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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니카의 참견 Sep 22. 2020

함께 해서 좋았어요

1년 차와 30년 차가 함께 했던 하루

 휴일 오후나 퇴근 직전 시간에 갑자기 코로나 19 선별 진료소 차출 통보가 오는 것이 일상이 되어 간다. 지역 감염자가 발생하고 난 후의 변화이다. 어제도 그랬다. 단체 대화방에 불쑥 올라오는, '공문 확인하세요'라는 급한 통보. 그렇게 나는 3조에 편성되어 '내일 아침 9시까지 선별 진료소로 출근하시면 됩니다.'라는 고지에 순간 골이 다. 그렇지만 다들 똑같이 고생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저 묵묵히 견디자, 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선별 진료소 파견근무를 나가면 점심이 제공된다. 근처 해장국집 아니면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청국장 맛집이 지정되어 있다. 하지만 나로 말하자면 해장국은 해장할 때 먹는 음식이고 소문난 맛집의 점심시간은 북새통이다. 자릴 내줘야 해서 서둘러 훌훌 집어넣는 한 끼는 정말로 싫다. 그래서 퇴근길에 이것저것 장을 좀 보았다. 선별 진료소 근무를 나가는 날엔 도시락을 싼다. 아침을 먹지 않는 내게 점심은 하루의 첫 끼니이고 그래서 느긋하게 자세하고 씹으면서 먹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오지랖 여사답게 여럿이 먹을 수 있도록 넉넉하게 담아 간다.


 일단 갑자기 차출된 파견근무의 내용은 이랬다. 2주 전 확진자의 밀접 접촉자로 자가격리 중이던 이들에 대한 재검사로 자가격리 중이기 때문에 방문 검체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 30가구 30명 이상. 3개 조로 나뉘었고 내년에 정년퇴직인 선배에게 한 개 면 8가구와 경력자인 소독요원을 양보하고, 나는 다섯 개 면에 골고루 분포된 10가구 12명과 1년 차 소독요원을 선택했다. 나와 한 조가 된 소독요원 역할의 젊은 직원은, 입사 1년 차로 인지센터 소속의 작업치료사였는데 초면이었고 마스크로 입을 굳게 가리고 '대화 거리 두기'라도 할 모양으로 심기도 많이 불편해 보였다. 우리는 함께 방호복 세트와 검채가방, 소독기와 아이스박스를 받고 공용차의 키를 받아 각각 맡은 지역으로 출발했다.

"운전할래요?"

젊은 후배에게 차 키를 건넸다. 그녀는 운전면허는 있지만 차는 없다고 했고, 작은 차만 운전해 보았다고 했지만 나는 기꺼이 그녀에게 운전을 맡겼다. 젊은 나이에 내 차가 없는 젊은이는 얼마나 큰 차 운전을 해 보고 싶겠는가! 공용차는 전기차였는데 낯선 차의 시스템에 버벅거리는 걸 못 본 채 하기가 살짝 불안하긴 했다. 다행히 침착하게 운전을 잘 하기는 했다.

"잘해 봅시다."

내 말에 피식 웃는 그녀. 나는 늘 후배들과 함께 근무를 하게 되면 꼭 이 말을 한다. 그 말속엔 '절대 너 혼자 고생하게 놔두진 않는다.'라는 나의 뜻이 들어 있다. 그 말에 웃음을 보여주었다면 막연하게라도 느낌을 안다는 뜻이렸다. 하지만 이동하는 내내 마스크로 대화 거리 두기를 단호하게 유지하는 1년 차의 눈치를 보는 30년 차인 나 역시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은 없다. 대상자에게 쉬지 않고 미리 전화를 해야 했고 집 위치를 확인해야 했고 비 의료인인 소독 요원에게 일일이 상황 설명을 해야 했다.


