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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니카의 참견 Aug 11. 2020

구렁이 담 넘는 시골 동네 스캔들

진료소장은 오늘도 또 속았다.

 두어 달 전이었다. 머리가 아프다고 오신 H님은 70대 초반인데 진찰하다 보니 머리 한쪽이 불룩했다. 반팔 셔츠와 팔토시 사이 틈으로 멍도 보였다.

"머리에 혹도 나고 팔에 멍도 드셨나 봐요. 어디에 부딪치셨나요?"

조심스레 에둘러 물었다.

"소장님은 딱 보면 다 아시나 봐요?"

"멍이 이 정도면 누가 봐도 다 알죠"

"간 밤에 우리 영감이 '이년 죽으라'라고 하면서 나를 냉장고 안에 밀어 넣었시다. 그걸 헤어 나오느라 기를 쓰다가 냉장고 문짝에 냅다 부딪쳤더니 머리가 아파 잠도 못 잤어요."

놀라서 이유를 묻는 내게 숨김없이 쏟아내는 이야기인즉, 남편이 요즘 바람이 났는데 술만 먹고 들어오면 때린다고 했다. 게다가 바람난 상대가 같은 동네 사람이라니 더 기가 막혔다. 이 정도면 가정 폭력 사건이니 병원에 가서 일단 진료를 받으시고 진단서를 끊어 놓으시라고 말씀드리고 혹시 다음에 또 때리시면 경찰에 신고도 하고 빨리 몸을 피해 달아나고 자녀들에게 알리라고 조언을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폭력만은 안된다고 덧붙이면서. H님은 '소장님한테라도 털어놓으니 속이 다 후련하다'라고 하셨고 나는 언제든지 속상하시면 오시라고 했다. 


 이렇게 작은 커뮤니티에서 일하다 보면 딱히 알고 싶지 않아도 이렇게 저절로 스캔들을 먼저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워낙 오랜 시간을 익명성이 없는 농촌에서 일하다 보니 불륜 같은 종류의 스캔들도 참 많이 목격하였다. 시골의 스캔들도 부부의 세계여서 '이태오'도 있고 '지선우'도 있고 '설명숙'도 있고 '준영이'도 있고 그렇다! 나는 어쩌다 보니 그런 사건마다 본의 아니게 그들의 대나무 밭이 되어 주어야 했다. 소문이 무서운 좁은 동네이니 답답한 심정을 차마 아무에게나 털어놓기 힘들 때 그들은 나를 찾아와 하소연하곤 한다. H님도 실은 예전 다른 모두들처럼 다친 머리가 아파서가 아니라 자신의 처지를 털어놓고 하소연하고 남편의 악행을 고발할 상대가 필요했던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H님의 남편과 바람이 났다고 지목된 상대 어머니는 도무지 납득이 안 간다. 나이도 영감님보다 훨씬 더 많고 딱히 여인으로서의 섹시한 매력이 남아 있지 않으신 정말로 꼬부랑 할머니, 인 것은 그저 나의 편견일까....라고 생각하면서 비밀을 지켜야 하는 직업상의 의무로 누구에게도 말 못 하고 혼자 걱정하고 혼자 슬퍼하면서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후로도 두어 번, H님은 부부싸움만 하면 진료소를 찾아오셨다. 매번 비숫한 패턴이었고 한 번은 속이 쓰려서, 한 번은 잠이 안 오고 식욕이 없어서 오셨지만 결론은 또 남편이 바람난 이야기이다. 심지어 '상대방이 나이도 나보다 훨씬 더 많고 얼굴도 얽었는데 도대체 어디가 그렇게 좋으냐'고했더니 '애교가 많다'며 '너도 애교 좀 부려봐라'라고 했다는 이야기며, '그쪽에 가서 자고 와서 그런지 어느 날부터 내 곁엘 안 온다'는 이야기까지 내게 쏟아 내고 가셨다. 소화불량, 두통에 심지어 불면증까지 왔다고 하시니, 도시에 사는 아드님 댁에 가서 며칠 지내다 오시라고 권했다. '서로 안 보면 속이나 좀 편할까요?' 하셨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갔는데 도시에 사는 H님의 며느리가 내게 전화를 했다. '어머니가 저희 집에 오셨는데 갑자기 오시느라 혈압약을 안 가지고 오셨으니 처방 내용을 알려 달라'기에 드시는 혈압약 이름과 용량을 알려드리고 나서 조심스럽게 신경정신과 진료를 권했다. 우울증이 의심된다고 하니 다행히 며느리는 어느 정도 어머니의 상황을 알고 있는 듯 호의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런데 때 마침 그날 오후 같은 교회에 다니시는 M님이 오셨다.


