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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니카의 참견 Jan 18. 2021

어머니의 마당

낙조보며 퇴근하는 길에 어머니에  대해 생각했다.

겨울이 주인 된 어머니의 터

분주한 발걸음
나게 희던 마당
드문 거동으로 누런 잎 가득 들었다.


'아파트로 이사 하마 고마 끝이라....'

푸지던 장독 비워진 지 사오 년
뚜껑마다 차지한 먼지 두텁다.

 오래된 골목
모두 떠나고 변한 거기
귀티까지 먹어 든 아파트 단지

야박하게 남은 한 뼘 마당 경계 지켜내려니
가뭄 들어 홀로 느리게 흐르는 개울도 힘겹다.

'옳게 줘 볼 것도 없고...'
밥상에 놓고 먹던 찬까지 싸주시는
어머니 맘 차마 두고 나오는 마당 끝
뒤따르는 쓸쓸한 미소까지
싸고 꾸리고 간직하여 떠나온다.


 몇 철 전 휴무일인데 특별한 일정이 없다면서 어머니께 다녀오겠다고 훌쩍 출발한 남편이 하룻밤을 어머니와 지내고 돌아왔다. 어머니는 잘 지내고 계셨고 길 건너 단지에 사는 큰 형님 내외와 저녁을 같이 먹었는데, 코로나로 죄 없이 격리된 탓인지 쌓인 이야기로 밤을 지새웠다고 전한다.

"아침 밥상 놓고 앉아 우시더라"

"왜요?"

"외로우시다고"


 처음으로 인사를 드리러 갔던 날 마당에 계시다가 나를 맞이하신 어머니는 자그마한 몸체에 어울리지 않게  빈틈없고 엄격한 눈매를 하고 계셨다. 초면인 낯선 아가씨에게, '들어가서 옷부터 갈아입으라'라고 하셨다. 투피스 정장을 입고 있던 나는 당황했지만 셔츠와 바지로 갈아입어야 했다. 드라마나 나의 상상에서 늘 생각하던 그런 첫 대면은 아니었다. 아들의 여자를 따뜻하고 우호적으로 받아들이는 느낌을 받지 못했던 그 날이,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이다.


  나하고 열 살 차이의 큰 동서님 신혼 초엔, '공책 하고 연필 주시면서 너 친정 가서 다시 배워 오라'고 하실 정도였단다. 형님은 갓 시집 온 막내 동서에게 대놓고 '어머니는 피곤한 스타일'이라고 했었다. 아닌 게 아니라 내게도 본의는 아니었겠으나 상처를 참 많이도 주셨다. 그건 모두 '너희 잘 되라고 가르치느라 그런 거라'라고 하시지만 그런 걸 요즘 시대엔 '위력에 의한 갑질'이라고 하지 않던가. 허리가 아파 굴과 신을 하기 힘들어도 일어나 주방에서 서성거려야 했고 너무 어려 엄마를 떨어지지 않고 우는 젖먹이 아기를 방에 혼자 눕혀 놓은 채 주방에서 이런저런 일을 해야 했다. 납득할 수 없는 사고방식과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그 누구도 행복한 시간이 되지 않는 모든 시간들의 가장 핵심에는 어머니가 계셨다. 어머니는 당연하게 요구하시는 그 모든 것들은 '어쩌겠노? 이 집에 시집 온 니 팔자라' 하는 말 한마디로 강요되었다. 거기에 '직장이 유세냐' '누군 왕년에 애 안 낳아 봤냐'라고 보태는 윗동서들이 있었고, '누구는 넘어지고 굴러도 오는데 와 못 오는데'하는 시숙들이 있었다. 인내와 분노의 그 위태로운 경계에 어머니가 계셨다. 바로 잡을 수 없어서 답답했고 받아들이기는 더 싫었던 강요된 '해야 할 도리'는, 사랑하는 남자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 그저 나답지 않은 불분명하고 어정쩡한 태도를 지닌 채 '양가감정'을 오가며 오랜 시간이 흘렀다.


'언젠가 꼭 내 입장을 이야기하고야 말겠어. 더 이상 상처 받지 않을 거야.'


 항상 그런 마음을 품고 살았었다. 어머니가 내게 했던 모진 말들, 강요했던 모든 것들이 실은 내게 상처가 되었고 그 모든 상처들을 내가 모지리여서 감수한 것은 아니란 사실을 적당한 때에 조목조목 말씀드리고 사과를 받으리라 맘먹었었다. 하지만 내가 권리선언을 하기도 전에 어머니는 너무 빨리 늙고 약해지셨다. 내 입장을 이해하기엔 인지와 판단도 급격히 떨어지셨다. 뇌경색을 살짝 거치시는가 하면, 척추가 협착이 되었고 무릎연골이 마모되어 쑤시고 아파 걸음을 걷기 힘들어지시고 거동이 불편해지고 식사량이 줄고 우울감도 심해지셨다. 이 모든 노화 현상이 불과 2~3년 사이에 급격히 일어났다. 그렇게도 기세가 당당하던 분이 자꾸만 한숨을 쉬셨고 만나기만 하면 미안하다고 우셨다. '부모 노릇 옳게 못해서 미안하다'라고 하셨다. 예전 같지 않으신 건강 상태 탓이겠지만 급격하게 노화를 겪으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연민 때문에 눈물이 났다. 마치 어제까지도 붉디붉게 자태를 뽐내다가 아침 된서리에 순식간에 시들고 말라버린 11월 장미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런 분에게 무엇을 따지고 무엇을 선언하랴.....


 생각하면 딱한 마음이 든다. 늙고 병든 어머니의 시간은 아무리 길어도 십 년 안팎 이리라. 가난한 부모를 만나고 가난한 남편을 만나고 가난을 면하려고 애를 쓰는 자식들을 만난 탓에, 가져볼 수 없었던 욕구였지만 그조차 잊어버린 채 아주 긴 세월을 고단하게 사신 분. 바빠서 미처 전화를 받지 못하면 '와 전화를 안 받니?' 하며 혼내시던 분이, 이젠 몇 번 울리도록 전화를 받지 못하면 재빨리 끊으시는 것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딱하다. '어제의 나를 뛰어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다'는 누군가의 말대로 지난 세월의 모든 묵은 감정들을 서둘러 정리하고 치워야 하겠다. 이러다가 자칫 후회할 상황이 올 수 있겠다. 지금보다 더 다정하고 사이좋게는 어렵겠지만 그저 있는 그대로 생긴 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며 존중하는 대상으로 여겨보아야겠다. 뭐, 외롭다고 우시는 것이야 어쩌겠나, 나도 때로 외롭고 그런 걸. 하지만 혼자여서 외로운 것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면, 모처럼 휴일에 엄마 보러 일부러 멀리서 찾아간 아들 앞에서 외롭다고 눈물바람 해서 오는 내내 아들 마음을 무겁게 만든 것에 대해서는 그냥 '패스'할 수 있다. 마음 무거운 것은 아들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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