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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니카의 참견 Jan 15. 2021

"재수 씨요, 즐멋을 때 껌 쫌 씹었지예?"

나는 사실 불량소녀들이 부러웠었다.

 "재수 씨요, 즐멋을 때 껌 쫌 씹었지예?"

몇 해 전 남편 군 동기 임관 30주년 행사로 열렸던 부부동반 1박 2일 중, 아침 해장국을 먹는 자리에서 나온 나에 대한 어떤 동기님의 평가이다. 전날 밤 음주가무 실력을 좀 발휘했더니 그 동기님 보기에 내가 상당히 불량해 보였던 걸까. 참고로 그 동기님이야말로 외모만 보아서는 '즐멋을 때 담배 좀 물고 삥 좀 뜯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으잉? 야 인마 재수 씨는 보건진료소장님이셔!"

함께 밥상 받았던 남편의 절친이 대신 버럭 하긴 했지만, 20대 초반엔 진지하게 정색이라도 하고 있을라치면 '어려워서 말을 못 걸겠다'는 평가를 들었던 내게 던진 그 동기님의 평가가 내겐 신선한 즐거움이었다. 나는 사실 '즐멋을 때' 불량소녀들이 부러웠었다.  


 젊었을 때 껌 좀 씹을 시간도 없이 춘향이 나이 무렵부터 내처 전력 질주해야만 했던 나는, 사실 여고 시절 '껌 좀 씹는 친구'들이 부러웠었다. 그들은 '응답하라 시리즈'에 나오는 아이들하고 똑같았다. 매일 지각을 했고 수업 시간엔 엎드려서 잠을 잤으며, 2교시가 끝나면 도시락을 먹고 점심시간에 울타리를 넘어 매점에 가서 '떡볶국'(어묵탕에 떡볶이를 넣어 말아먹는 기가 막힌 간식이었다!)을 사 먹으면서, 혼날 걱정을 하는 아이들에게는 '괜찮아! 몇 대 맞으면 돼' 하며 쿨내를 풀풀 풍겼다. '매는 맞을 때만 좀 참으면 된다'는 그들은 숙제를 안 해 오고 준비물도 안 가져오면서도 걱정 근심이 없이 태평하였고, 시험 기간이 다가와도 두려움과 고민 따위는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다른 친구들을 괴롭히거나 때리지는 않고 오직 자신의 세계에서만 머물렀고 세상만사 관심 1도 없는 그들은 내가 보기엔 진정한 '멘탈 갑'이었다.


 세월이 흐른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들에게  '불량소녀'라는 태그를 붙였던 것은 옳지 않았다. 그들에게 不良 [①행실(行實)이나 성질() 따위가 나쁨 ②품질()이나 성적()이 좋지 못함  ③질이나 상태() 등()이 좋지 않음]하다고 해서는 안되었다. 사전은 불량이라는 단어를 범죄자의 상태처럼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도대체가 그저 그 시대의 기준에 의해 정해진 가치들로  형성된 주류에서 밀려난 비주류요, 주류라는 이들과 相異했을 뿐 즉, 서로 달랐을 뿐인 사실은 그저 갈피를 잡지 못해 이리저리 휘날리던 그들에게 불량이라는 단어를 붙이다니. 내가 아는 한 그들 중 단 한 명도 나쁜 사람이어서 감옥에 간 사람이 없으니 말이다.


 선생님들에겐 골칫덩어리요 부모님들에게 근심 덩어리이고 친구들에게는 잘못 사귀면 안 되는 나쁜 친구였던 그들 중 하나가 내 짝이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어떤 기말고사에서 국사 주관식 5점짜리 딱 한 개만 알려달라고 애원의 눈길을 보낸 그 아이에게 '고구려의 낙랑 축출-미천왕 313년'을 가르쳐 주었지만 '미친 13년'을 써낸 탓에 커닝이 발각되어 가중처벌로 오히려 더 많은 매를 맞고 들어와 나를 향해 픽 웃던 짝에게 내가 물었었다. 나는 궁금했다. 주말마다 서울에 다녀오고 항상 새로운 모습으로 최신 유행을 선도하는 그들은 시골 소녀들 틈에서 단연 돋보이던 그 멋 부림, 그들만의 거친 언어 세계, 그들이 추구하던 무엇에 대하여.

"공부 좀 해.... 미래가 두렵지 않니?"

"미래 생각을 왜 해? 어차피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거야. 잘 되어도 못 되어도 다 팔자라고. 그러니까 그냥 내 마음대로, 나 하고픈 대로 하고 사는 거야. 인생 뭐 있냐? 난 학교가 지겨워. 그냥 빨리 졸업해서 미용 기술 배워서 돈이나 벌고 싶어."