 M님으로 말하자면, 아랫말 대장이시고 작년 이곳에 부임하던 날 바로 그날 오후에 '내가 일주일 전 허리 디스크 시술을 받았는데 너무 아파서 그러니 집에 와서 진통제 주사 좀 놓아 달라', '왕진은 불법이다', '동네 보건소에서 그 정도도 편리를 봐줄 수 없느냐'하는 것으로 언성을 높이시며 불편한 통화가 오고 가고 결국은 교회 목사님께 부탁하여 교회 차를 타고 목사님 도움으로 진료소에 오셨다가 제일 먼저 친해진 어머니이다. 막상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서로가 화끈하게 대화가 통하는 성격이었고 그 이후로 몇 번 김치를 담갔다고 가지고 오시거나 야채며 열매들을 오실 때마다 가지고 오신다. M님은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H님에 관한 소식을 내게 전해 주셨다.

" 소장님도 H 얘기 들었어? 지난 주일에 술 먹고 들어온 영감한테 또 달려들다가 엄청 맞았나 봐. 교회 예배에 왔는데 팔이며 다리가 온통 시커멓게 멍이 들었던 걸. 그런데 H가 경찰을 불렀나 봐. 경찰이 왔다 가고 그 마누라는 집을 나갔다는데. 아들네로 갔는지? 아마 아들이 데리고 정신과를 갔었나 봐. 염마한테 우울증 검사받으러 가자고 하고 데려갔대. 근데 알고 보니 '의부증'이라나봐. 사실은 그 영감이 발기부전이 있대, 그래서 비아**를 먹었어도 그게 안되더래. 그런 걸 저 위에 K 하고 바람 나서 거기서 하고 와서 자기하고는 안되더라고 온 동네 지가 다 떠들고 다니고... 매 맞을 짓을 한 거지. 그래도 그 영감이 잘못은 했지. 봄에 마을회관에서 잔치할 때 술이 취해서 K의 손등에 뽀뽀를 하고 그랬다는구먼. K가 주책인 것도 맞지..."

"그래도 사람을 때리는 건 안 되는 거죠. 그리고 K님도 아무 잘못 없으면 그런 식으로 말하시면 안돼요. 요즘 TV에 나오잖아요. 2차 가해라고 들어 보셨죠? 2차 가해도 신고하면 벌 받을 수 있어요."

"그거야 그렇지만...... 아무튼 그것도 그렇지만 사실 그 집은 이상하게 전 재산이 다 H 앞으로 되어 있다는구먼. H가 이혼하자고 하면 그 영감은 맨 몸으로 나가게 되어 있다네. 이 나이에 알거지 되면 어떻게 살려고 사람을 때려. 살살 잘 구슬려서 살아야지....."  

그저 씁쓸하게 웃는 나.......


 내 생각을 말하지는 못했다. H님이 사실은 의부증이라니..... 게다가 어떻게 온 동네 사람들이 죄다 그 영감님 발기부전을 알고 있거나 전 재산이 어머니 앞으로 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걸까.... 결국 본인이 이 사람 저 사람 붙들고 다 얘기를 했다는 거렸다. 마치 톰 크루즈 주연의 미션 임파서블처럼 나는 목숨을 걸고 지키려고 한 비밀을 적들은 이미 죄다 알고 있었던 느낌이랄까. 으휴~ 또 속았네. 그나저나 K님은 이런 사실을 알고 계시기나 할까?


 아니나 다를까 지난주 금요일 아침. K님이 어지럽고 메슥거리고 기운이 없고 가슴이 벌렁거린다고 호소하시며 찾아오셨다. 허리가 꼬부라졌는데 휘청거리며 유난히 더 걸음을 못 걸으신다. 나이가 80세가 넘으셨다. 다시 생각해도 기가 막히다. 차마 아는 척은 못하고 '그냥 아프신 것 같지 않은데 뭔가 충격이라도 받으셨나요?'하고 물었다.

"말하자면 긴데....."

하며 그동안의 스캔들에 연루된 자신의 이야기를 하신다. 결국 두어 달 전부터 동네가 다 아는 스캔들을 정작 장본인인 K님이 인지한 것은 불과 일주일 전이란다.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불륜 상대가 된 것도 분한데 더 큰 충격은 절친들의 배신이라며 눈물을 보이셨다.

