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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니카의 참견 Jan 13. 2021

지켜보는 엄마, 바라보는 엄마

딸아, 너는 깨진 그릇이 아니다.

 출근 직후 둘째 딸에게서 불쑥 대화방의 메시지가 왔다. 이제부터 남자 친구 J에 대한 얘기 금지란다. 딸은 슬픈 어조로 '지금은 누굴 만날 시기가 아니고 운명이라면 다시 만나겠지~'라고 했고, '주룩'으로 맺었다.  한 번도 묻지는 않았으나 만난 지도 꽤 된 듯했고 제법 재미있게 잘 만나고 있는 것 같았기에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엄마는 무조건 네 편!'이라는 답글을 달아 보내 주었다. 벌써 스물다섯 살이니 뭐든 알아서 결정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어쩐지 마음이 아팠다. 헤어진 이유가 궁금하다기보다는 혼자 이별을 아파하고 있을 딸의 마음이 어떨까, 하는 연민에 사로잡혀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나 역시 겪었던 청년 시절 이별의 슬픔과 아픔, 그 따갑고 쓰라린 마음의 상처를 알기에 곁에 있다면 위로를 해 주고 싶었다. 월요일이라 민원인도 끊이지 않았고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난 뒤 퇴근길에 지는 해를 바라보니 다시 딸이 겪고 있을 마음고생이 떠올라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쭈, 괜찮아?"

라고 하자 '나 너무 힘들어'라며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 때문에 나도 눈물이 났다. 소리 내어 우는 모습을 별로 보지 못했던 딸의 울음소리라니....


 결혼하자마자 연년생으로 딸 둘을 낳아 기르느라 나의 삼십 초반 시절은 그저 고달팠다. '라떼'는 지금처럼 육아휴직도 없고 출산휴가가 길지도 않아, 아기를 낳은 후  겨우 2개월을 쉬고 곧바로 출근을 해야 했다. 비록 결혼과 동시에 허니문 베이비를 낳느라 내 삶의 '루틴'이 헝클러 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뭐든 다' 잘하고 싶었다. 8개월을 사귀고 결혼한 남자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이 많지 않다는 깨달음, 남자를 사랑하지만 그의 가족들을 사랑하는 일은 별개라는 깨달음, 육아는 이론과 실제가 큰 차이가 있다는 깨달음들에 정신 못 차릴 만큼 허둥대는 하루가 참으로 길었다. 어쨌든 내 뜻대로 흐르지 않는 나의 삶에 분노와 눈물이 마르지 않던 위기의 순간, 심할 정도로 예민하고 발달이 빨랐던 첫 아이가 돌잔치를 치른 한 달 후였던 생후 13개월 어느 아침에 내게  '물 주세요'라고 말했다. 이도 나지 않은 아기에게 내가 '뭐라고?' 하며 되물었다. '물 주세요, 이요'라고 말한 그날 '이 아이를 정말로 잘 길러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이 내게 생겼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앗! 혹시 내 아이가 영재가 아닐까?'라고 한 번쯤은 생각한다지만 개월 수를 많이 추월하는 아이를 지켜보기 시작하며 나 역시 기대와 꿈을 꾸었었다.


 많은 엄마들이 아이에 대해 성실하게 CCTV 역할을 수행하곤 한다. 아이가 잘못되는 일이 없게 최대한 빈틈없이 지켜보는 엄마들의 모성애는 아이가 아장아장 걸을 땐 넘어지려고 하기 전에 재빨리 달려가서 붙들 수 있을 정도로 집중력 있다. 엄마들은 아이에게 좋은 습관을 길러주기 위해 대부분의 에너지를 사용한다. 생활습관, 공부습관, 예절 등등에 대해 지도하고 필요하면 학원도 알아보고 등록도 시킨다. 그리고 성실을 가르치기 위해 학교와 학원에 빠지지 않도록 데려다주고 데려 오는 일로 매일이 분주하다. 좋은 식습관을 만들어 주어야 하니 골고루 재료를 넣어 요리를 하느라 하루가 고달프다. 그렇게 엄마들은 아이들이 자신이 길러주는 모든 습관이 익숙해지도록 아이가 잘 가고 있는지 지켜보느라 다른 일을 할 수 없을 지경이다. 나와 대화를 하면서도 눈길은 다 큰 자식에게로 향해 있는 친구는 자식과 수시로 문자를 주고받고 자식의 일과와 계획을 훤히 꿰고 있는 것(사실 그 일과와 계획은 엄마가 정해주는 경우가 많다.)으로, 자식과 엄마가 친밀하고 대화가 풍부한 사이라고 여긴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필요하기도 하다. 아이에 따라서는.


