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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니카의 참견 Jul 29. 2020

시골 산지 오래 되었다고 다 농사 잘 짓지 않는다

내가 소릴 지르니 이웃 어머니께선 뱀이라도 본 줄 아시고 덩달아 놀라신다.


 몇 년 전 이야기이다. 예전 근무했던 진료소와 나란한 이웃이 빌려 준 밭의 긴 고랑에 그 유명한 강화 특산물인 속노랑 고구마 한 단을 심었던 적이 있다. 시장에 나가 사 온 호박처럼 노랗고 단 맛이 강한 일명 호박 고구마 순의 한 단은 백 개다. 시골에서 근무를 한 세월이 이십 년도 훨씬 넘었으니 주워듣고 어깨너머로 구경한 농사에 관한 상식만으로도 강의 한 시간 정도는 할 만한 자신감으로 힘든 줄 모르고 백 번을 구멍을 내고 고구마 묘를 심었다.


 휴일을 내어 도와주는 내내  '사 먹는 게 싸다'라고 하시던 남편은 내가 심은  줄기를 속아 버무린 아삭하고 단맛 나는 고구마 줄기 김치에 감탄하며 '내가 심으니까 이런 것도 맛본다'라고 말을 바꾸었고 여름 한 철을 무성하게 뻗어낸 줄기를 보며 마을 어르신들도 '고구마 깨나 캐겠다' 칭찬을 해주셨던 그 고구마가  드디어 추석이 지나니 캐기를 허락받아 다시 남편의 노동력을 활용하여 모두 캤다.


 아하........ 온 밭을 네 발로 기어가며 깊이 후벼 파서 정확히 72개를 캤다. 고구마순 백 개를 심어 고구마 72개를 캤던 그 해에 나는 농사를 포기했다. 역시 사 먹는 것이 싸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리고 다신 농사에 손대지 말자 했었다. 눕혀서 심어야 하는 고구마 순을 식목일 나무 심듯 심었으니 옆으로 누워 맺혀야 하는 고구마가 땅 속 깊이 세로로 맺혔고 삽으로 깊이 파내어 캐야 했던 고구마. 그런 탓에 순도 많이 죽었는데 넝쿨은 과하게 무성했고... 비밀이 없는 시골에서 한동안 진료소장 고구마 농사 망한 소식은 모두의 혀를 차게 만들었었다.


 긴 겨울 직화냄비에 고구마를 몇 개 구워 찡하게 익은 동치미랑 먹을 의욕만 앞 선 초보 농사꾼의 농사 입문은 그렇게 시작 즉 끝을 맺어 '소장님은 그냥 내가 한 상자 줄게'라고 위로하시는 어르신들 뵙기도 부끄럽던 그 이후로 올해 처음 호박 모종을 심었다.


 사실 딱 일 년 전 폭염에 지금의 임지에 발령받아 와 보니 신축한 진료소의 앞마당이 호랑이라도 나올 듯 풀이 우거져 있었다. 땅 주인에겐 죄송하지만 아마도 진료소가 1/3을 점유한 어정쩡한 땅에 대한 관리를 서로 미루었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폭염이 끝날 무렵 매일 삼십 분 정도 일찍 출근해서 며칠에 걸쳐 풀을 뽑고 네모지게 밭을 만들고 국화 모종을 심고 내년 봄 나온다는 씨앗도 뿌렸었다. 그렇게 갑자기 취미 하나가 추가되었으니 이름하야 '가드닝'

 

 전문 가드너들이 보면 실소를 터뜨릴 손바닥 만한 화단이 일 년이 지난 지금 나에겐 '타샤 할머니의 정원' 만큼 공이 들어간 사랑하는 공간이 되었다. 시간만 나면 읍내 꽃집에 가서 심을 철 지나 저렴하게 덤까지 주는 다년생 꽃모종들을 사다가 심어 지난봄과 초여름 내내 참 흥겹게 꽃놀이를 했었다.


 꽃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진료를 받으러 오시면 나란히 서서 함께 꽃밭을 내다보며 '저건 무슨 꽃, 저건 무슨 나무'하며 한참 이야기를 나누지만, 어떤 어르신들은 더러 '그깟 먹도 못할 꽃 말고 고추며 상추 따위나 심어 먹으라'라고 조언도 하신다. 하지만 내 대답은 한결같이 '그냥 사 먹을래요'였다. 그래도 진료받으러 오시는 분마다 대개 계절에 나는 밭의 야채들을 들고 오시니 내가 농사짓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았다.


 헌데 또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데 한 달 전 7월 초 모종 가게 앞을 지나다가 갑자기 호박 모종 네 개를 샀다. 네 개에 삼천 원이라고 적혀 있는 반듯한 글씨 탓일까. 아니면 모종 가게에 붐비는 사람들의 신나 보이는 눈 빛 탓일까. 그러지 말자고 한 맹세를 깨고 호박 모종을 샀다.


 "이거 지금 너무 늦은 것 아닌가요? 지금 심어도 호박이 달릴까요?"

"늦게 심으면 늦게까지 따먹어요."

농학박사도 아닌 모종 가게 사장님의 주관적 견해를 전적으로 신뢰하여 또 설레는 기대를 안고 호박을 심었다. 그런데 2주가 지나도록 모종 상태로 멈춘 호박을 안타깝게 들여다보며 또 망했구나, 하는데 나랑 별반 다르지 않은 동생이 내게 '쌀뜨물에 김칫국물을 섞어서 주라'라고 한다. 그야말로 반신반의하며 쌀뜨물과 김칫국물(구하기가 얼마나 쉬운가!)을 섞어서 호박 옆에 구덩이를 파고 부어 주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햄릿이여~


 그 비료 덕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지난주 휴가를 다녀오니 호박은 제법 넝쿨을 뻗기 시작했고 오늘 아침 드디어 이파리 아래 새초롬하게 자리 잡고 있는 호박 한 개를 발견했다.

"엄마야!!"

호박을 보고 내가 낸 소리다. 울타리 너머 이웃 어머니가 놀라 달려오셨다.

"왜, 왜?"

"여기 호박 있어요"

"난 또 뱀이라도 본 줄 알았네. 호박 넝쿨에 당연히 호박이 있지 가지가 있겠어?"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아주 모양도 예쁜 고급진 초록의 애호박이여~ 신기하고 놀랍도다! 더러 몇 분의 어르신은, '4월에는 심어야 지금 호박이 한창 열리는 거지. 지금 심으면 호박잎은 따먹겠지'라며 너무 늦었다고 웃으셨지. 그러나 이 얼마나 당당하고 의젓한가.


 이 귀한 애호박을 따다가 책상에 놓고 들여다보며 혼자 흐뭇한데, 오시는 어르신들마다 손에 손에 검은 봉지를 하나씩 들고 들어오신다. 그 안에는 '시골서 뭐 흔한 거'라는 애호박이 두어 개씩 들어 있다. 아! 더 생각해 보니 호박 모종 4개를 심어 한 달이 지나 겨우 애호박 한 개를 땄으니 역시 난 영락없는 엉터리 농사꾼이다. 나는 그냥 꽃을 심는 것이 낫겠다. 혼자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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