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한의사가 되려는 K선생에게
K 선생님, 훌쩍 지나버린 지난 삼 년이 선생님에겐 자신을 성장시키는 귀한 시간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물론 그렇겠죠? 오늘 저녁 초대는 뜻밖의 감동입니다. 이제껏 수많은 공보의들을 거쳤어도 전역한다고 밥 사고 나간 공보의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습니다.
삼 년 전 백팩을 메고 양복을 입고 처음 만난 선생님의 앳된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날씨가 더웠고, 양복이 더워 보였고, 밥을 먹을 때조차 가방을 절대 등에서 내려놓지 않았고, 우리는 다 함께 마을 경로당에서 뷔페로 차린 점심을 먹었었지요. 그것조차 추억이 되었네요. 선생님은 명절마다 내게 선물했고, 직원이 상을 당했을 때 직접 조문도 하였었지요.(대체로 공중보건의사로 복무를 나온 이들은 경조사를 챙기지 않는 편이어서 놀랐어요.)
이제 펼쳐질 선생님의 시간을 상상해 봅니다. 저는 가끔 인생이 ‘젠가 게임’과 비슷하단 생각을 합니다. [참고로 Jenga는 스와힐리어로 '쌓아 올리다'라는 뜻이고 발매 전 이름은 '타코라디 브릭스'로 나무 블록을 처음 주문했던 가나의 항구도시 이름을 땄다고 하더라고요] 그야말로 ‘쌓아 올리는 것이 인생이다.’라고, 생각할 때 선생님은 이제껏 성실하게 차근차근 노력으로 쌓아 올리는 시간을 보냈다면, 이제는 진짜 게임이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요? 젠가는 알다시피 한 개씩 빼내면서 허물어뜨리지! 않아야 성공하는 게임이지요.
저로 말하면, 제가 이십 대 중반 사회 초년생으로서 까지 쌓아 올린 젠가 중 가장 먼저 빼내야 할 것은 자존심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님, 학교 선생님, 친구들, 성당 교인 등등 늘 칭찬받고 격려받고 응원받고 호의로만 겪었던 사회에서 벗어나 더 큰 세상, 동등하게 경쟁하고 타인에게서 재화를 얻어야 하는 인생에서, 자존심은 나를 지키는 마음이 아니라 자존심만 내세우는 그것은 오히려 나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얇고 초라하여 거추장스럽기만 한 감정일 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지키고 갖추어야 할 막대는, 아주 단단한 ‘인’. 마음의 심지, 씨앗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세우고 다지고 지키기로 결심한 그것이 하나 이상은 있어야 하는데, 선생님처럼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인’이 없으면 수시로 변화하는 시류에 휩쓸리고, 세상의 유행에 휘둘리며 남의 그것을 모방하고 따라만 다니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곤 하더군요.
두 번째로 빼내야 할 젠가 막대기는, 허황한 꿈, 팽창된 자아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새내기들, 오랫동안 쌓고 모은 지식과 지혜가 가득하여 누구보다 스스로 똑똑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연륜과 경험에서 얻는 지혜가 없으면, 허황한 사람이 되곤 하는 것을 보았어요. 혹시나 지금 생각으로 부모님 도움을 받아 크게 한의원을 차리고 직원들을 가득 모아 스스로 자신이 뭐 된 듯한 착각에 빠지고 자신이 뭐든 마음만 먹으면 되고 싶은 건 다 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하진 않는 거죠?
세 번째로 빼야 하는 막대기는, 가치 없는 대상에 대해 맺고 지키는 의리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나는 의리를 지닌 사람인가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신의는 내가 살아가는 삶에서 나를 지켜 줄 누군가, 나를 성장시킬 그 무엇을 만드는 중요한 덕목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그 대상이 엉뚱한 것, 엉뚱한 사람이라면, 다 같이 죽을 수도 있는 것이 의리이니 사람도, 사물도 보는 눈이 있어야 자신을 걸어도 가치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 보는 눈은 AI도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연륜과 경험에서 얻어지는 지혜니까요.
네 번째는, 세상과 타인에 대해 가혹하게 하는 마음입니다. 곧고 바르게 살겠다는 가치를 품지 않은 사람이 선생님처럼 공부를 많이 하면 인정사정없이 원칙과 법으로 판단하고 가혹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옛날 공안 검사들이나 최근까지 문제가 된 특수부 검사들을 생각하면, 공부를 많이 했다는 이들이 왜곡된 가치를 본인들 스스로 세운 기준으로 삼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가혹하게 해를 끼치고 소중한 것들을 빼앗는 일에 가차 없었던지 생각한다면 옳게 곧고 바른 마음가짐은 자신과 세상을 살리는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다섯 번째 빼내야 할 막대기는, 용기를 빙자한 난폭함이 아닐까 합니다. 배운 바가 없는 사람들은 용감하게 산답시고 타인과 세상을 향해 폭력을 행사합니다. 깡패들이 그렇죠. 하지만 많이 배웠다는 사람들은, 용기를 내지 않습니다. 자신이 쌓은 젠가를 무너뜨리기가 두렵죠. 계산하고 점치고 협상합니다. 비겁하게 숨거나 변명하고 보호막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내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를 위해 투쟁하지 않는다면, 결국 남의 젠가도, 내 젠가도 무너집니다. 세상 이치가 그렇더라고요.
여섯 번째는 무모함입니다. 굳센 의지가 인생에 속도와 에너지를 준다면 배움이 그 에너지의 원료가 되겠지요. 누가 뭐라고 해도 내가 세운 의지를 지속적으로 지치지 않고 앞으로 나가는 굳건함은 무엇보다 중요한 인생의 수단입니다. 하지만 주변에서 많이 보아 온 이들 중 안타까운 것이, 수단이 목적이 되고 무모하게 전진만 하다가 돌이킬 수 없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편지를 쓰고 보니 공부를 많이 하여 지식이 가득하고 그 배운 지식으로 삶을 멋지게 펼쳐 볼 의욕에 찬 선생님의 이 젊은 출발선을 부러워하며 겨우 한다는 잔소리가 이렇습니다. 아마도 '영국에서 시작된 행운의 편지' 정도로 쓸데없는 내용일 수도 있겠습니다. 예전 어떤 공보의가 그런 말을 했었어요. '십 년째 계속 출발선'이라고. 슬프게도 수단을 목적 삼아 정진하였기 때문이겠지요. 더 멀리 보고 더 넓게 세상을 보시기를 권합니다. 지금껏 해온 공부, 스스로를 이겨내며 이룬 노력이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고민하시고, 겨우 잘 먹고 잘살고 남들 위에 서서 내려다보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면 부디 조금만 더 눈을 들어 세상을 위해 이로운 삶을 살겠다는 높은 가치를 추구하며 겸손하게 온유하게 세상을 품겠다는 뜻을 이루기를 기도하겠습니다. 그런 가치 안에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포함되겠죠?
선생님을 알게 되어 제게도 참 좋은 시간이었고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늘 소식 듣게 해 주시고 우리 서로 마음은 헤어지지 말아요~^^
2026년 3월 30일 진료소에 앉아 하늘을 보며 꿈꾸는 베로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