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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니카의 참견 Jul 30. 2020

자가격리와 위리안치

청령포 숲에 앉아

 

 직딩(?)들은 다 안다. (마치 예수님처럼) 아니 계신 곳 없이 있다. 부당하다고 여겨지는 일 말이다. 어항 속에 있는 물고기를 보는 것처럼 누가 봐도 부당한 일이 훤히 보이는데,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가운데 그 부당한 일은 아주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통과되었다. 참견쟁이는 또 잠이 오지 않았다. 매일 아침 출근과 함께 울화가 치밀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아니, 내가 너무 오래 여기 있나? 드디어 사표를 낼 때기 되었나?' 그러면서도 참견쟁이가 참견을 하지 못하니 기어이 병이 났다. 체온을 재면 정상인데 마치 열이 나는 것처럼 머리가 지글지글 끓었다. 이러다가 뇌가 익어 버리면 어쩌나 할 정도로 머리가 뜨거웠다. 스트레스는 온몸을 긴장시켜서 목과 어깨, 등과 허리, 다리까지 전신에 랩을 감은 듯 단단하게 굳어져 스트레칭을 하기도 힘들었다. 대나무밭이 필요했다. 그래서 예민덩어리인 나를 기꺼이 맡아 준 친구 둘과 함께 영월로 떠났다. 코로나19로 거리두기가 의무인 내가 휴가를 갈 상황이 아니었지만 일단 떠나고 보자고 했다.


 이틀 연속 오던 비는 멈추었고 심지어 화창하게 날이 개었다. 새벽 일찍 떠난 덕분인지 코로나19 감염증 때문인지 막힘 없이 잘 달려 영월에 입성한 우리는 친구 시숙 소유의 별장에 짐을 풀고 곧장 뜨거운 대낮의 햇빛 속으로 들어가 청령포로 향했다. 청령포. 방송에 여러 차례 소개되어 궁금하기도 했고 오래된 숲에 잠시라도 머물고 싶은 마음 때문에 그곳이 항상 궁금했다. 일상을 벗어날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은 와보고 싶었던 곳이 청령포이다. 누군가의 슬픔에 깊이 빠져 보고 싶을 때 가면 좋겠다고 생각한 곳에 드디어 내가 갔었다.  

 따가운 한 낮의 햇빛이 얼굴에 쏟아지고 저마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간격을 유지하며 줄을 지어 선착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징검다리라도 놓으면 쉽게 건널 수 있을 것 같은 좁은 강이어도 깊이는 제법 만만찮은 곳처럼 보이는 강을 건너 그곳으로 들어갔다. 통통통.....배를 타고 건너다 보니 알겠다. 눈 앞에 닿을 거리라고 쉬운 곳이 아니었다. 한쪽 면이 육지와 닿아 있기는 하였으나 까마득한 절벽이어서 수심이 제법 은 강을 건너는 뱃길이 아니면 통할 곳은 없어 보였다. 육지 속의 섬은 단순했다. 선착장과 오래된 소나무 숲, 그리고 폐위된 단종이 머물렀다는 집과 그를 모시던 궁인들이 기거하던 초가를 재현해 놓은 곳이 전부인, 그야말로 손바닥만한 곳이었다.


 한낮 땡볕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소나무 숲으로 서둘러 들어갔다. 사진을 찍느라 분주한 일행들과 떨어져 혼자 오래된 소나무 숲이 굽어보이는 마루에 앉아 이곳에 위리안치 되어 매일 나처럼 이렇게 여기에 앉아 있었을지 모르는 단종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단종처럼 생각해 본다. 믿고 의지하던 숙부에 의해 노산군이었던 왕은 서인으로 강등 되었고 도망도 가지 못하고 자신의 아내도 지키지 못하던 비굴하고 무능한 왕이었을까.... 잠 못 이루고 부당함에 괴로워 하던 어제까지의 나와 같다는 생각에 몸과 마음이 땅속으로 꺼진다.

 열두 살 소년은  곧 돌아갈 예전의 삶을 기다렸을 테지.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고 결국은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이들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되새김질 하게 되었을까. 매일의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을까, 결국 그의 앞에 놓인 살해의 계획에 그는 얼마나 두려웠을까. 사약을 거부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순간 생각도 하였을까. 그러나 결국 죽음 앞에서 망설이는 것도 그에겐 사치였던 것이지..... 아아, 몰입이 어렵다. 문화 해설사가 단종이 올라갔다는 6백 년 된 관음송을 설명한다. 누가 6백 년을 살아 그 나무를 지켜보았을까. 그저 역사 드라마에서 보았던, 내시의 등에 업혀 궁을 나서며 울고불고 하던 어린 아역 배우의 열연만 자꾸 떠올라 내 생각을 방해한다. 이런 '테레비' 같으니라구.......


 거기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니 단종 임금님께 망극하게도 나는 거기가 좋았다. 방문객들은 마스크를 쓴 채 떠드는 이도 없고, 관광지마다 있는 이동 상인들도 없다. 심지어 배가 운행을 멈추면 세상과 단절이다. 내가 속한 곳에서의 징글징글한 일상으로부터 나도 위리안치 되고 싶다........ 실은 코로나19 선별 진료소에서 검채채취 업무를 하면서 음성 판정을 받고 2주간 자가격리를 명령받는 해외 입국자들이 부러웠다. 설 연휴와 함께 시작된 코로나19 방역 업무도 힘들고, 말도 안 되는 낙하산 인사도 화가 나고, 진급이 누락된 후배들에 대해 면목도 없이 심신이 지칠대로 지쳐 있었던 탓이었다.

'누가 나 위리안치 시키면 나 진짜 잘할 수 있는데........'

소나무를 베어 없앴다고 버섯의 세상이 왔다고 할 수 있을까. 곧 흔적도 없이 사라질 버섯의 시간은 얼마나 짧은가.

 그 와중에 미국에서 돌아와  2주간 자가격리했던 친구 딸아이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화장실이 딸린 안방에 격리되어 방문 앞에 일회용기에 식사를 준비해 놓아 주었고 대면도 하지 못하고 화상 통화로 아이와 소통하는 동안 다 큰 아이는 '거실에 나가고 싶고 가족들하고 웃고 떠들고 치킨 먹고 싶다'고 매일 울었고 아이 엄마인 친구도 격리된 아이 신경쓰랴, 다른 가족들과 접촉 못하게 하랴, 스트레스가 적잖았단다. '두 번은 못할 짓'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이틀을 도망쳤던 일상으로 돌아 올 때, 나는 나에게 관대해지고 비겁한 이들에 대해 따뜻한 온유를 갖게 되었다. 영조가 세웠다는 '금표석' 덕분이다. 이 섬을 빠져 나가는 것이 금지가 아니라 밖에서 이 안으로의 접근이 금지이다. 일반 백성이 감히 이곳에 접근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표지이다. 금표석 앞에 아주 오랫동안 서 있었다. 일반 백성인 내게 현실을 부정하고 거부하려는 위리안치도 자가격리도 금지이다. 견디고 기다리면 저절로 된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순리의 틀은 지금 이 순간에도 돌아가는 중이다. 일반 백성인 나는 그걸 돌리는 존재가 아니다. 그냥 순서를 기다리면 된다. 영조의 순서가 되자 단종은 복위되고 명예를 회복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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