선별 진료소 근무를 나가면서 걱정이 앞섰었다. 우리 지역에서도 광복절에 광화문 집회에 나간 사람들과 성북구 사랑**교회 신도가 적잖다는 것이 알려졌고 지난 광복절 집회 이후 주말에는 용인에서 방문한 가족에 의한 확진자가 나오는 바람에 선별 진료소 방문자가 하루 백여 명을 넘기도 했다니 말이다. 전날 근무일지를 보니 23명을 검채했다고 쓰여 있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방호복을 최소한 20번 이상 입고 벗었다는 얘기다. 덥고 습한 날씨 탓에 방호복을 입고 있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다. 방호복을 입는 순간 온몸에 땀이 줄줄줄 흐르기 시작하고, 두툼한 마스크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숨이 막히며, 고글 때문에 눈앞이 잘 안 보인다. 쉴 틈 없이 반복해서 그걸 입고 벗고 하다보면 정신을 붙들고 있기도 힘들다.  일단 원칙적으로 보건소에서의 코로나19 검사는 무료이다. 하지만 그 대상자가 명시되어 있다. 유증상자, 직접 또는 간접 접촉자, 동선이 겹치는 사람으로  개인적으로 연락을 받은 사람들 이외에는 일반 병원으로 가서 유료 검사를 받아야 한다.


 근무가 시작되는 9시가 채 되기도 전에 오신 첫 방문자가 내가 그 '엉킨 실타래 같은 세대'라고 표현하는 부부였다. '집회 참가는 하지 않았고 광화문 근처를 지나갔다'고 하시며 혹시 몰라 검사를 받으러 왔다고 한다. 검사 대상의 원칙을 이야기 해 드리고 정확하게 집회 참가 여부를 물으니 아니라고 강하게 부인하신다. 발열 검사가 정상이니 외출 자제하시고 마스크 착용 잘 하시고 집에서 대기하시라고 알려 드렸지만 차마 자릴 뜨지 못하고 재차 물으신다. 역학조사 담당자가 차분하고 친절하게 안내해 드렸고 마지 못해 자리를 뜨셨다. 발열 증상자로 어린이 둘과 공익근무한다는 청년을 검채하고 빙 돌아가며 온몸을 소독한 후 방호복을 벗었다. 이미 겉옷까지 푹 젖었다. 머리도 산발이다.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혼자 웃음이 터진다.

"나 조선시대 사람 같아"

"네? 조선시대 누구요?"

"망나니 아니면 추노?"

함께 근무하는 역학 조사 담당 직원이 박장대소를 한다. 그러나 그 웃음이 채 그치기도 전에 끊이지 않는 방문자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우리 역학 조사 담당 직원의 얼굴에 점점 웃음기가 사라진다.

'광화문 옆을 지나가셨다'

'광화문 근처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셨다'

'광화문 전철역에서 내렸다'

'집회 참석은 하지 않았고 그 근처를 지나간 적이 있다'

'집회 참석 때문에 간 건 아니고 세종문화회관에 공연 보러'

'아이들이 하도 성화를 해서 할 수 없이 검사를 받으러 왔다' 등등....

비가 쏟아지던 광복절 온 종일 그들은 모두 왜 이 먼 시골에서 광화문 근처를 지났을까. 집회 예고는 이미 한 달전부터 광고되고 있었는데.(지역 곳곳에 태극기를 들고 광화문으로 모이라는 광고가 붙어 있었다!) 어쨌든 집회 석자가 아니고 사랑**교회 신도도 아니시면 검사 대상자도 아니시고 발열 증상도 없으시니 그냥 집으로 가시면 된다고 안내를 하는 직원도 지치기 시작한다. 심지어 검사를 해달라고 우기시다가 그러면 '여기 왔다 갔다'는 증명서 같은 거라도 떼어 달라고 한다. '아이들이 꼭 검사 받으라'고 했다면서 그거라도 보여줘야 한다고 아쉬워 하신다. 그렇게 나는 어제 하루 방호복을 여섯 번 입었다벗었다 하며 멀미가 나도록 땀을 쏟아내면서 그 '엉킨 실타래 같은 세대'들의 말과 행동을 가까이에서 지켜 보았다.