 그랬다. 나도. 첫 아이가 8살일 때까지. 아마도 나는 그때 아이를 지켜보느라 속수무책 흐르기만 하는 나만을 위한 온전한 시간이 없음에 참담했었던 모양이다. 아이를 지켜보는 일이 내겐 커다란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어느 날 꼬꼬마인 아이에게,

"엄마는 네가 필요한 시간에 필요한 걸 말하는 엄마의 말을 잘 따라주지 않아서 스트레스를 받아 힘들어"

라고' I message'를 내놓았다. 한창 '대화기법'이란 책을 읽고 연습하던 때였다. 그때 아이가 내게 말했다. 

"그냥 놔두면 알아서 다 할 건데 뭐하러 스트레스를 받아요...."

그것은 마치 하느님이 보내시는 전달사항 같았다. 그 말에 반박을 하지 못했다.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날부터 그냥 보기만 하기로 했다. 종이배를 띄워놓고 둥실둥실 흘러가는 걸 바라만 보는 것처럼 잘 가나 보기만 하면 되는 훈련을 시작했다. 넘어지더라도, 넘어져서 울더라도 곧 다시 일어나는 아이에게 '잘했다'라고 칭찬해 주고 네 옆에 항상 엄마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풍성한 사랑을 끊임없이 주면서.


 딸이 남자 친구와 헤어지게 된 이유를 이야기했지만 울먹이는 소리 때문에 정확히 알아들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대충 들어도 뭔 말인지 알겠는 것이 한 편으로 눈물 나면서도 웃겼다. 다들 그래서 한 번씩은 헤어지고 그러지 않는가. 지금 슬퍼하는 이에게 필요한 것은 기대어 울 어깨라 하지 않던가.

"마음이 많이 아프겠다. 우리 아기가 이렇게 마음에 큰 상처가 생겼는데 엄마가 곁에 없어서 밴드도 못 붙여 주어서 미안해. 하지만 너도 J도 잘못해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니니까 슬프지만 너무 아파하지는 말아. 지금은 아파도 그 상처가 아물면서 단단해지면 너도 J도 한결 성숙해질 거야. 그렇게 어른 되는 거란다. 너무 슬픈 생각에만 매달리지 말고 서로 응원할 수 있는 사이가 되어 주면 좋겠다. 많이 힘들면 엄마한테로 내려와. 맛있는 거 해줄게 먹고 쉬었다 가렴"


 그렇게 말하면서 공연히 눈물이 나 울먹였다. 딸아이는 울음도 그쳤고 '엄마도 울지 마요'라고 하면서 고맙다며 전화를 끊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혼자 있기 힘들어서 친구 집에  와 있다는 아이에게 용돈을 부쳐 주며 받는 사람 통장에 "마음 재난지원금"이라고 표기했다. 그러고 나서 아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마음 재난 지원금이 지급되었습니다. 귀하의 마음에 난 상처에 응원의 밴드를 붙여 드립니다.'

'친구랑 같이 소주 한 잔 찐하게 마시고 기절한 다음 내일 아침 벌떡 부활하거라^^'

라고 내가 보낸 문자에 그렇게 흐느껴 울던 아이가, 

'이미 엄마와의 통화가 상처 밴드였는데!'

