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영상 편지

엄마 직무 만료

by 베로니카의 참견

"내가 싫어서 가는 게 아니고 사람이 없어서 적적하고 눈은 안 보이고 그래서 가는 거니까 아무도 서운하지 말고 잘 있어 덜, 자주 서로 보자........... 이만 줄인다."

동생이 찍고 있는 영상 속에서, 엄마는 내가 사드린 외출복을 입고 카메라를 보며 부드러운 표정과 안정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요양원 입소날 아침,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 준비하시고 앉아계시던 엄마가 하시는 말씀을 모두에게 들려주려고 동생이 '다시 말씀하시라'라고 하며 영상으로 남겼다고 했다. 당뇨 합병증으로 실명이 되었고, 귀도 보청기가 아니면 전혀 듣지 못하고, 파킨슨병으로 손이 심하게 떨리며 오래된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과 더불어 인지저하 초기 증상을 가지고 있는 엄마를, 동생이 8년 간 돌보아 왔다. 사실 동생이 지난 8년을 엄마를 돌보아 왔다는 것은, 나머지 네 명의 자녀들에겐 고맙고도 미안한 일이었다. 엄마를 전적으로 돌보며 같이 사는 동생 덕분에 나 역시 편했고 덜 신경 썼었다. 그러나 한 달 전 엄마를 우리 집에서 며칠 함께 지내보니 생각보다 엄마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동생에겐 차마 말 못 했지만 '똥 누고 밑도' 닦아 드려야 했던 상황이 내겐 착잡했다. 눈이 안 보인다는 것은 그 어떤 장애보다 힘들었다. 그날 이후로 매일 아침마다 출근길에 들러 엄마의 아침 루틴을 도왔고 그 사이 동생은 출근 준비를 했었다.


병원 침대를 렌털하여 심부전으로 숨이 찬 엄마의 증상에 높낮이가 조절되는 환자용 침대를 들여놓아 보아도, 자다가 일어나서 화장실까지 가기가 힘들다는 엄마를 위해 의자 변기를 들여놓아도, 하루하루 눈에 보이게 퇴행되는 엄마의 기능을 대신할 수 없었던 동생의 스트레스. 단 일 분도 혼자 있을 수 없는 엄마의 상황은 심각했다. 그러나 자신의 장애를, 자신의 불능을 인정하며 도움을 청하는 대신, 혼자 자신을 방치한다며 퇴근하고 부랴부랴 달려온 동생에게 화를 내고 투정을 부리는 엄마는 동생을 매일 임계점에 다다르게 하고 있었다.


그날 아침은, 전날 밤 사이 몇 번을 부르는 엄마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잔 동생이 중요한 직장 업무에 큰 지장을 받았다면서, 엄마를 거칠게 다그치고 있었다. 동생은 '엄마의 거친 불평, 엄마의 잔뜩 찡그리는 표정, 정성껏 준비한 식사를 밀어내는 엄마의 손을 보며 심장이 벌렁거리고 이명이 생기고 가슴이 터질 것처럼 아파서 심장병이 생긴 것 같다'라고 했고, '엄마보다 내가 더 먼저 죽을 수도 있겠다'라고 말하는 동생 옆에서 나는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엄마에게, '그렇게 얘를 코너로 몰면 결국 얘도 엄마랑 같이 못살고 이사를 가겠다고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엄마는 혼자는 못 살아가니 어떻게 하실 거냐'라고 물었다. 아니, 협박이고 으름장이었다. 그런 이삼일 후에 엄마가 갑자기 나를 호출했다. '요양원 알아보라'는 곳이었다. 그리고 단 사흘 만에 엄마의 요양원 입소가 결정되었다. 엄마는 '아무도 서운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씩씩하게 요양원으로 입소하셨다. 하필 엄마의 요양원 입소 날은 내가 지역 축제 의료지원 근무가 있어서 함께 동행하지 못했다. 동생은 얼마나 눈물바람을 했을까. 하지만 생각보다 엄마는 그냥 담담하게 적응 잘하고 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고 전했다. 다행히도 화장실 바로 옆 자리로 배정을 받았고 담당 요양보호사님도 좋은 분인 것 같다고도 전했다.


엄마는 하다못해 텔레비전 리모컨 조작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본인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은 숨기고 있었지만 이미 마음속으로 깊이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오전에 두어 시간, 오후에 두어 시간 정도 혼자 있어야 하는 것이 외롭다는 이유로 집을 포기하고 요양원 입소를 자청할 노인이 어디 있을까. 그럼에도 엄마는 누군가 수족처럼 자신을 돌보아야 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요양원을 선택했다. 자식을 위해 평생 희생하고 헌신하며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셨던 엄마는 자신을 돌보는 일에 한계가 오는 자식을 위해서 스스로를 자식에게서 떼어 놓는 마지막 결단으로 엄마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엄마 노릇을 하셨던 것은 아닐까. 그것으로써 엄마의 '엄마 직무'는 만료를 맞이했다. 평생을 자식들 곁 가까이에서 둥지를 지키며 기쁨과 슬픔과 분노와 온갖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고 더하며 엄마 자리를 굳건히 지키셨던 엄마는 자식에게서 돌봄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는 희생을 선택하셨으리라. '싫어서 가는 게 아니라'는 말로 우리들을 위로하고 마음 편하게 해주는 것까지 더해 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