 물론 청년들도 더러 방문했다. 그들은 도시에 다녀온 적이 있거나 열감이 있고 설사를 하는 등의 증상 때문에 혹시나 하여 방문했다가 발열 체크 후 정상이어서 귀가 조치가 안내되면 한결같이 '아! 다행이다, 정말 감사합니다'라며 안도하고 기뻐하며 돌아가거나 열이 나서 검채를 하더라도 하루 정도 걸리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자가격리해야 하는 것을 어떻게 기다릴까 걱정하며 돌아간다. 하지만 광화문 근처를 지나갔다는 6,70대 분들은 귀가 하시라고 안내를 하면 화를 내며 '검사를 받게 해달라'고 떼를 쓰신다. 역학 조사 담당 직원은 더욱 더 지쳐 가고 따라서 어조도 올라가지만 애써 웃으며 설명을 하면 '웃음이 나오냐'고 화를 내시고 '열도 없으시고 대상자가 아니시다'라고 하면 '책임 질 거냐'고 또 화를 내신다. 그런데 그들이 한결같이 걱정하는 것은 다름아닌 '가족'들이다. '나는 상관 없지만 가족들에게 피해가 가면 안되니까'라고 하신다. 그들에게 '가족'이란 무엇일까. 검사를 받지 않으려고 서울은 가지도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거나 검사를 거부하다가도 자식들이 성화를 대면 못이기고 검사를 받으러 오신다. 지난 연휴에 사랑**교회 신도로 확진을 받으신 70대 어머니도 교회에서 문자로 '검사 받지 말라'고 하였으나 자녀들이 난리를 쳐 하는 수 없이 검사를 받으시고 확진되셨다.


 서너 분의 어르신들이 검사를 해달라고 버티고 서서 가지 않으시는 와중에 흰 셔츠를 말끔하게 입으신 어르신이 조용히 다가와 대기용 의자에 점잖게 앉으신다. 한 마디도 하지 않으시고 성화를 대며 떼 쓰시는 어르신들을 지켜 보시다가 차례가 되어 '어떻게 오셨냐'고 했더니, 조용하게 '집회 참가자입니다.'라고 속삭이신다. 세상 보기 드물게 점잖으시고 예의바르시다. '그저 사진만 찍고 같이 김밥만 먹었다'는 분은 역학 조사를 하는 가운데에도 우리 직원에게 자신이 집회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나는 매 집회마다 꼭 나간다'며 '찐'임을 자랑한다. 검채채취실은 에어로졸 감염을 우려하여 선풍기도 에에컨도 없다. 찐 참가자이신 어르신은 헐떡거리는 내게 연거푸 '더운데 고생이 많으시다'고 매너 가득한 어조로 인사를 한다. 가느다란 검사팁을 코에 넣으면서 공연히 더더 깊숙히 코피가 나도록 찌르고 싶은 은밀한 심술은 비밀이다.......