 오전 시간을 그렇게 어색하게 함께 보내고 점심 식사를 위해 선별 진료소로 복귀를 했다. 먼저 복귀해 있던 나의 선배 조를 초대하여 도시락을 펼쳤다. 뚜껑을 열 때마다, 와! 하는 환호성이 나오고 아직도 따뜻한 북어 콩나물국의 뽀얀 국물과 함께 조랭이떡과 당면을 함께 넣은 불고기도 칭찬을 받았다. 어쨌든 부동의 1위 맛집인 집밥 아니겠는가. 역시 인간끼리의 교류는 식사를 하면서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그 원시의 모닥불처럼 도시락을 앞에 놓고 둘러앉아 오전에 있었던 후기를 나누는 시간으로 우리는 조금 가까워졌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은근슬쩍 내 파트너의 신상도 살짝 털어 보고 도대체 그렇게 마스크를 굳게 치고 있는 이유도 알게 되었다.


 이 친구가 실은 대화적 거리 두기를 원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입사를 할 때는 인지 장애가 있는 어르신들을 케어하는 작업 치료사 일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코로나 대응 현장에 자꾸만 투입이 되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공연히 열도 나는 것 같고, 목도 컬컬하고 기침도 나고 하니 혹시나, 하며 겁에 잠긴 채 일하는 중이었다.

"그래도 소장님이 이런저런 얘기도 해주셔서 많이 배웠어요'라고 말하는 젊은 후배가 내 음식을 달게 먹으니 고마웠다.


 오후에 다시 방문검채를 다니면서 다행히 조금은 담대해진 모습에 내가 좀 수월해져서 감사했다. 이웃들이 예민하게 반응을 하니 대상자의 집 현관에서 방호복을 입고 벗어야 하는데 소독요원이 대문가나 마당에 서서 더 이상 들어오질 않으니 난감했지만 대문으로 나가 소독을 하고 다시 돌아가 방호복을 벗어야 하는 수고를 오후엔 하지 않아도 되어 고마웠다.


 함께 고생하며 오늘 우리가 할당받은 방문 검체를 모두 마치고 조심스레 내게 해 온 질문에 나는 그만 빵 터졌다.

"소장님은 처음에 보건진료소장으로 입사하신 거예요?"

그것은 마치 우리 아이가 다섯 살 때 제 외할머니께, '할머니는 다섯 살 때 나처럼 이렇게 손이 쪼그만데 어떻게 우유배달을 했어요?'하고 물었던 것 마냥 몹시 귀여웠다. 입사 1년 차가 보는 30년 차는 마치 손주가 할머니 보는 것과도 같은 모양이다.


 그렇게 우리는 근무일지를 쓰고 검체 의뢰서 등을 정리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했다.

'나도 실은 어린 후배들 앞에서 주눅 든다. 혹시 내가 꼰대로 보이면 어쩌나, 속도를 잘 맞추지 못해 그들을 성가시게 하는 건 아닌가.'

내가 그런 고백을 하니 펄쩍 뛴다.

"저희 엄마랑 같은 나이시라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라고 말해 주니 그게 그렇게 고맙다. 정리한 서류와 공용차량 열쇠를 반납하기 위해 사무실로 올라가서 팀장들과 과장님께, '나 이 사람하고 같이 일해서 오늘 하나도 힘들지 않고 좋았다. 너무나 똘똘하고 센스 있는 친구다. 이런 친구를 데려다가 중요한 일 시켜라'라고 잔뜩 홍보를 해주었다. 이름을 묻는 과장님께 인사도 시켰다. 내가 선배로 젊은 친구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퇴근을 하려는데 갑자기 비가 온다. 괜찮다고 사양하는 딸 같은 후배를 데려다주는 차 안에서 또 이어지는  직당의 슬기로운 조직 생활에 대한 짧은 강의가 이어지고 차에 비상용으로 두는 접는 우산을 내주며,

"오늘 고생했어요."

하고 밝게 웃어 주었더니 어느새 마스크까지 내린 예쁜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저도 오늘 소장님하고 함께 해서 좋았어요"

하고 수줍게 인사하면서 빗속으로 나갔다.


그래. 그렇게 힘차게 걸어서 앞으로 전진하거라. 조직에서 요구하는 수많은 과제를 정직하게 풀어내며 차근차근 연차를 쌓아 나가거라. 나는 오늘 자네와 함께 해서 더 고단하였지만 그래도 그대와의 새로운 만남이 신선하였네

 세찬 빗줄기가 차창을 때려도 나는 남들보다 오늘 한 시간 일찍 퇴근하여 기분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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