"그까짓 거 H는 병이라잖아. 병이라는 어떡해. 의처증인가 뭔가라며? 나는 L 하고 J가 더 괘씸해. 두 사람 다 이 동네에서 나하고 제일 친한 여자들이야. 그런 일이 있으면 환경지킴이 하느라 매일 만나는데, 이러 이런 일이 있다, 하고 나한테 먼저 얘기를 해주는 것이 경우에 맞는 거잖아. 어떻게 지들이 더 수군거리고 나를 따돌리고 둘이서만 간식 가지고 와서 먹고 읍에도 지들끼리 갔다 오고.... 나는 진짜로 너무너무 서운하고 속상하고 분해서 잠을 몇칠을 못 잤어....."  

그랬다. 시골에서도 악플이 문제다. 그렇게 절친이라면 '그 사람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고 증언해줘야 마땅한데 오히려 한 술 더 떠 사실을 왜곡하고 확대 해석해서 퍼뜨렸다. L과 J님은 'K가 꼬리를 친 것 아닐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는 식으로 피해자를 두 번 고통스럽게 했다.

"어머니는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H는 병이라며. 나는 H는 어디 갔든 간에 L 하고 J는 너무 괘씸해서 혼내주고 싶어. 그래서 이따가 저녁 곁에 L 집에 가서 따질 작정이야. 지가 어떻게 나한테 그래. L의 아들하고 우리 아들하고는 또 친구라고. 세상 사람 다 뭐라고 해도 L은 나를 감싸줘야 하는 사람이지..... 내가 평생을 산 이 동네에서 고개를 못 들고 다녀...."

울며 이야기하는 어머니에게 뭐라 할 말이 없었다.


 항상 그렇다. 바람을 피운 남자는 뻔뻔스럽게 고개를 들고 다니고, 바람피운 남자의 아내는 절망과 고통으로 괴로워하곤 한다. 아니면 '카더라'하는 불미스러운 소문으로 무고를 뒤집어쓴 스캔들 상대라는 여인은 또 동네 창피해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기도 한다. 헛소문의 주인공은 짓지 않은 죄를 짊어지고 죄인이 되어 아파하고 숨 죽이고 살아야 한다. 주말 내내 마음이 무겁고 그 딱한 마음에 자꾸만 K님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혹시 모를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월요일에 출근하면 자녀들 전화번호도 따놓고 우선 방문 대상자로 등록을 해 놓고 자주 가정방문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비가 쉬지 않고 내린 주말이 지나고 오늘 아침 출근길. 버스 정류장 맞은편 솔밭에 벌써 일을 마치고 옹기종기 둘러앉아 간식을 드시는 '환경 지킴이' 어머니들의 형광 조끼가 눈에 들어왔다. 공연히 불륜 스캔들에 무고하게 휘말렸던 K님,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던 J님, 그러게 왜 손등에 뽀뽀는 하냐던 M님, 가장 절친이면서도 의심한 L님까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평온한 얼굴로 환담을 나누며 종이컵에 든 커피를 기울이고 있었다!

'헐........'

진료소 현관 보안 시스템을 종료시키면서 마음이 어수선하다. 또 나 혼자 심각했다. 매번 그러면서도 또 속았다..... 시골은 그렇다. 다신 안 볼 듯이 물고 뜯고 싸워도 하루 지나면 그런 일이 언제 있었느냐는 듯이 여전히 얘기하고 웃고 일상을 살아간다. 그래도 나는 이제는 안다. 마음속으로는 피눈물을 흘리고 분한 마음에 잠을 못 이루더라도 겉으로는 아무 일 없었던 듯 그저 구렁이 담 넘어가듯 어물쩡 넘어가야 한다. 평생 살아온 마을이고 평생 서로 이웃지간으로 살아온 사람들이다. 이 작은 세계가 전부인 이분들에겐 이 세계 이외는 아는 바가 없다. 분해도 눈물 한 번, 침 한 번 꿀꺽 삼키고 감정을 다스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피해자고 뭐고 무조건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비난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과는커녕 시시비비를 가리지도 못한 채 구렁이 담 넘어가야 한다. 안 그럴 거면 이사 가야 하기 때문이다. 자식들이 알면 싸움이 대를 이어질까 봐 쉬쉬하며 그렇게 없던 일로 만들어 버린다.


 H님이 전화를 하셨다.

'소장님, 나한테 전화하셨어?'

'아, 아뇨.... 어디세요?'

'나 어제 일요일에 집에 왔어요. 헤헤헤......'

그냥 나는 진료소장이고 그런 말 들어 본 적도 없는 것처럼 오시는 분마다 반갑게 인사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근황을 물어야 한다. 시골의 사건은 그렇게 싱겁게 흐지부지 되어버리곤 한다. 진료소장은 오늘도 먼 산만 바라본다. 오늘처럼 씁쓸한 날은 그저 커피 한 잔 들고 돌아서면 된다. 진료실 앞 먼 산 뷰가 좋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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