 보고 있으면 가슴이 답답해지는 시작도 끝도 보이지 않는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  '신서유기'라는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고깔의 뾰족한 구멍을 통해 보물찾기 게임을 하던 출연자들 생각이 난다. 일명 베이비붐 세대로 대표되는 그 분들은 뼈에 사무치게 국민교육헌장과 국기에 대한 맹세, 그리고 반공을 교육 받고 어른이 되었고 가난과 가족 부양의 무거운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자수성가하여 내 자식들에게 가난만은 물려 주지 않겠다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스스로를 위한 그 어떤 기쁨도 행복도 도모해 보지 못한 채 오직 생계를 위해 치열하게 생과 사의 외줄을 타며 6, 70년 평생을 살아왔으리라. 군복을 물들인 교복 한 벌로 삼 년으로 버티며 가까스로 학교를 졸업하고 어른이 된 그 애국시민들. 80대의 내 아버지 엄마는 못 배워서 무식해서 그렇다고 스스로를 변호하며 우기셨다면 그 바로 아래인 그분들은본인이 경험한 산전수전을 통해 모르는 것이 없는 만물박사가 되었다. 그러나 산전수전의 그 주관적인 경험이라는 것이 진리가 되기 어려우며 배움의 시작으로 첫 발을 들인 컴퓨터와 그 산물인 YOU T***에서 보고 들은 타인의 경험을 통해 쌓은 지식이라는 것은 혹시 고깔을 얼굴에 쓰고 잔디밭에 흩어진 보물을 찾으려고 허우적대는 그 예능 출연자들이 고깔 구멍을 통해 보는땅에서 어렵게 찾아낸 종이쪽지 메세지처럼 사실 그저 허우적대기만 할 뿐 정작 손에 잡히지 않는 허상이요 망상은 아닐까. 고깔을 얼굴에 쓰고 엎드려 가까스로 눈으로 찾아내었지만 보이는 것을 도무지 잡을 수 없어 허공에다 손을 허우적대는 출연자들을 보며 그 어리석음을 구경하는 우리는 얼마나 빼꼽이 빠지게 웃었던가.....


 오후 7시 선별 진료소 근무가 마감되기 직전에 방문하신 부부는 미처 합의를 하지 않고 오신 듯, 남편은 '집회 참석'이라고 하고 아내는 '집회 참석은 무슨!! 그냥 뒤에서 왔다갔다만 하고 구경만 하다 그냥 왔다'고 하셨다. 역학 조사 담당 직원이 '정확하게' 말씀해 달라고 하니 화를 내신다. '왜 정확하게 말하라고 하는가'라며 기록을 남가는가, 문제가 되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하시는 등 예민하게 반응하시는 아내. 남편은 쿨하고 심플하게 '집회 참석'이라고 못을 박으신다. 막상 정식 접수를 시작하자니 주소지가 우리 지역이 아니다. '주소지 관할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으셔야 한다고 하니 '주소만 다르지 사는 곳은 이 지역인데 왜 안되냐'고 화를 내신다.

아.....정말로 울분으로 가득한 세대로다......

어쨌든 '끝까지 평정을 유지하며 친절하게'(역학 조사 담당자는 스스로 그렇다고 말했지만 내가 보기엔 점점 고조되는 언성에 불안불안 했다) 안내를 마치고 우리의 선별 진료소 근무는 무사히 끝났다. 인간의 고통은 번뇌를 부른다. 그렇다. 코로나19라는 희대의 전염병이 수많은 이들을 고통으로 내몰고 그 고통은 너무나 쉽게 인간이 가진 민낯이 드러난다. 인구 6만의 이 작은 커뮤니티에 '자칭 보수주의자'들이 그렇게도 많았던가! 또는 3000번 버스를 두 시간 타고 서울로 가서 다시 전철을 갈아타가며 가야 도착하는 성북구 소재의 교회에 출석하는 신도가 그렇게 많다는 사실에 놀란다. 심지어는 평소 잘 안다고 생각했던 이들이 사실은 그 집단의 일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내가 안다고 하던 것들에 대해 의심이 시작되는 혼란에 심신이 모두 지친다. 이 사회의 골 깊은 갈등과 분열을 어찌 하오리까...... 덥고 습한 하루 온종일 함께 고생한 역학 조사 담당 직원과 함께 늦은 저녁을 먹으며 '그러나저러나 어쨌든 우리들의 이번 달 선별 진료소 근무는 겪고 지나갔다. 앞으로 몇 번을 더 해야 이 고생이 끝날까'하는 따위의 대화로 회포는 풀리고 그렇게 코로나19 선별 진료소의 하루는 마무리 되었다. 물론 다 그렇다는 건 절대 아니지만, 코로나19를 통해 보인 특정 세대에 대한 안타까움과 안쓰러움만 마음 한켠에 급체되어 얹힌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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