 '정말 엄마 없인 못살아... 엄마랑 전화하니까 확실히 괜찮아졌음'

이라는 문자 답장을 주었다. 입금 알림을 보고 친구와 같이 '마음 재난 지원금'이라는 것도 있냐며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기도 했다면서 유쾌해했다. 작년 어버이날 평일임에도 축하 화환에 붙이는 큰 리본에 '대한민국 1등 찐 부모'라는 글을 새겨 목에 달고 갑자기 집으로 들이닥쳤던 사랑스러운 내 아기가, 어른 여자가 되어 사랑도 하고 이별도 겪으며 슬픔과 아픔을 겪어 내는 중이다. 무엇으로 그 동력에 에너지를 보태줄까, 그런 생각이었는데 다행히 아이는 힘을 얻은 모양이다. 두어 시간 지나 자기소개서에 쓸 내용을 확인하는 문자도 보낸 것을 보니 다행히 일상으로 빠르게 복귀하며 상처가 회복 중인 모양이다.(젊을 땐 회복도 빠르다.)


 자식을 두 손 모아쥔 채 바라만 보아야 하는 것은 지켜보는 것에 비해 더 많이 힘들었다.  지켜보는 엄마는 실시간으로 아이의 걸음에 개입할 수 있지만 바라만 보아야 하는 부모의 '애간장'은 더욱 닳고 닳았다. 다행히도 두 딸은 스스로의 역량을 키우는 것이나 이런저런 품격을 갖추어 나가며 성장해 주었다. 예민하고 자아 강한 자식이 너그럽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어른으로 자라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우리 부부에게 살아오는 동안 에너지였고 기쁨이었고 사는 재미였다. 생각해 보면 자식의 성장을 그저 바라만 보아야 하는 것은 참으로 아슬아슬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분명 내 자식은 잘해나갈 거라는 믿음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아이가 가끔 또는 자주 내게 퀴즈를 낸다. '엽전을 왜 엽전이라고 했는지 아는가'라는 정도로, 엄마가 뭔 만능이고 척척박사인 줄 아는지 세상 모든 것을 묻는다. 인생과 사랑과 그 모든 가치 있는 것, 시답잖은 것, 어이없는 퀴즈를 물어 온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지키느라 온 정신과 마음과 힘을 쏟는 대신 아이의 퀴즈에 대비해 나 스스로를 키우는 일에 몰두해 왔다. 쉬지 않고 글을 쓰고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세상의 모든 일에 관심을 갖는다. 시민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허리띠를 단단히 동인다.  '나는 항상 멋있는 엄마이고 싶다.' 두 딸이 아름다운 여인이 되어 간다. 생기발랄하고 스마트하다. 주관이 뚜렷하고 자신만의 '루틴'을 만들어 가는 중이다. 함께 밤늦도록 대화를 하고 맥주를 마시고 세상 이치에 대해 토론을 한다. 연애 이야기, 결혼 이야기, 인간관계, 올바른 시민 정신의 실천.... 테마도 다양하다. 가끔 실패하거나 오류가 나 의기소침한 딸들에게 '너는 깨져서 배송된 그릇이 아니다. 그저 쓰임이 다를 뿐이다.'라고 말해 줄 수 있는 엄마는 이십여 년 전부터 끊임없이 바라보아 준 엄마이기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정말로 오랜만에 글을 올려 본다. 보건의료계 종사자이다 보니 코로나 19 감염병 대응 업무로 정신없이 쫓기며 지난 한 해가 흘렀다. 나의 직업은 나에게서 책을 읽는 시간, 글을 쓰는 시간, 명상과 기도 그리고 너그럽게 온유를 넓히는 일에 힘써야 하는 수양의 시간들을 빼앗아 갔다. 직업이 삶의 방편이었는데 어쩔 수 없는 팬데믹으로 우선순위를 빼앗겼고, 결국 귀한 것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2021년 새해에는 부디 내가 다시 나 스스로를 진리를 구하는 자, 빛으로 향하는 자, 자신을 해치지 않는 자가 되기 위한 수행의 시간을 허락받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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