마치 조선시대 사람이 서양인 처음 본 양 혼란스러웠고 충격적이었던 그 아이와의 대화가 오랫동안 나의 뇌리에 남았다. 그들도 나도 미래가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나 역시 어린 소녀였기에 '인생 뭐 있냐'던 그 아이의 생각은 한때 나를 방황하게 만들기도 했고 이후로 가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느껴질 때마다 큰 유혹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결국 세월이 흘러 그 보이지 않는 미래의 중간쯤에 와서 보니, 그들이 너무 일찍 놓아 버리고 만 것은 희망이었다. 무관심했던 그들의 부모는 미처 알려주지 못했고 그래서 그들은 보이지 않아서 없다고 생각했던 것, 나에게는 보이지 않기에 무한 희망이 가능하였던 것들.  


 빨리 졸업해서 돈이나 번다던 '미친 13년'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미용사 생활을 아주 길게 하고 있다. 18살짜리가 일찌감치 정해버린 대로의 인생을 살고 있는 그를 가끔 길에서 만난다. 학교가 지겹다고 했던 그는 이제 반복되는 일상이 지겹다고 한다. 모든 것이 지겹지만 지금은 그때처럼 그 무엇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시간에 멈추어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너무 오래 했잖아..... 사는 게 지겨워"

그때 그 시절에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던 그는 지금도 남들 다 하는 PC를 사용하지 않으니, 코로나 19 시대에 유일한 통로인 온라인 세미나에 거의 참석하지 못하여 최신 유행의 헤어 스타일에 대한 정보조차 받지 못한다. 주류에 속하지 않고도 당당하고 자유로웠던 그들은 그들의 보호자들로부터 너무나 쉽게 당연하게 포기되었다. 그의 일상은 너무나 작은 세계이다. 누군가 그들의 그 자유분방함 위에 그에 걸맞은 소신과 함량을 높여 줄 수만 있었다면.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때 그들의 부모들은 남보다 잘 먹이고 남보다 잘 입히는데 골몰하느라 내 자식이 그저 다른 애들하고 비슷비슷하게 크나 보다, 믿었을 뿐이었으리라.


 지금 이 나이의 내게 '즐멋을 때 껌 쫌 씹었을 것' 같다는 소리가 신선한 즐거움을 주었던 것은, 그 말을 하는 이의 시선의 높이를 짐작하기 때문이다. 동기들이 동반하고 온 대부분의 얌전한 아내들과 다르게 거침없이 행동하는 자유분방함과 발언권이 주어졌을 때 말을 주저하지 않는 당당한 내 모습이, 마치 그 시절 껌 좀 씹었던 불량소녀 출신 같아 보였을 막연하고도 순진한 그의 짐작이 재미있었다. 그러나 그 해프닝을 구경하며 웃는 남편도 '지금도 껌 좀 씹는다'라고 맞받는 나도 안다. 지금 내가 부리는 이 '개멋'은 그 시절 껌 씹으며 방황하고 게으르지 않을 수밖에 없었던 고단한 소녀가 받은 '상장'인 것이다. 희망을 품었기에 긴 세월 후 받은 보상.


 누가 '희망'에다 '고문'을 붙였는가. 딱하다. 오죽하면 그런 말이 나왔을까. 그러나 단언컨대 '희망'이라는 단어의 뜻은 '지금 당장의 문제를 해결해 줌'이라는 뜻은 아니다. 나에게 희망은, 지금의 '개 멋진 중년 나'를 이룰 수 있는 에너지라는 뜻이다. 남편에게는 인내의 '열매'이며 팔순 친정 엄마에게는 '웃으며 옛날 말할 날'이라는 뜻이다. 청년들에게 희망은 '아직 겪어 보지 않은'이라는 뜻이다. '고문'이라는 말은 숨기고 있는 사실을 강제로 알아내기 위해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을 주며 신문한다는 뜻이다. '희망'이라는 단어에 붙여서는 안 되는 단어이다. 견디기 힘든 고단한 청년들은 이 더디 가는 시간이 고문당하는 것처럼 힘겨울 것이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희망에 고문 따위의 불쾌한 단어를 이어 붙여 그 가치를 훼손하진 않았다. 그저 '희망'을 냥이나 댕댕이처럼 곁에 가까이 두고 잘 돌보고 가꾸고 사랑하고 보듬기를 바란다. 그것이 내게 기쁨과 보람과 약간의 잘난 척이 되도록 길들이라. 나는 25년 차 엄마이고 30년 차 직장인이고 성실한 아내이며 작가이니 이런 말 해도 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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